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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출신 아니시 샤간티 감독의 영화 ‘서치’는 컴퓨터 스크린과 스마트폰 화면만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구글 크리에이티브 랩 출신인 감독은 단편영화 때부터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영상을 만드는 시도를 해왔고, 장편 데뷔작을 통해 실력을 입증했다.
감독은 우리가 매일 보는 스크린만으로도 딸의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아버지에 관한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와 복잡미묘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영화 속에서 메신저, 유튜브, 화상통화, CCTV, 뉴스화면 등이 이야기 전달 수단이 되고, 윈도 옛 버전과 최신형 맥북이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며, 노턴 바이러스 검사 일정과 배경화면은 감정 전달 수단이 된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영화는 평단과 관객의 극찬을 받았고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270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영화 ‘서치’의 영리한 만듦새에 감탄한 당신을 위해 이 영화처럼 기발한 설정을 끝까지 밀고 간 영화 20편을 소개한다.
그녀 (2013)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가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운영체제인 사라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으면서 주인공을 설레게 하고 또 상처를 준다.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전부지만 영화는 모든 설정을 감쪽 같이 믿게 만든다.
하드코어 헨리 (2015)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영화 전편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만든 최초의 영화. 러시아 출신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은 1인칭 기법으로 연출한 뮤직비디오 '배드 마더퍼커(Bad Motherfucker)'가 유튜브에서 1억 2000만 뷰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얻자 이를 장편영화 버전으로 만들었다. 불의의 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당한 헨리가 로보캅처럼 강력한 사이보그로 부활해 악당의 소굴로 침투하는 내용이다. 1인칭 액션 기법은 이후 ‘판더믹’(2016) 등으로 이어졌다.
존 말코비치 되기 (1999)
7과 1/2층에서 근무하던 소심남은 회사에서 우연히 비밀 통로를 발견하는데 이곳으로 들어가면 15분 동안 명배우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를 조종할 수 있다. 존 말코비치가 워낙 연기를 잘해 다른 사람이 그의 머릿속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상상력을 한 소심남의 짝사랑 이야기와 결합한 영화로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와 감독 스파이크 존즈는 이후 할리우드의 재치있는 아이디어 뱅크로 명성을 얻었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1988)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합성한 첫 시도. 영화는 만화마을과 영화마을로 나뉜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마룬 만화 스튜디오 회장은 자사의 슈퍼스타인 로저 래빗이 슬럼프를 겪자 로저의 아내 제시카가 경쟁 스튜디오의 아크메 회장과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루머가 사실인지 밝히기 위해 사설탐정 에디를 고용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크메가 죽고 로저 래빗이 범인으로 몰린다. 이 영화의 제작비 7000만달러는 당시까지 할리우드 최고액이었다. 월트 디즈니의 모험은 대성공을 거둬 영화는 제작비의 5배에 가까운 3억298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트루먼 쇼 (1998)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던 트루먼. 하지만 그는 24시간 생방송 되는 쇼의 주인공이었다. 리얼리티 쇼의 폐해를 꼬집은 작품으로 인생 전부가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 노출되어 있다는 영화의 설정은 스마트폰, 유튜브 등의 등장으로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큐브 (1997)
여섯 명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다.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 단서는 여섯 명이 살아온 과거 속에 있다. 큐브에는 함정이 있어서 빠져나가려다가 몇몇은 죽임을 당한다. 이들이 밝혀낸 공간은 1만7576개의 큐브가 움직이는 세상이다. ‘매트릭스’ 이전에 세상은 누군가 만들어 조종하고 있는 빠져나갈 수 없는 큐브라고 정의한 영화.
러빙 빈센트 (2017)
빈센트 반 고흐의 화풍으로 만든 애니메이션. 반 고흐의 죽음을 타살이라고 믿는 형사가 빈센트의 삶을 추적해간다. 반 고흐 스타일로 그린 5만6000여장의 유화를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했다.
로프 (1948)
80분의 러닝타임 전체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진 영화. 로프로 친구를 살해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 스릴러. 이 영화는 전체가 하나의 롱테이크로 보이지만 사실 편집기법을 사용해 그렇게 보이도록 교묘하게 이어붙인 것이다. 당시 필름 카메라는 한 매거진(롤) 당 10분 분량밖에 담을 수 없었기 때문에 5~10분 분량으로 테이크 10개를 찍은 뒤 이를 편집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한 번, 브랜든의 등을 보여주면서 네 번, 리액션 숏으로 세 번, 상자를 보여주면서 한 번 컷아웃된다.
