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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가를 조사하면 늘 상위권에 꼽히는 김영하는 원래 유명했지만 최근들어 더 유명해지고 있습니다. 그전의 유명세가 소설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세였다면, tvN [알쓸신잡] 출연 이후 요즘의 유명세는 ‘뇌섹남’으로서 보편적인 유명세라서 더 폭넓습니다. 문학계를 대표하는 스타라고 할까요? [알쓸신잡] 시즌1이 한창 방영중일 때 출간한 단편집 [오직 두 사람]은 작년 한국소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김영하는 1995년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한 뒤 1996년 첫 장편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장편 [검은 꽃]으로 2004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단편 [옥수수와 나]로 2012년 이상문학상을 받았습니다. 김영하의 책은 외국어로 번역돼 국외에도 활발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외국에서도 수상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김영하의 글이 인기 있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첫째, 도회적이고 직관적인 문체, 둘째, 예측하기 힘든 전개입니다. 김영하를 흉내내는 작가는 많지만, 김영하처럼 쓰는 작가는 김영하뿐입니다. 사실 김영하도 초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과 닮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 의식적으로 하루키 스타일을 피하려 하는 게 눈에 보입니다.


김영하 소설의 장점은 무엇보다 ‘구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소설에는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까 싶은 전개가 많은데 이는 그만큼 그가 문체 뿐만 아니라 소설의 구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예측하기 힘든 전개는 소설을 신선하게 만듭니다. 덕분에 그는 나이가 50이 넘었어도 여전히 ‘젊은 작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김영하가 지난 2014년~2015년 사이에 펴낸 산문집 [보다] [말하다] [읽다]에서 내비쳐온 창작론, 그리고 그가 여러 잡지에 기고한 글들과 ‘세바시’를 비롯한 여러 강연에서 해온 말들을 바탕으로 김영하의 글쓰기 비법 7가지를 정리했습니다.



1. 연애편지 쓰듯 사랑을 담아 써라


"연애는 인간을 성숙시킨다. 글쓰기도 그렇다. 일단 쓰면 삶은 다른 옷을 입고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김영하는 한 강연에서 글쓰기를 연애편지 쓰듯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습작을 했나요?" 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한다고 합니다. "연애편지를 많이 썼다는 것 밖에는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연애편지는 독자가 분명하고 목적이 확실한 글입니다. 오직 한 사람의 독자를 설득하고 감동시키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작가는 독자의 성격, 취향, 수준을 알고 있고 더 알고자 갈망합니다. 독자에 대해 많이 알수록 분명 더 좋은 글이 나올 것입니다. 타깃 독자가 명확하다는 것은 글쓰기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연애편지를 쓰는 작가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다양한 비유와 인용을 동원할 것입니다. 절대 대충 쓰지 않는 글이 연애편지입니다. 욕망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욕망이 나로 하여금 나의 재능을 모두 소진하게 만듭니다.


수십 번 고치고 다시 읽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낼까 말까 고민하는 글이 연애편지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죠. 글을 쓸 때 연애편지 쓰듯 한다면 감동적인 글을 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요즘엔 사랑에 빠진 사람이 편지 대신 카톡 문자로 사랑을 고백하는 경우도 흔한데 그런 경우에도 한 글자 한 글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이라는 감정은 소중하니까요.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도 3년 동안 옥중에서 사랑하는 외동딸 인디라 간디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세계사 편력]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사랑의 힘은 이처럼 강합니다.


사랑하는 연인, 혹은 아이, 꽃, 나무, 자전거, 배우 등 뭐든 자신의 사랑에 대해 정성을 다해 써보세요.



2. 오감을 표현해 써라


“글을 쓴다는 것은 간접적인 행위지만, 오감을 동원하면 그것은 마치 놀라운 가상현실처럼 우리에게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줍니다.”


김영하는 [말하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글을 쓸 때 눈에 보이는 것만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의 감각 기관 중 시각이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글을 쓸 때조차 절대적으로 시각에 의존하는 것이죠. 하지만 시각만을 이용해 글을 쓰는 것보다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함께 이용하면 훨씬 표현력이 풍부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김영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행복했던 경험을 오감을 이용해 써보라는 과제를 내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은 글을 쓰다가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행복했던 기억이 여러 감각을 통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라고요.


예를 들어 바다에 대해 쓴다면, 일반적으로 시각을 이용한 글쓰기는 푸른 물결, 멀리 보이는 수평선, 하늘의 갈매기 등에 대해 쓸 것입니다. 하지만 오감을 이용하면 바닷물의 짠맛, 갈매기들의 울음 소리, 코를 시큰거리게 하는 냄새, 종아리에 감겨 미끈거리는 해초 등에 대해서도 쓰겠지요. 표현이 풍부해질수록 글은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런 글쓰기가 습관이 되면 일상에서도 오감에 더 민감해집니다. 더 많은 더듬이로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기억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느낀 감각은 감성 근육으로 남습니다. 육체 근육이 몸을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감성 근육이 발달한 사람은 내면이 견고해져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비단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감을 적극 개발해 보세요.


