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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타이밍 한 번 기막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격분한 관객이라면 일제시대 일본군의 조선인 학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을 호쾌하게 박살내는 장면을 보며 전의를 불태울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원래 광복절 특수를 노리고 기획됐지만 한일 경제전쟁 시국과 맞물려 더 큰 폭발력을 갖게 됐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현재 중국 영토인 만주 봉오동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끈 독립군이 매복해 있다가 침입해온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다.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최초로 승리한 전투로 역사에 기록돼 있다. 봉오동의 승전보는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졌다.
원신연 감독은 독립신문 보도에 근거해 영화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당시 상해임시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은 사상자가 157명 발생한 반면 아군은 4명에 불과했다. 영화는 역사왜곡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에필로그에 독립신문 보도 내용을 첨가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역사왜곡보다는 지나친 평면주의다. 일본군은 시종일관 악랄하고 독립군은 등장부터 정의롭게 그려지는 단순 이분법은 아무리 애국심을 갖고 본다고 하더라도 지나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영화는 소규모 인원으로 일본군을 격파하는 독립군을 마치 어벤저스처럼 그리고 있다. 칼 잘 쓰는 힘센 리더 해철(유해진), 발이 빠른 장하(류준열), 저격수 병구(조우진) 등 티격태격하면서 악의 무리를 처단해 가는데 이들은 실제 독립군에서 모티프를 따온 인물들이 아니라 (홍범도를 제외하고) 모두 감독이 창작한 허구의 인물들이다. 이름없이 싸운 장삼이사 독립군들을 재조명하겠다는 감독의 취지는 좋으나 다들 어디서 많이 보던 캐릭터들처럼 느껴진다는 건 아쉽다.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 등 히어로물을 봐온 관객이라면 캐릭터간의 유사점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실제 사건에 애국주의에 기반한 허구가 뒤섞인 영화는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반일감정에 불타 통쾌한 액션을 즐기러 간 관객이라면 류준열의 기관총, 유해진의 원샷 원킬 칼부림의 단순함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테지만, 드라마를 기대하고 간 관객이라면 평면적인 캐릭터가 중구난방하게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매끄럽지 못한 전개에 실망할 수도 있다.
일본 미화 논란에 휩싸였던 '마이웨이'(2011), '군함도'(2017) 등의 처참한 실패 이후 일제시대를 그린 한국영화는 대체로 평면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나찌 독일을 그린 미국과 유럽 영화들과 비교해봐도 아쉬운 부분이다. '히틀러=악' 등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드라마와 서스펜스를 구현해낸 영화는 얼마든지 있다. 한국영화 제작자들의 고민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일본의 보복 조치에 대항해 자발적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나선 한국인들의 심정은 일본을 무조건 악마화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힘으로 밀어 붙이려는 일본이 잘못된 과거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우리 스스로 국력을 키워 일본을 극복하자는 다짐이 더 클 것이다. 민간의 불매운동이 반일감정을 더 부추기려는 정치권이나 지자체를 말리는 현명함까지 보이면서 진행되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하지만 격앙된 감정을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는 이 영화는 많이 아쉽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기에는 총제작비 190억원을 투입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은 꽤 크다.
충무로의 라이징 스타 최유화는 독립군의 홍일점 자현 역할을 맡아 기대를 모았지만 비중이 너무 작은 탓에 얼굴마담 역할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에는 일본 배우가 제법 등장한다. 일본군이 대부분 잔혹한 악마로 묘사되는 이 영화에 용기있게 출연해 광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낸 기타무라 카즈키, 이케우치 히로유키에게 박수를 보낸다. 독립군의 포로가 된 어린 일본군 유키오 역의 다이코 코타로는 한쪽으로 치우친 영화에 미약하게나마 균형감을 잡아준다.
봉오동 전투 ★★
부담스러운 단순함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9/08/611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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