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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슈퍼히어로 중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는 누굴까? 미국 코믹스 위키 코믹바인은 유저들에게 최고의 마블 캐릭터 100개를 꼽도록 했는데 1위의 영광은 스파이더맨이 차지하고 있다. 랭커닷컴 투표에서도 마찬가지로 스파이더맨이 1위다.


인기를 반영하듯 스파이더맨을 소재로 한 영화도 많아서 IMDB에 등록된 작품만 해도 212편에 달한다.


1962년 마블 코믹스 '어메이징 판타지(Amazing Fantasy)' 15호 표지


1962년 마블 코믹스 ‘어메이징 판타지(Amazing Fantasy)’ 15호로 데뷔한 스파이더맨은 당시 망해가던 잡지를 살릴 정도로 10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였다. 만화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대중문화의 흐름이 넘어가던 1970년대 이후엔 영화화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한동안 다른 슈퍼히어로에 밀렸지만, 이후 특수효과 기술이 발달하며 이 날렵한 슈퍼히어로는 스크린에 부활할 수 있었다.


영화 '스파이더맨'(2002)


스파이더맨이 예전 인기를 되찾은 분기점은 2002년 토비 매과이어 주연의 영화 ‘스파이더맨’이었다. 소니픽처스가 제작한 이 영화는 제작비 1억3900만 달러 대비 전세계에서 8억2천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며 스파이더맨의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 이 영화 이후 16년 동안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영화가 무려 100편가량 쏟아져 나왔다.


당시 영화를 직접 만들까 말까 저울질하던 마블은 이 영화의 성공을 본 뒤 마블 스튜디오를 확장하기로 결정한다. 지금의 ‘어벤져스’의 시작은 결국 스파이더맨이었던 셈이다.



왜 스파이더맨인가?


트라우마가 있는 동물과 결합한다는 점은 ‘배트맨’(1939년 첫 등장)과 유사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설정은 ‘슈퍼맨’(1938년 첫 등장)과 닮았다. 어떻게 보면 스파이더맨은 20년 이상 선배인 두 영웅의 장점을 두루 갖춘 캐릭터다. 그런데 여기 스파이더맨만의 두 가지 차별화된 매력이 있다. 하나는 슈퍼히어로 중 보기 드문 10대 청소년이라는 것, 또 하나는 미완의 영웅이라는 점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10대 청소년이 주인공이기에 스파이더맨 서사는 항상 성장담이고, 청소년기의 고민이 녹아 있다. 배트맨, 아이언맨 등이 부자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이야기 뼈대로 삼고, 슈퍼맨, 헐크 등이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의 잠재력을 말하고, 토르가 왕족 간의 권력관계를 다루고, 엑스맨이 아싸(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라면,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를 가장 좋아하는 타깃인 10대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준다는 점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스파이더맨'(2002)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에 등장해 유명해진 이 경구는 비단 액션 영화를 즐기는 팬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메시지를 찾고자 하는 관객까지 만족시킨다. 큰 힘을 쥐고도 책임지지 않는 권력자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스파이더맨은 일종의 반면교사 역할을 할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영웅이기에 더 매력적이다. 마블의 명예회장이었던 스탠 리가 창조한 마블의 많은 캐릭터들은 대부분 무언가 결핍되어 있어서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스토리의 중요한 포인트로 삼고 있는데, 10대 질풍노도 사춘기를 겪고 있는 스파이더맨은 다른 어떤 마블 캐릭터보다도 결핍 덩어리다. 그는 어벤져스 선배들 앞에서 주눅 들고,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절절 매고, 출생의 비밀을 알고 끙끙거리고, 학교에선 왕따 당하고, 현장에선 사고 칠까 겁내는 등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러한 결핍들이 그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더 돋보이게 한다. 관객은 그에게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를 응원하게 된다.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


로봇과 합체할 때 스스로를 부정하는 패배감과 맞서야 했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처럼, 스파이더맨 역시 특별한 능력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바닥이 깊을수록 더 높이 날 수 있기에 스파이더맨 영화는 항상 갈팡질팡하는 어린 영웅의 심리적 바닥을 보여준 뒤 비로소 그가 하늘 높이 치솟는 광경으로 넘어간다. 마침내 스파이더맨이 온갖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빌딩숲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때 관객 역시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평행우주에서 온 새로운 스파이더맨들


(아래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12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에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스파이더맨들이 등장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새로운 스파이더맨들. 왼쪽부터 스파이더 페니 파커, 스파이더 그웬, 스파이더 햄, 마일스 모랄레스, 피터 B 파커, 스파이더 누아르.


스파이더 그웬, 스파이더 페니 파커, 스파이더 누아르, 스파이더 햄 등 제각각 다른 매력을 지닌 새로운 캐릭터들이 악당 킹핀이 작동시킨 차원이동기를 통해 스파이더맨이 살고 있는 현재의 뉴욕에 나타난다.


현재의 시공간에서도 스파이더맨의 세대 교체가 이뤄진다. 성인이 된 피터 B 파커는 영예롭게 죽고, 흑인 소년 마일스 모랄레스가 새롭게 거미의 능력을 갖게 된다(스파이더맨은 청소년의 성장 서사여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마일스 모랄레스.


흑인 소년 마일스 모랄레스는 2011년 마블 코믹스를 통해 처음 세상에 나왔다. 당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래퍼 도날드 글로버를 모델로 한 캐릭터로 만화가 브라이언 마이클 벤디스와 사라 피첼리가 만들었다. 스파이더맨의 창조자인 스탠 리도 인종의 다양성이 어린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마일스 캐릭터를 승인했다.


여섯 명으로 늘어난 스파이더맨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살고 있던 뉴욕을 책임지다가 강제로 평행우주로 끌려나온 비운의 캐릭터들이다. 페니 파커는 서기 3000년에서 온 일본 소녀, 누아르는 1930년대 흑백 탐정, 햄은 썰렁한 유머가 특기인 만화 캐릭터로 코믹스에서 튀어 나왔다. 제법 비중이 큰 그웬은 피터 파커의 메리 제인처럼 향후 마일스의 파트너가 될 예정이다.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스파이더 그웬.


거미에 물려 의도치 않게 스파이더맨이 된 뒤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당황하던 마일스는 친구들을 만나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지만, 곧 이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까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던 마일스는 책임감의 무게가 막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비로소 능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처럼 마일스는 자신을 비웃던 막강한 능력의 동료들 앞에서 보란듯이 길잡이 역할을 해내면서 성장한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청소년의 성장담, 미완의 영웅이라는 스파이더맨 특유의 스토리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여기에 ‘반지의 제왕’처럼 다양한 종의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고, 코믹스의 특징을 살린 비주얼로 시선을 잡아 끈다. 200편이 넘게 만들어질 정도로 친숙한 캐릭터라는 점을 의식한 듯 익숙한 대사나 설정은 아예 “이건 흔한 스파이더맨 진행이야”라고 먼저 치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클리셰를 갖고 놀기까지 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영화가 공개된 후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100%의 호평이 이어진 것은 이처럼 한 장면도 기존의 방식과 똑같게 만들지 않으려는 새로운 시도를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운 스파이더맨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어려운 새로움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에는 최근 작고한 마블 캐릭터의 창시자 스탠 리가 카메오 출연하는데 만화로 태어난 그가 만화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마무리다. 엔드크레디트에서 영화는 그를 추모하는 감동적인 자막을 준비해놓고 있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

눈이 황홀한 코믹스 비주얼. 클리셰를 갖고 노는 신선함. 특별한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premium.mk.co.kr/view.php?no=24228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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