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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저에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죠. 전 정말 그렇게 살았어요.”


생존 화가 중 가장 작품값이 비싼 화가(2019년 5월 제프 쿤스가 기록을 깨기 전까지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은 9030만 달러로 최고가였다), 전시회를 열면 30만명(2019년 서울시립미술관), 47만명(2017년 런던 테이트 브리튼 회고전)을 불러모으는 화가, 동그란 뿔테 안경에 염색한 금발머리로 패션 아이콘이 된 화가, 82세에도 매일 그림을 그리고 새로운 기기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호크니’가 지난 8일 개봉 후 관객 1만명을 돌파하며 잔잔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8월 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호크니전을 통해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면 영화 ‘호크니’는 이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충실한 해설서 역할을 해줄 것이다.


2014년 호크니가 77세일 때 만들어진 영화는 여전히 스마트한 호크니의 인터뷰와 젊은 시절 영상, 홈비디오, 그리고 생존해 있는 호크니의 모델들이 당시 그림을 재현한 영상 등으로 구성돼 있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거의 전생애를 다루고 있는데 부모와의 관계, 커밍아웃한 이유, 절친이었던 큐레이터 헨리와의 일화, 예술에 대한 생각 등을 엿볼 수 있다.


아서 램버트, 돈 바카르디, 셀리아 버트웰, 조지 로슨 등 그의 그림에 모델로 선 인물들이 나이 든 모습으로 출연해 호크니의 그림을 재현한다.


호크니의 절친이었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큐레이터 헨리


호크니가 남긴 말들을 챕터 제목처럼 사용해 이해를 돕고 있으며 자료화면이 없는 경우에는 뛰어난 음향효과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들려줘 지루하지 않게 한다. 음악감독 존 할의 스코어는 영화 전체를 휘감아 몰입을 돕는다.


영화는 각종 인터뷰와 경매 기록을 통해 그의 유명세를 '전시'하는 대신, 시작부터 호크니에게 "당신은 왜 유명한가요?"라고 질문하고 호크니가 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호크니 본인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한다.



“전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과 그것을 단순화해서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그런 의도가 잘 전달된다면 사람들이 반응하겠죠.”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대상을 단순화하는 것이 호크니 작품의 특징이다. 영화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이를 구현했는지를 보여주는데 'Beverly Hills Housewife'(1966)를 작업할 땐 흑백사진을 찍은 뒤 이를 바탕으로 드로잉을 그리고 여기에 그가 상상한 색깔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어차피 현실과 똑같은 색깔은 표현할 수 없기에 일부러 컬러사진을 찍지 않았다.


Beverly Hills Housewife (1966)


LA 시절 수영장 작품들을 그릴 땐 물의 무늬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끈질기게 물을 관찰했다. 그 결과 휘어져 있거나 흔들리거나 튀어오르는 등 물의 여러 단면을 화폭에 남겼다.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A Bigger Splash'(1967)의 튀어오른 물방울은 1초도 안 되는 찰나를 표현하고 있지만 일주일 동안 관찰하며 그린 결과물이다. 이 작품엔 굳이 테두리를 둘렀는데 이는 물과 그림 밖 현실을 분리시키기 위함이다.


“있는 그대로 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 보려고 사용하는 도구들 때문에 결국 눈을 속이게 되죠.”


A Bigger Splash (1967)


눈에 보이는 것을 항상 의심하고 다중 시점에서 포착하기를 즐긴 호크니에게 사진은 양가적인 매체였다. 그는 1967년부터 35mm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늘 사진을 찍었고 1970년대부터는 포토콜라주 작업을 하면서 사진작가로도 활동했지만 한편으로는 사진은 진실을 위장하는 매체라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진 속 정지된 순간은 비현실적입니다. 드로잉이나 그림에 있는 생생함이 사진엔 없습니다.”


그는 또 2015년 7월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진에는 오직 하나의 뷰포인트만 있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잖아요. 수천개의 뷰포인트가 있죠. 사진은 진짜가 아니에요. 사진이 리얼리티라는 건 나이브한 생각입니다."


그의 포토콜라주 작품이 수많은 분절된 시점으로 이루어진 것은 이 같은 철학을 기반으로 한다.



호크니는 두려움 없는 혁신가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에 앤디 워홀급 추앙을 받는 예술가이면서도 항상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여 이미지를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단순히 남들과 다르게 보려는 시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행한다.


예전엔 팩스기기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고, 요즘엔 포토샵, 아이폰, 아이패드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다. 붓, 필름카메라, 원고지 등 한 가지 도구만 고집하는 노장들과 다른 행보다. 그는 아이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보고는 원근법에 대한 철학을 재정립하기도 했다. 파노라마 사진을 돌돌 말면 가운데 가상의 소실점이 생기는 것에서 착안해 미술관의 방 하나에 작품 4점을 걸어놓고 가운데 선 관객이 소실점 역할을 하도록 만든 참여형 작품도 있다.


그는 15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코가 고안한 뒤 미술에 규범이 된 원근법 자체에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원근법은 그동안 하나의 소실점에 갇혀 있었는데 이제 더 넓어져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62년 고향 브래드퍼드에서 부모님과 함께


수많은 예술가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붓을 놓지만 호크니에겐 크게 어려운 시절이 없었다. 1937년 영국 웨스트요크셔주 브래드퍼드에서 다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화가를 동경했던 그는 대학 졸업 후 예술가로서 출발할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이는 그가 처음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호크니가 런던의 왕립예술대학을 다니던 1959~1962년은 추상주의가 대세인 시대였다. 그 역시 액션 페인팅의 대가인 잭슨 폴록을 따라하곤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들을 따라하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 그는 인류가 선사시대부터 그려온 단순하고 원초적인 재현주의적 그림에 추상성을 가미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다듬었다.


호크니의 LA 저택



대학을 졸업한 호크니는 1년 뒤 런던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이 전시회는 모든 작품이 다 팔릴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이 돈으로 그는 '예술 불모지'인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모험을 감행해 그만의 블루오션을 찾았다. 예술가로서 그의 대성공은 이처럼 타고난 모험가적인 기질이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시대와 조우한 덕분이다.


사교적인 성격으로 인해 그의 주변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고, 대중 친화적인 예술가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만약 호크니가 요즘 같은 유튜브 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을지도 모르겠다.



랜달 라이트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만듦새가 훌륭하고 매장면마다 공을 들여 보는 재미도 갖췄다. 호크니의 삶과 작품에 대해 거의 모든 부분을 나열하고 있어 한 예술가의 연대기를 되짚어보는 계기로 삼기에 좋다. 하지만 넓은 폭만큼 깊이까지 갖추지는 못해 호크니의 창작론이나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관객이라면 약간의 아쉬움은 남을 것이다.


피터 슐레진저와 함께


이 영화가 호크니가 직접 출연한 첫 영화는 아니다. 1974년 잭 하잔 감독이 만든 'A Bigger Splash'라는 호크니 걸작과 동명 제목의 다큐드라마가 있었다. 호크니가 동성연인 피터 슐레진저와 헤어진 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진 모습을 담았다. 시간이 흐른 뒤 호크니는 저택 수영장에서 영감을 얻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는 호크니와 피터의 게이 라이프에 초점을 맞춰 지나친 선정성 탓에 영국에서 제한상영가인 X등급을 받았고 미국에선 세관에 압수당하기도 했다. 호크니 역시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아 감독에게 돈을 주고 판권을 사려고까지 했으나 나중엔 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s://www.mk.co.kr/premium/life/view/2019/08/26440/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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