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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여신 운디네, 정의의 여신 안티고네, 그리스 신화 속 두 여신을 타이틀롤로 삼은 영화 두 편이 최근 나란히 개봉했습니다. 12월 24일 개봉한 독일영화 ‘운디네’와 11월 19일 개봉한 캐나다 영화 ‘안티고네’입니다.
두 영화는 두 여신과 동명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화 ‘운디네’는 베를린에서 동독 사회주의 건물을 제거하고 독일제국 황궁을 부활시키려는 도시 재개발 문제를, 영화 ‘안티고네’는 캐나다 퀘벡에서 추방 위기에 놓인 이민자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글에선 영화의 줄거리를 자세하게 소개합니다.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운디네(왼쪽) 안티고네(오른쪽)
물의 요정 ‘운디네’
독일 / 크리스티안 펫졸트 감독
영화가 시작하면 운디네(폴라 비어)는 이별을 통보한 남자친구 요하네스(야콥 마트슈엔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날 떠나면 넌 죽어. 그럴 수밖에 없어. 난 너를 죽일 거야.”
파격적인 이 대사 이후 운디네는 일하러 갔다가 30분 후에 돌아오지만 요하네스는 이미 떠나고 없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운디네는 물의 정령입니다. 인간과 사랑에 빠지면 사람이 될 수 있는데 만약 연인이 배신하면 그를 죽이고 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 역시 운디네를 모티프로 한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 운디네의 대사는 이 배경을 모르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겠지요.
영화 속에서 운디네는 역사학자로 베를린 훔볼트 포럼 박물관에서 방문객들에게 가이드를 해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는 운디네의 역사 강의(?)를 꽤 길게 보여주는데 그에 따르면 베를린의 어원은 슬라브어에서 ‘늪지대’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고, 베를린강이 흐르던 곳은 지금 훔볼트 포럼이 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훔볼트 포럼은 독일제국(19세기 말~20세기 초) 당시 베를린 궁이었던 곳입니다. 베를린이 동서로 갈라진 뒤엔 동독 인민궁전으로 재건축됐습니다. 하지만 통일 이후 독일은 ‘동독 지우기’에 나섰고 인민궁전을 헐고 과거 독일제국 시절 베를린 왕궁 모양으로 다시 지었습니다. 운디네는 베를린 시내의 모형을 해설하며 과거의 건물인 흰색 건물 사이사이 새로 지은 갈색 건물이 있다고 알려주는데 이때 다시 지어진 건물들은 대부분 동독의 유산을 허물고 지은 것입니다.
영화는 이를 ‘환상통’에 비유합니다. 환상통은 가령 팔이 잘려나가면 그 자리에 팔이 있을 때와 똑같은 통증을 느끼는 현상입니다. 베를린 역시 상당수 건물이 사라졌지만 과거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시 환상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환상통은 운디네가 새로운 남자친구 크리스토프(프란츠 로고스키)와 만남과 이별을 겪는 과정에서도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운디네는 산업 잠수부인 크리스토프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지만, 행복은 잠시뿐, 두 사람에게 커다란 시련이 찾아옵니다. 크리스토프가 물속에서 산소가 끊기는 바람에 뇌사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운디네는 자책감에 빠집니다. 자신이 크리스토프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크리스토프가 낙담해 있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은 데이트를 즐기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한 커플과 마주친 적 있는데 그 남자가 요하네스였습니다(영화를 이 결정적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길게 보여줍니다). 크리스토프는 요하네스를 바라보는 운디네의 심장이 멎어 있는 것을 느꼈고 두 사람이 심상치 않은 관계였다고 의심합니다. 하지만 운디네는 아무 사이 아니라고 잡아뗀 것입니다.
물의 요정 운디네는 요하네스에게 배신당해 물속으로 들어갈 운명이었지만 크리스토프와의 새로운 사랑으로 인해 운명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혹한 운명은 요하네스가 아닌 크리스토프를 뇌사 상태에 빠뜨렸고, 죄책감에 빠진 운디네는 뒤늦게 자신의 운명을 실행하기 위해 요하네스를 찾아갑니다.
