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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일 런던 영국영화협회(BFI)에서 열린 틸다 스윈튼 회고전에 봉준호 감독이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봉 감독은 관객들의 질문 5개에 답했는데요. 이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습니다.
Q 다음 작품에서도 계급 갈등을 다룰 건가요?
봉준호: 사실 테마를 먼저 생각하는 편은 아니에요. 이런 돼지를 찍고 싶다. 기차 안에서 두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찍고 싶다. 그런 단순한 충동이 우선이에요. 그런 거에 끌려서 스토리를 파고들어가다 보면 이런저런 주제에 도달하게 되곤 하죠.
‘설국열차’와 ‘기생충’ 모두 계급 갈등을 다루고 있다는 연결고리가 있죠. ‘기생충’의 최초 아이디어는 2013년에 시작됐는데요. ‘설국열차’ 후반작업 기간이었어요.
두 이야기는 모두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을 다루고 있죠. 하지만 ‘기생충’은 아주 수직적인 영화고 ‘설국열차’는 아주 수평적인 영화예요.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인데 ‘설국열차’에서 수평적으로 움직이다가 딱 한 번 수직적이 되는 순간이 있어요. 크리스 에반스가 엔진칸에 도달해 해치를 열 때 그 밑에 아이가 있잖아요. 지하실의 누군가는 ‘기생충’ 이전에도 있었네요.
Q 각본을 쓸 때 연출을 어떻게 할지도 생각하나요?
봉준호: 대부분의 작가-감독이 마찬가지일 거예요. 쓸 때 이미 이미지와 사운드가 머리 속에서 작동되고 있어요. 그런데 산업 표준에 맞춰야 하니까 저도 파이널 드래프트에 정리를 하는 거죠.
저는 집이나 사무실에서 시나리오를 쓰지 못하고 고립된 곳에서 쓰지 못하고 항상 카페에서 써요. 습관이 그렇게 들어가지고요. 사람들의 소음을 들으면서 쓰게 되는데 그게 저한테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아요. 다음달부터 그 짓을 또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되게 무서워지네요(웃음).
Q 리허설 과정을 말해주세요.
틸다 스윈튼: 세트가 있고 “여기는 가지 마세요. 떨어져요.” 그런 게 리허설 전부예요. 우리는 바로 찍는 걸 좋아해요.
봉준호: 네. 뭔가 아직 덜 짜여졌는데 그냥 찍어버리죠. 그러면 아직 어색하거나 서로 약간 쭈삣하는 게 화면에 담기게 되는데 그게 되게 리얼해 보이고 좋을 때도 있어요. 그게 항상 좋은 건 아니더라도요.
어떨 땐 테이크 사이에서 발전시켜요. 크리스 에반스가 틸다를 잡으러 왔을 때 누운 상태에서 삿대질 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것도 찍는 도중에 동작을 만들어 본 거였어요. 마지막 도끼 싸움 시퀀스였죠.
틸다 스윈튼: 우리는 리허설을 찍어요. 그거예요.
봉준호, 틸다 스윈튼, 통역사 노세현
Q 이제 막 시작한 젊은 영화감독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봉준호: 일찍 자세요. 안 자고 밤마다 너무 많이 봐서 건강이… 영화를 아침에 보니까 좋더라고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아침에 영화 보세요. 영화가 더 잘 들어와요.
틸다 스윈튼: 저는 친구들과 붙어 있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사람들과 함께 있으세요. 그들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이 신경 쓰게 되는 사람들과 함께 하세요. 그들과 어울리면서 신경을 기울이세요. 서로 부추겨보세요.
그런데 누군가 곁으로 갔는데 으음~ 시원찮으면 가까이 가지 마세요. 좋은 느낌을 갖게 해주는 사람하고만 함께 하세요.
봉준호: 저도 불안하거나 공포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제가 이제 50세인데 20대 때 저도 단편영화나 학교에서 영화를 찍을 때 항상 여러가지 불안감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모르겠어요. “나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라는 생각만 계속 했던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을 생각할 게 아니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를요.
Q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그게 장편이 될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봉준호: 아주 사소한 것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이게 장편에 걸맞는 규모를 가졌다는 판단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단지 내가 얼만큼 거기 끌리는가, 계속해서 땅을 파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드는지를 생각하죠. 충동이 강하고 마음이 끌려야 계속 파내려갈 수 있잖아요.
제일 처음 아이디어를 가지고 꼭 미리 판단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아주 사소하거나 “이런 것이 장편영화가 되겠어?” 라고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아주 거대하고 엄청난 주제로 발전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쓸데없이 일찍 사형선고를 내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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