메멘토 (2000)
단기 기억상실증을 플롯으로 만들어버린 영화.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인 레너드는 아내를 죽인 범인 ‘존 G’를 찾기 위해 메모와 사진, 문신을 이용해 범인을 추적한다. 보통 기억상실증을 그린 영화들은 주인공이 어느 순간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그리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기억상실증이라는 설정을 유지하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블레어 위치 (1999)
우연히 발견된 영상(파운드 푸티지)을 영화 전체 포맷으로 삼아 대중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영화. 세 명의 영화학도가 블레어 숲속에서 아이들을 죽인 유령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1년 후 발견된 필름을 복원한 것이 이 영화라는 설정이다. 6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2억4860만달러의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 이후 '파라노말 액티비티'와 ‘클로버필드’가 이 영화의 기술적 방식을 그대로 따라해 또다시 대박을 터뜨렸다.
월요일이 사라졌다 (2017)
인구가 급증한 미래 사회,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고 일곱 쌍둥이는 각자의 요일에만 밖에 나가면서 한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30년이 지난 2073년 어느날 월요일이 사라지고 여섯 자매는 위기에 처한다. 1인 7역 누미 라파스의 다양한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아노말리사 (2015)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성인극. 그동안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감정 전달보다는 상상력 풍부한 이야기를 담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는데 ‘아노말리사’는 이와 정반대로 어른들의 외로움과 고독, 소외 같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방식을 이용한다. 약 3년의 제작기간이 걸렸고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018)
온세상이 조용하다. 괴물은 소리를 내는 것들을 다 죽였다. 주인공 가족은 지하에 살면서 절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하지만 어린 아들이 무심코 들고 있던 장난감에서 소리가 나고 아버지는 가족은 이끌고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괴물영화를 특이하게 소리의 관점에서 풀어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다. 정작 영화의 완성도는 그저 그렇다.
언더 더 스킨 (2013)
아름다운 여인의 몸 속으로 들어간 에일리언이 남자들을 블랙홀로 데려간다. 공허하고 몽환적인 영화로 공개 당시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블랙과 화이트뿐인 텅 빈 화면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남자들을 유혹해 데려가는 장면은 마치 관객을 향해 최면을 거는 듯하다.
맨 프럼 어스 (2007)
최초의 인간 혹은 가장 늙은 인간, 그의 이름은 존 올드맨. 그는 10년에 한 번씩 이사를 간다. 그가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유는 그가 다른 사람처럼 늙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동료들이 마련해준 따뜻한 환송회에서 그는 자신이 14000년 전부터 살아왔다고 폭탄선언을 해버린다.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등 인기를 끈 빅 히스토리의 영화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엑시스텐즈 (1999)
인간의 척추에 바이오포트를 뚫어 게임기 코드를 꽂으면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오포트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개봉 당시 ‘매트릭스’에 묻혔지만 현실과 게임을 결합한 설정만큼은 매트릭스 못지 않다. 캐나다 그로테스크 영화의 거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만든 세계 중 가장 대중적인 영화.
인셉션 (2010)
타인의 꿈 속으로 들어가면 그 사람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다. 더 깊은 꿈 속으로 들어가면 아예 특정 기억을 심을 수도 있다. 꿈속에서 뇌활동은 평소의 20배가 되기 때문에 시간도 훨씬 느리게 간다. 꿈 속의 꿈으로 들어가면 이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수많은 팬을 양산한 영화.
젤리그 (1983)
세상 어디에나 있는 남자. 카멜레온처럼 살아가는 남자. 뚱뚱한 사람을 만나면 뚱뚱해지고, 중국인 옆에 가면 중국말을 하는 독특한 남자에 관한 가짜 다큐멘터리 영화. 미디어에 비친 젤리그는 영웅의 모습이지만 실제 그 자신은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안심이 되는 소심남이다. ‘엑스맨’의 돌연변이 미스틱 캐릭터의 정신분석학적 버전. 냉소적인 위트가 담긴 우디 앨런의 걸작 중 한 편이다.
트론 (1982)
컴퓨터그래픽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영화. 컴퓨터 프로그래머 케빈 플린은 마스터콘트롤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스스로 똑똑해져서 인간을 지배하려 한다. 플린은 이 프로그램에 들어갔다가 신체가 분해되어 프로그램 안에 갇혀버린다. 이후 ‘공각기동대’ ‘트랜센던스’ 등 비슷한 설정의 영화들이 여러 편 나왔는데 ‘트론’은 그 원조격이다.
펄프픽션 (1994)
영화 중반쯤 주인공이 총에 맞아 죽는다.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흘러가던 중 죽었던 주인공이 다시 나타나 이전 이야기를 한다. ‘펄프픽션’의 비선형적 스토리 구조는 영화가 기승전결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7개의 챕터를 자유자재로 구성하면서도 경쾌함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 여기에 덧붙여 영화는 감독이 사랑한 B급 컬처와 작가주의 영화에 대한 온갖 오마주로 가득하다.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60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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