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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는 신랑이 죽을 위협에 처할지라도 이를 받아들이며 살아가겠는가?”


영화는 에단 헌트(톰 크루즈)가 가슴 깊이 간직한 트라우마를 악몽으로 치환한 결혼서약 장면으로 시작한다. ‘미션 임파서블 3’ 이후 자취를 감췄던 에단의 아내 줄리아(미셸 모나한)를 불러내면서 영화는 에단이라는 캐릭터를 함축적으로 다시 설명한다. 에단은 사랑하는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를 떠난 남자이며, 수백만명의 안전만큼이나 단 한 사람의 목숨도 소중하게 여기는 요원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 교수부터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까지 정의의 딜레마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질문은 "과연 인간의 생명에 경중이 있느냐"는 것이다. 즉, 기차가 선로를 이탈했을 때 선로에 있는 한 명을 구할 것인가 혹은 기차 안의 수백명을 구할 것인가.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혹은 대답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이 질문에 대해 에단의 답은 명확하다. 숫자로 따지기 전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한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첩보영화 속 많은 비밀요원들이 조직으로부터 버림받는다. 에단 역시 이전 시리즈에서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에서 에단은 앨런 헌리(알렉 볼드윈)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한 사람의 목숨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을 알기에 상관인 자신도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가 여섯 번 동안 무려 20년 이상 한 사람에 의해 계속될 수 있는 이유 역시 에단에게 있다. 톰 크루즈가 연기한 에단은 현대 프랜차이즈 영화에서 가장 신뢰받는 캐릭터 중 하나다. 에단은 속고 속이는 첩보와 뛰고 구르는 액션의 와중에 항상 동료를 먼저 챙기고, 공과 사를 구분한다. 그는 매번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선다. 그는 영화 속에서 선과 악의 기준 역할을 하기에 어떤 캐릭터든 에단과 손을 잡는 쪽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



시리즈 중 역대급 재미를 갖춘 이번 영화에서 최고의 시퀀스는 단연 인도 카슈미르 헬리콥터 추격전이다. 어거스트 워커(헨리 카빌)로부터 기폭장치를 빼앗기 위해 에단은 헬리콥터의 화물을 매단 줄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다. 그는 줄을 타고 올라가 조종석으로 가려고 하는데 처음엔 실패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재도전해 결국 해낸다. 그리고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헬리콥터 조종에 도전한다. 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만 살아남으니까 한다. 절실함은 초보 조종사도 절벽에서 멋진 곡예비행을 하게 만든다.


이후 장면들은 히치콕식 서스펜스의 교과서라고 할만큼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플루토늄 폭발 카운트다운이 계속되는 가운데 에단은 절벽에서 워커와 결투를 벌인다. ‘미션 임파서블’ 첫 번째 시리즈의 로프 액션 만큼 강렬하고 긴박감 넘치는 장면이다.



그동안 여러 첩보영화들 속 요원들은 근사하지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언제 배신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식사 한 번 편하게 하는 장면이 없었다. 제임스 본드는 항상 무거운 짐을 진 듯 미간을 찌뿌리고 있었고, 킹스맨은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고, 제이슨 본은 늘 도망다니느라 위태로워 보였다. 이들과 달리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단은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벤지(사이먼 페그)와 루터(빙 레임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줄리아와 일사(레베카 퍼거슨)와 차례로 해후하면서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첩보세계에서 믿을 만한 친구들이 무려 네 명이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다른 첩보요원들과 달리 에단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그가 맡는 임무는 그가 동의하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영화는 이를 두 번이나 강조한다. 에단은 한 번도 임무를 거절한 적이 없는데 이는 그에게 남다른 인류애나 공명심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약속 때문이고, 또 함께 하는 믿을 만한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행복한 요원 에단은 영화의 말미에 기어코 CIA 국장 에리카(안젤라 바셋)까지 감화시키며 수백명의 목숨만큼 단 한 사람도 소중하게 여긴 그의 길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어떤 첩보요원도 해내지 못한 신뢰를 확보한 첩보요원 에단,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톰아저씨’ 톰 크루즈가 건재하는 한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

행복한 요원을 보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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