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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대박을 터뜨리다니 놀랍다.”
“한국의 흔한 막장 드라마처럼 뻔하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평가다.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하는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조이럭 클럽’ 이후 25년 만에 전원 아시아계 배우가 출연한 작품으로 제작비 3천만 달러 대비 흥행수입 2억3500만 달러를 올리면서 기록적인 성공을 거뒀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뻔한 이야기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 예는 또 있다. 유튜버 영국남자의 먹방이다. 한국에서 먹방 만큼 흔한 것은 없다. 방송의 절반 가까이 먹방이다. 동네마다 ‘방송에 나온 집’이라는 간판 안 달린 곳이 없다. 연예인도 일반인도 일상에서 또 여행지에서 먹고 맛보고 즐기는 모습을 찍고 보고 공유한다.
영국남자의 먹방은 얼핏 보기엔 새로운 게 없어 보이지만 중요한 차별화 지점이 있다. 피부색이 다른 서양인들이 한국 음식을 먹고 품평을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소주를 마실 때 어떤 소리를 내는지, 불닭볶음면은 얼마나 매운지, 치킨과 맥주를 함께 먹으면 어떤 맛인지를 그들이 직접 체험하고 이를 재미있는 편집으로 보여준다. 출연진은 대부분 한국 음식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이다. 이질적인 두 문화가 섞일 때 긴장감이 감돌고 이것을 잘 건드려줄 때 재미라는 것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 감이 안 잡힌다면 하나 더 예를 들자. 방탄소년단이다. 이들은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레이엄 노턴 토크쇼'에 나갔다. 내로라하는 영미권 뮤지션도 출연하기 쉽지 않은 토크쇼다. 방탄소년단은 ‘21세기의 비틀스’로 소개됐다. 소녀팬들을 몰고 다니는 낯선 이방인이라는 점이 비슷해서다. 방탄소년단의 인기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케이팝의 요소들을 살리면서도 철저히 현지화 전략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온 일곱 명의 미소년이 섹시한 칼군무를 추면서 그들에게 익숙한 힙합 음악을 한다. 영국남자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성공이 오버랩되지 않는가?
2018년 10월 17일 영국 '그레이엄 노턴 쇼'에 출연한 방탄소년단
참, 이들의 성공 레시피에서 한 가지 더 언급할 재료가 있다. 반드시 필요한 소금 같은 재료다. 바로 가벼움이다. 그렇다. 문화적 충돌은 무거운 영역이다. 세계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이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됐고, 그 기저에는 경제가 있었다. 누가 누구의 돈을 벌어가는 것이냐는 문제가 나오면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필히 가벼워야 한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도, 영국남자도, 방탄소년단도 모두 어깨에 힘 빼고 가벼움으로 승부한다. 신나게 웃고 춤추고 따라부르는 사이에 거리감이 좁혀진다. 그렇게 두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 극복되는 것이다.
놀랍고도 뻔하고도 가벼운 이야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다음 차례는 누구일까? 누가 새로운 컬처 믹스를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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