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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된 아베 정권 저격 영화 ‘신문기자’가 17일 한국에서 개봉하며 관객을 맞고 있습니다.
영화는 2017년 아베 신조 총리의 사학재단 가케학원 스캔들을 모티프로 하고 있습니다. ‘가케학원 스캔들’이란 가케학원 소유 오카야마 이과대학이 수의학부 신설을 정부로부터 허가받는 과정에서 아베 총리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입니다. 수의학부 신설 허가가 난 것이 52년만의 일인데 단 1곳만 규제완화 혜택을 받았고 수의학부가 들어선 곳이 국가전략특구로 지정된 곳이어서 정부로부터 사업비 절반을 지원받았습니다. 결정적으로 가케학원 이사장 가케 코타로가 아베 총리와 오랜 친구 사이임이 알려져 특혜 의혹이 확산됐습니다.
영화 '신문기자'에서 요시오카 에리카 기자 역할을 맡은 심은경
영화는 이 스캔들을 취재하며 아베 정권과 대립한 도쿄신문 모치즈키 이소코 기자의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모치즈키 기자는 기자회견에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무성의한 답변에 굴하지 않고 무려 23차례나 질문을 던져 화제를 모았는데 이를 본 미국 뉴욕타임스 기자는 “일본이 언론통제하는 독재국가 같다”는 취지의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지난 6월 28일 일본에서 개봉해 10월 14일까지 관객 46만명, 흥행수익 5억5천만엔(약 63억원)을 거둬들였습니다. 세계 4위의 일본 영화시장 규모를 감안하면 미미한 성적이지만 미디어의 주목을 받지 못한 저예산 영화가 불과 143개 상영관에서 불러모은 관객이라는 점에서 보면 무시할 수 없는 성적입니다.
영화에서 심은경이 연기한 요시오카 에리카는 지역일간지 도우토신문 사회부 4년차 기자입니다. 요시오카는 유능한 기자였던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뒤 일본에 정착해 기자가 된 인물로 그려집니다. 당초 일본 여배우들이 이 역할을 고사해 한국배우 심은경이 캐스팅됐다고 일부 일본 매체발로 보도됐었습니다만 지난 15일 내한한 카와무라 미츠노부 PD는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다른 배우에게는 출연 제안을 한 적 없다”고 밝혔습니다. 처음부터 심은경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발언은 심은경과 일본 배우들을 위한 배려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심은경 캐스팅으로 인해 한국에서 더 주목도가 올라간 것은 사실입니다.
영화 '신문기자'
심은경은 외부 압력 속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신문기자 역할을 무난하게 소화합니다. 클로즈업에서 다소 부자연스럽긴 합니다만 낯선 제작 환경에서 익숙하지 않을 일본어 연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그동안 코믹한 이미지가 강한 편이었고 한때 연기 논란이 있었지만 이 작품으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는 총리의 정적이 한 여성과 부적절한 스캔들에 휘말렸다는 기사가 전국 모든 일간지 1면 사이드톱으로 실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요시오카와 동료들은 이것이 권언유착이라고 의심하지만 대응방법이 없어 좌절합니다. 이렇게 영화는 첫 장면부터 정권의 나팔수가 된 일본 언론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요시오카는 익명의 팩스 제보를 받습니다. 눈을 가린 양을 그린 그림을 표지로 한 문서의 내용은 ‘정부가 대학 신설을 추진한다’는 것입니다. 요시오카는 대학 신설이 담당부처인 문부과학성이 아닌 내각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는데 의문을 품고 내각부를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두 축으로 전개되는 영화의 다른 한 축은 내각부 정보조사실에 근무하는 공무원 스기하라 타쿠미가 맡고 있습니다. ‘콜보이’ ‘고독한 늑대의 피’ 등에서 주연을 맡아온 31세의 배우 마츠자카 토리가 연기합니다. 외무성에서 파견된 공무원인 스기하라가 맡은 업무는 여론조작입니다. 총리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스캔들을 퍼뜨리고, ‘미투’에 나선 여성을 꽃뱀으로 몰아가는 등 인터넷 여론을 만들어내는 일을 합니다. 회의감을 갖는 그에게 상관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며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형식만 있으면 된다”고 다그칩니다.
영화 '신문기자'에서 내부고발자 스기하라 타쿠미 역할을 맡은 마츠자카 토리
영화는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만나 내각부의 대학신설 계획 이면의 음모를 폭로하는 과정으로 나아갑니다. 개인의 영달과 사회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스기하라는 내부고발자가 되기를 자처하고 사명감 가득한 기자는 그를 적극 돕습니다.