“문학은 태생적으로 개인주의적이며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도 모두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세계입니다. (중략) 잘 느끼자. 감성 근육을 키우자. 그리하여 함부로 침범당하지 않는 견고한 내면을 가진 고독한 개인들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자. 이것이 제가 오늘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 김영하 [말하다] 중



3. 감동, 재미, 정보를 줘라


“고대 그리스의 수사학 학교에서는 좋은 연설에 다음 세 가지가 필수적이라고 가르쳤다. 사람들을 감동시키든가 웃기든가, 아니면 유용한 정보를 줘라.”


이탈리아 시칠리아 여행기를 담은 책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에서 김영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영하는 시칠리아로 떠나기로 마음 먹고 집 안의 책을 정리할 때 이 기준을 적용해 책을 선별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감동시켰거나 즐겁게 해주었거나 아니면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책은 살려두었고, 세 가지 중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책들은 헌책방에 내다 판 것이죠.


김영하의 장편소설 [퀴즈쇼]에도 비슷한 문장이 나옵니다. “연설을 할 때는 감동을 주든가 지식을 줘라. 그것도 안 되면 즐겁게라도 해줘라.”



감동, 재미, 정보. 단순해 보이지만 어렵습니다. 어떤 글이 감동적일지, 어떤 글이 재미있을지, 어떤 글이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을지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보를 가진 글은 기자들의 글쓰기입니다. 감동을 지닌 글은 소설가들의 글쓰기입니다. 재미를 가진 글은 예능작가들의 글쓰기입니다. 각기 전문 분야가 있는 글쓰기입니다. 이런 전문가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는, 살아남는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어렵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어렵고, 쉽다고 생각하면 정말 별 것 아닙니다. 우리가 살면서 감동했던 순간, 재미를 느꼈던 순간, 또 나만 몰랐던 정보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쓰면 됩니다. 내 글을 읽어줄 나만의 독자를 상정하고 쓰면 됩니다. 지금은 독자가 한 명뿐이더라도 계속 쓰다보면 늘어날 거라고 생각하면서 쓰면 됩니다.


글쓰기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쓰다 보면 자신이 감동, 재미, 정보 중 어떤 쪽에 더 잘 맞는지 자연스럽게 파악하게 될 것입니다.



4. 서랍 속에 숨겨두고 싶은 글을 써라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 자기 안의 괴물을 만나는 것, 그 괴물을 만나 담대하게 첫 문장을 쓰는 것이다.”


김영하는 월간 [신동아] 2002년 12월호에 기고한 글 ‘당신도 글을 잘 쓸 수 있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영하는 글쓰기의 고갱이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괴물을 끄집어내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내 안에 숨어 있는 나도 잘 몰랐던 괴물을 발견하는 것은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서술할 때 솔직하고 담대한 글이 탄생합니다.


김영하에게 글쓰기의 동력은 기쁨 혹은 반항심입니다. 그는 서랍 속에 숨겨두고 싶은 글,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보여줄 수 없는 글을 쓰라고 말합니다. 자기 내면의 억압, 부모로부터의 억압, 학교로부터의 억압, 성적인 억압 등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글쓰기의 진정한 기쁨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증권가 지라시나 대나무숲 익명의 글을 읽을 때 쾌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은밀한 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금서로 지정된 책에 더 호기심이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금지된 것을 욕망합니다. 품절된 상품을 더 사고 싶고, 가지 말라고 하는 곳에 더 가고 싶습니다.


금지된 글을 쓰려면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면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글로 끄집어내야 합니다. 차마 말로 하지 못할 금지된 단어, 부끄러운 문장, 과담한 표현을 정돈되지 않은 생각이 아니라 글로 표현하는 순간, 그 글은 전혀 다른 모양으로, 좀더 객관적으로 보입니다. 그것은 그동안 미처 몰랐던 나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내가 이런 억압을 받고 있었구나, 미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나를 많이 알게 될수록 더 좋은 글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 금지된 글을 쓰세요.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글을 쓰세요.


“(소설가인) 우리는 광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깊게 파고 들어가는 일을 하고 있다.” - 김영하



5. 남의 글을 평가하지 말고 내 글도 평가당하지 말라


“많은 사람들이 질책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격려를 받을 때 대부분의 작가는 더 잘 쓰게 된다고 봐요.”


김영하는 책 [글쓰기의 최소원칙]에서 문학상을 받은 소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쓰기는 타인과의 경쟁이 아닙니다. 자신과의 투쟁입니다. 언제나 이쯤에서 타협하고자 하는 유혹에 맞서야 하기 때문에 투쟁입니다. 고독한 싸움을 계속 하려면 쓰는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김영하는 글쓰기를 “삶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무의미한 삶 속에서 글은 한가닥 의미를 끄집어내 엮는 일입니다. 무엇이 의미있는지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남의 관점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평가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는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자신만의 관점을 갖고 스스로 의미를 찾아낸 사람은 그 자체로 이미 무언가를 이룬 사람입니다. 상처 주지 않고, 상처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영하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마음 속 어린 예술가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잘 보호해서 무사히 데려나가는 것, 글쓰기의 즐거움을 간직한 채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중요해요.”