요하네스는 집 수영장에서 접영을 하고 있습니다. 운디네는 그를 물에 담궈 죽이고 집을 빠져나와 강물 속으로 들어갑니다. 영화 초반에 요하네스에게 경고했던 그대로 실행한 것입니다.
운디네가 물 속으로 돌아가자 크리스토프는 거짓말처럼 뇌사 상태에서 깨어납니다. 운디네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크리스토프는 그녀의 흔적을 찾아서 훔볼트 포럼, 그녀의 임대 아파트를 찾아다니지만 운디네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크리스토프는 여전히 잠수부로 일하고 있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 잘 살고 있습니다. 새 여자는 임신해 그는 이제 곧 아빠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물 속에 들어갔다가 운디네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운디네가 크리스토프에게 환상통이 되어 남은 것입니다. 한밤중에 그는 침대에서 몰래 빠져나와 강물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화면 위로 피아노 선율이 차분하게 흐릅니다.
영화를 만든 크리스티안 펫졸트 감독의 전작은 ‘트랜짓’입니다. 폴라 비어와 프란츠 로고스키는 ‘트랜짓’에서 먼저 호흡을 맞춘 적 있습니다. ‘트랜짓’은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가상의 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난민 문제를 참신하게 다뤄 호평받았는데요. 하지만 직관적으로 단번에 이해되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이에 비하면 ‘운디네’는 좀더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편입니다. 감성적이고 차분한 호흡으로 인해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또 ‘운디네’는 독일영화의 뮤즈인 폴라 비어를 빼놓고는 성립할 수 없었을 영화입니다. 그녀는 크리스토프와 사랑을 나눌 때 무척 사랑스럽고, 요하네스를 물에 빠뜨려 죽일 때의 눈빛은 매우 강렬합니다. 그녀는 이 영화로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정의의 여신 ‘안티고네’
캐나다 / 소피 드라스프 감독
영화가 시작하면 캐나다 퀘벡에 사는 이민자 가족의 단란한 풍경이 보여집니다. 안티고네(나에마 리치)는 할머니, 두 오빠,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우등생이고 말썽 한 번 피워본 적이 없습니다. 다섯 식구는 노래에 맞춰 정겹게 춤을 춥니다.
큰 오빠의 이름은 에테오클레스(하킴 브라히미), 작은 오빠의 이름은 폴리네이케스(라와드 엘제인), 여동생의 이름은 이스메네(누르 벨키리아)입니다. 이름부터 신화 속 이름을 그대로 따왔는데 이들의 운명 역시 신화처럼 흘러갑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안티고네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의 큰 딸입니다. 오이디푸스와 어머니이자 왕비가 된 이오카스테 사이에 태어난 네 자녀가 바로 에테오클레스, 폴리네이케스, 안티고네, 이스메네입니다.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는 왕위를 놓고 싸우지만 결국 모두 죽고 삼촌인 크레온이 왕이 됩니다. 크레온은 두 형제 중 폴리네이케스를 반역자로 선포하고 시체를 내다버리고는 이를 거역하는 사람은 죽이겠다고 선포하는데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매장합니다. 화가 난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감옥에 가두고 그녀는 감옥에서 목을 매 자살합니다. 이를 알게 된 안티고네의 연인이자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안티고네와 하이몬이 도망쳐 잘 살았다는 다른 버전의 결말도 있습니다).
이런 배경 지식을 감안하고 영화를 보면 안티고네를 둘러싼 인물들의 운명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큰 오빠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단란했던 가정에 위기가 닥치는 것입니다. 작은 오빠는 경찰에 항의하다가 경찰을 폭행한 혐의로 감옥에 갇힙니다. 그는 불법 이민자여서 법에 따라 추방될텐데 갱단의 일원이어서 정상 참작의 여지도 없습니다. 할머니는 만약 손주가 추방돼 고국으로 돌아가면 살해당할 것이라며 절규합니다. 다섯 식구가 캐나다로 오기 전 안티고네는 갱단에게 부모를 잃은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두 오빠는 아마도 그 때문에 캐나다에서 갱단이 되었을 것입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안티고네는 고민합니다. 그리고는 머리를 짧게 깎습니다. 그녀는 아직 미성년자이고 범법행위를 한 적이 없기에 차라리 자신이 감옥에 갇히면 적어도 추방까지는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안티고네는 감옥에 찾아가 작은 오빠를 여장을 시켜 빼내고 자신이 남장을 하고 오빠인 척 감옥에 갇혔다가 적발돼 검거됩니다.