영화는 저널리즘을 정공법으로 다룬 ‘스포트라이트’ ‘더 포스트’처럼 끈질긴 취재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만 만듦새가 두 영화들만큼 뛰어난 것은 아니어서 대사가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플롯 구성이 단조로워 밋밋하게 느껴진다는 점은 아쉽게 남습니다. 모티프가 된 가케학원 스캔들이 흐지부지 넘어간 탓인지 영화의 결말도 다소 모호하게 처리되어 있어 결정적 한방을 기대한 관객에겐 실망감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 '신문기자'에서 요시오카 에리카와 스기하라 타쿠미가 만나 내각부 내부문건을 확인하는 장면
일본에선 영화 ‘신문기자’가 예민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한국 관객에게까지 ‘신문기자’가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선 그동안 직설법, 풍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영화가 만들어지고 흥행해왔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여론조작 댓글부대, 민간인 사찰, 정권과 유착한 언론 등은 이미 우리도 이전 정부에서 경험해본 것들이라 기시감이 느껴지는 정도입니다. 오히려 이런 영화가 일본에서 4대 배급사(도호, 도에이, 쇼치쿠, 가도카와) 지원 없이 저예산으로 이제 겨우 한 편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일본사회의 현주소를 엿보게 됩니다. 한국에서 정치영화는 CJ 같은 대기업이 블록버스터로 키울 정도로 인기 장르였습니다.
일본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영화시장을 갖고 있고 자국영화가 시장점유율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지만 흥행작은 대부분 애니메이션입니다. 한해 제작되는 실사영화는 300편이 채 안되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특수촬영물이나 만화 원작의 프랜차이즈 액션 무비, 호러영화 등 장르물에 국한됩니다. 한 마디로 현실세계와 동떨어진 판타지를 선호하는 것이죠. 사회 드라마는 거의 찾기 힘든데 그나마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는 가족 드라마와 일상 소재 로맨스 정도가 소소하게 인기를 얻는 편입니다.
일본에 정치영화가 없는 것은 시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장성이 없는 것은 대중의 수요가 적기 때문이고 이는 일본인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궤를 같이 합니다. 대중이 수동적이 되면 권력자를 제대로 감시할 수 없습니다. 위정자들은 대중의 무관심을 등에 업고 마음껏 권력을 휘두릅니다. 영화 속에 눈을 가린 양 그림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조작된 세계에 살아가면서 진실을 보지 못하는 일본인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 주말에도 광장에 나가 직접 민주주의를 시전하는 한국인들에겐 일본인들의 이런 정치 무관심이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일본에서 언론의 감시 기능이 약해진 것은 공교롭게도 2012년 아베 정권 출범과 시점이 일치합니다. 언론감시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가 매년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일본은 2019년 67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2010년 11위에서 급격하게 추락한 것입니다. 2012년 22위, 2013년 53위를 거쳐 2016년엔 72위까지 내려갔습니다.
한국은 올해 41위를 기록하며 아시아 1위로 올라섰는데 박근혜정권 때인 2016년엔 70위로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당시 언론자유가 낮아진 가운데도 정치영화가 활발하게 제작됐다는 것이 일본과의 차이점입니다. 어쩌면 ‘신문기자’가 일본사회에서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일깨우는 불쏘시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선 언론자유보다는 반대로 언론에 대한 신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서 올해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22%에 그쳐 38개 조사대상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조사를 시작한 2016년 이래 한국은 4년 연속 꼴찌입니다. 반면 일본 언론의 신뢰도는 39%로 25위였습니다.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보다는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입니다.
언론학계에선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낮은 이유로 만성화된 정파적 보도, 과당경쟁으로 인한 저품질 기사 양산을 꼽습니다. 문제점을 알면서도 변하지 않는 이유는 정파적 보도의 조회수가 높고(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논란이 있겠습니다만), 유료 독자가 적어서 클릭당 광고 수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영환경에 있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신문기자 수는 대략 1만5000명입니다. 여기에 방송, 통신, 인터넷 매체에서 기자로 종사하는 사람을 모두 합하면 약 3만2500명 정도 됩니다. 인터넷 매체가 늘어나면서 5년 전에 비해 6000명가량 늘어난 수치입니다.
기자 수가 늘어난 만큼 사회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촘촘하게 조명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똑같은 기사의 재생산만 확대됐습니다. 가까운 예로 ‘조국 사태’ 때 클릭률을 높이기 위한 비슷한 기사가 쏟아진 것 역시 기자 수의 급증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발행인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0일 뉴욕타임스(NYT)의 성공비결을 분석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는데 여기서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발행인의 말이 눈길을 끕니다. 그는 NYT가 디지털 시대 위기를 극복한 비결은 ‘저널리즘’에 집중한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쓰레기 같은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기에 뉴스는 콘텐츠가 아닌 저널리즘이 되어야 한다”며 “완결성 있는 기사를 다양한 형식으로 매일 만들어내면서 독자들에게 유료 구독을 요청하자 그때부터 구독이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언론 자유는 대외환경 변화를 통해 쟁취하는 것이지만 언론 신뢰는 대외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기에 더 어렵습니다. 언론 입장에선 그동안 방치해둔 폐해를 성찰하며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신문기자’에게 권력에 맞설 용기가 필요하다면 한국의 ‘신문기자’에겐 타성에 맞설 용기가 필요합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영화 ‘스파이더맨’의 유명한 대사를 되새겨볼 때입니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19/10/26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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