남의 글을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감수성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작은 한 마디에도 의욕이 꺾여버립니다. 친한 사이일수록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시기, 질투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친구 작품의 장점을 잘 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글쓰기의 즐거움을 유지하려면 가급적 평가와 지적 같은 문제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6. 내가 읽은 것들이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결정한다


“사람들은 흔히 ‘작가에게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내게 있어 그 경험은 거의 전적으로 독서 경험이다. 나는 철이 들고 나서는 살아있는 그 어떤 사람으로부터도 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일급의 소설들로부터는 수도 없이 압도당했고, 그런 충격들이 나로 하여금 그 소설들을 다시 쓰게 만들었다.”


김영하는 [말하다]에 이렇게 썼습니다.



들어가는 만큼 나옵니다. 읽는 만큼 쓸 수 있습니다. 들어가는 것이 없으면 나올 것도 없겠죠. 많이 읽는 것만큼 깊게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면 제대로 쓸 수 없습니다. 깊게 알아야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김영하는 [알쓸신잡]에서 박학다식을 뽐내는데 그의 지식은 그가 넓고 깊은 독서를 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그는 문학뿐만 아니라 역사에도 강합니다.


김영하는 한 강연에서 “친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가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세뇌될 정도로 들어온 저로서는 굉장히 뜻밖이었고,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 있는 것이고, 또 가끔은 동창회니 송년회니 하면서 억지로 친구를 만나는 시간이 부질없이 느껴질 때도 있으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김영하가 한 말의 취지는 의무적으로 친구를 만나 서로 맞춰주면서 보내는 시간보다 자신의 취향에 더 귀기울이고 영혼을 풍요롭게 만드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스로 영혼을 살찌우는 것입니다. 더 많이 보고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려고 할 때 좋은 글이 나오겠지요. 책을 깊게 읽으면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상상을 하게 되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볼 때와는 또다른 감수성을 깨울 수 있습니다.



7. 쓰는 두려움을 없애면 내 자신이 변화한다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을 지도 모릅니다.”


김영하가 [말하다]에 쓴 문장입니다. 많은 작가들 역시 비슷한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일단 쓰라”는 것은 조금은 무책임한 조언입니다. 일단 쓰는 것이 힘들기에 사람들은 김영하처럼 잘 쓰는 사람들의 조언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니까요.


“일단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는 김영하가 한 강연에서 예로 든 일화이기도 합니다.


“어느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너무나 유명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첫 문장입니다. 카프카가 이 문장을 쓸 때 그에게는 이 소설에 대한 구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불현듯 벌레로 변한 남자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었고 그래서 이 문장을 적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문장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다음 문장을 적었고, 또 그 다음 문장을 적었습니다. 그렇게 손 가는 대로 적어서 완성한 소설이 바로 [변신]입니다. 일단 쓴 첫 문장이 훗날 세계문학의 위대한 성을 구축한 토대가 된 것이죠.


“소설이라는 것은 단편이든 중편이든 처음 의도하는 대로 끝나지 않아요. 애초의 의도대로 작품이 되는 것은 목수나 건축가의 일이지요. 소설이라는 것은 처음에 가려던 지점과는 엉뚱한 곳에 도착하는 것이에요. 또 이미 써놓은 소설이 다음 소설을 규정하고, 그 운명을 간섭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미 써놓은 것들에 맞써면서 흘러왔습니다.”


김영하는 [글쓰기의 최소원칙]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쓰기는 좀처럼 예상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예상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인생을 두려워하고 인간관계를 두려워하고 질병을 두려워합니다. 이러한 두려움들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앞서 살아간 선조들의 지혜를 빌리고, 안전 장치들을 만들고, 신체와 마음을 단련합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카프카 같은 천재가 아닙니다. 따라서 카프카처럼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시작한 뒤 장애물에 부딪히고 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넘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만약 글쓰기에 필요한 근육이 존재한다면, 그 근육이 조금 단단해지는 과정일 테니까요.


어떤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면 그것을 적으세요.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는 더 구체화됩니다. 글자 하나가 단어를 만들고 그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는데, 이때 문장의 논리성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생각은 체계를 잡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문장은 우리 내면을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막연한 공포가 사라지고 첫 문장 다음에 이어질 문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김영하는 이것을 “글쓰기가 가진 자기 해방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 내면의 두려움, 편견, 나약함, 그리고 비겁함과 맞서는 힘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 어떤 엄혹한 환경에서도, 그 어떤 끔찍한 상황에서도, 그 어떤 절망의 순간에서도 글을 씁니다. 왜일까요? 글쓰기야말로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마지막 자유, 최후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인간도 글만은 쓸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글을 쓸 수 있는 한,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김영하 [말하다] 중



김영하 작품들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빛의 제국, 검은 꽃, 퀴즈쇼, 아랑은 왜, 너의 목소리가 들려, 살인자의 기억법

[단편집]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오빠가 돌아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직 두 사람

[에세이] 랄랄라 하우스, 굴비낚시, 포스트잇,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보다, 말하다, 읽다

[방송]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2010~2017), tvN ‘알쓸신잡’(2017~)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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