여동생이 남장을 하고 오빠를 탈옥시킨 사건은 캐나다 전체에 전파돼 안티고네는 순식간에 유명 인사가 됩니다. 처음엔 유색인종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며 에테오클레스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형성됐다가 이들 형제가 무자비한 갱단의 일원임이 밝혀지며 오히려 이들을 추방시키라는 여론으로 바뀌었는데 안티고네의 탈옥사건 이후 여론이 뒤집어져 다시 동정론이 대세가 됩니다.
할머니는 손녀가 석방되기를 기도하며 소년원 앞에서 하루종일 노래를 부르고, 지지자들이 할머니 옆에 모여들어 “안티고네를 석방하라”며 구호를 외칩니다. 거리에는 안티고네를 지지하는 벽화가 나붙고, 소년원 내 다른 소녀 수감자들도 안티고네의 저항 정신에 감화돼 그녀를 응원합니다.
안티고네에겐 남자친구 하이몬(앙투완 데로쉐)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유력한 국회의원이고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백인이지만 안티고네를 지지하고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아버지는 안티고네를 찾아가 설득하려 하지만 오히려 안티고네에게 설득당합니다. 당에서 시키는대로 하는 정치인으로 살아가던 그는 안티고네의 신념을 눈으로 확인한 뒤엔 그녀를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안티고네는 어리지만 의지가 강한,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서라면 인생까지 내던지는 불굴의 소녀입니다. 이에 비해 작은 오빠 폴리네이케스는 우유부단하고 시종일관 끌려다니고 생각 없는 남자로 묘사돼 영화를 보다보면 굳이 저런 오빠를 지켜줄 필요가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티고네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자신은 신념대로 행동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국은 아직 앞날이 창창한 안티고네가 이번 일로 인생을 망쳐버리지 않도록 작은 오빠의 거처를 알려주면 선처해 주겠다고 설득하지만 그녀는 한 마디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안티고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신화에서처럼 감옥에서 자살할까요? 하지만 영화는 다른 결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찰을 피해 도망다니던 폴리네이케스는 어이없게도 다시 경찰에 붙잡힙니다. 재판장에 증인으로 불려나온 폴리네이케스를 보며 안티고네는 절규합니다. 자신이 앞날을 포기하면서까지 인생을 걸었던 존재인 작은 오빠가 너무 쉽게 붙잡혀 오자 화가 난 것입니다. 안티고네는 법장에서 소리지르며 발버둥을 치지만 재판에서 그것이 도움이 될 리 없습니다.
폴리네이케스는 결국 추방당하고 할머니도 손자를 지키기 위해 함께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안티고네는 소년원을 나와 하이몬 가족과 함께 살게 됩니다. 하이몬의 아버지는 안티고네의 양아버지가 되어줍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안티고네에 펼쳐질 미래는 마냥 장밋빛은 아닐 것입니다. 안티고네는 하이몬을 풀밭으로 끌고가 첫 섹스를 하는데 이 장면은 영화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의 미래에 유일하게 희망을 품게 하는 장면입니다.
안티고네 역할을 맡은 나에마 리치는 이 영화가 데뷔작인 1997년생 신인 배우입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면을 노려보는 강렬한 이미지로 인해 영화가 끝나고 나면 오랫동안 잔상이 남습니다.
소피 드라스프 감독
소피 드라스프 감독은 영화의 소재를 실화에서 가져왔다고 밝혔습니다. 2008년 몬트리올 공원에서 경찰의 부적절한 개입에 한 이민자가 사망했고 이로 인해 현장에 있던 그의 형제가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자 여동생이 오빠를 구하기 위해 인터뷰에 나선 것을 보고 안티고네 신화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캐나다의 한 난민 가족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와 만나 오빠를 탈옥시키는 소녀를 그린 색다른 이야기로 재탄생했습니다. 영화는 자기 주장이 강한 안티고네처럼 힘이 넘치고 선이 굵고 강렬합니다. 토론토 영화제 캐나다 작품상, 캐나다 스크린 어워드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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