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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이 ‘시’ 이후 8년만에 발표한 신작 ‘버닝’은 좌절한 청춘, 삼각관계, 분노에 관한 영화다. 이야기는 모호하다. 안개가 잔뜩 낀 둑을 질주하는 종수(유아인)의 모습처럼 어디까지 실제이고 어떤 부분이 허구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좋게 말하면 관객이 적극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었고, 비판적으로 보자면 낡은 방식으로 비유와 상징을 남용한다.
영화는 파주 농촌마을에 사는 작가지망생 종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종수는 서울로 배달을 나갔다가 내레이터 모델 일을 하는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폭력사건으로 법정에 선 아버지, 어릴 적 집을 나간 어머니 등 불행한 가족을 갖고 있는 종수는 카드 빚에 시달리는 외로운 해미에게 마음을 연다. 삶의 의미를 찾아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 해미는 부유한 남자 벤(연상엽)과 함께 돌아오고 세 사람은 함께 어울린다. 어느 날 해미가 사라지자 종수는 벤을 의심하고 미행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1993)를 원작으로 한다. 하루키의 소설은 윌리엄 포크너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1939)를 모티프로 했다. 하루키의 소설은 소설가인 나, 광고모델 그녀, 그녀가 아프리카에서 만난 그의 이야기다. 팬터마임과 헛간을 태우는 설정으로 상징되는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하루키 특유의 문체로 묘사한다. 포크너의 소설은 폭력적인 아버지의 분노가 대물림되는 부자의 이야기다. 영화는 두 작품 모두에서 설정을 빌려왔다.
눈여겨 볼 것은 영화 속 사건이 상당히 모호한 반면 등장인물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꽤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공간은 곧 신분의 차이를 드러내는데 영화는 ‘빛’을 활용해 이를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가난한 해미가 사는 후암동 집은 북향이어서 낮에 잠깐만 빛이 들어온다. 반면 벤이 사는 반포동 고급 빌라는 채광이 풍부하다. 종수의 파주 집 마당에서 세 사람은 함께 대마초를 피우며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본다. 땅거미가 질 무렵 해미는 반라의 상태로 팬터마임 동작으로 춤을 추는데 이 장면은 사라져가는 빛을 향해 삶의 의미를 갈구하는, 해미가 줄곧 말해온 아프리카 부시맨식 ‘그레이트 헝거’ 의식을 연상시킨다. 이는 이후 삶의 의미를 찾아 사라질 해미의 운명을 암시한다.
이 감독이 두 거장 소설가의 단편을 영화화하면서 공간을 승부처로 정한 것은 상대적으로 공간이 소설에서 가장 약한 지점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포크너는 가상의 마을 '요크나파토파'를 창조해 리얼리즘을 우회하는 소설을 쓴 작가였고, 하루키는 구체적 지명보다는 우물 같은 상징성을 더 중시하는 작가다.
영화는 종수가 벤을 추적하는 스릴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종수는 벤을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에 비유한다. “어떻게 하면 젊은 나이에 저렇게 살 수 있지?”라고 말하며 질투심과 적개심을 동시에 드러낸다. 부의 대물림에 따른 계층이 공고화돼 종수와 벤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청년처럼 보인다. 추격 장면에서도 벤이 타는 포르셰와 종수가 타는 낡은 봉고트럭은 시각적인 대비를 이룬다.
하지만 벤의 내면은 개츠비와 전혀 다르다. 개츠비는 일편단심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남자였던 반면 벤은 여자들을 갈아치운다.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벤은 해미를 소비하고 소멸시킨다.
가난한 해미는 취미로 팬터마임을 하는데 팬터마임을 잘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종수는 이 때문에 해미가 말한 고양이와 우물이 과연 실재하는지 추적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반면 부유한 벤은 있는 것을 없애려는 남자다. 그는 “비닐하우스들은 내가 태워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불 붙이고 나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깨끗하게 사라진다”고 말한다. 영화는 이처럼 극단적인 대비를 통해 계속해서 모호함을 만들어내고 그 모호함이 영화를 끌고 가는 추동력이 된다.
지금까지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두 부류였다. 사회의 부적응자를 극의 중심에 놓고 시대의 부조리를 파헤치거나(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혹은 평범한 일상 속에 감춰진 도덕적 타락을 폭로하거나(밀양, 시). 하지만 이번 영화 ‘버닝’은 두 부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가난한 종수, 해미와 부유한 벤의 대비를 통해 공고화된 시스템으로 인해 좌절한 청년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더 들어가보면 제각각 다른 세 명의 청춘을 메타포로 사용해 존재와 본질, 실재와 허구의 경계, 삶의 의미, 도덕과 비도덕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이 가능한 만큼 관객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영화적 완성도는 탁월하다. 노을 지는 하늘 아래 흔들리는 나뭇가지 속 빛의 떨림까지 잡아낸 홍경표 촬영감독의 시적인 영상, 국악의 타악기를 활용해 심장박동 소리처럼 변주해낸 모그의 음악이 특히 돋보인다. 극을 이끌어가는 유아인의 어리숙한 표정, 한국말이 다소 서툰 연상엽의 속을 알 수 없는 표정 연기가 좋다. 영화의 히로인 전종서는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로 놀라운 신예임을 증명한다.
버닝 ★★★★
좌절한 청춘, 존재와 본질, 삶의 의미에 관한 모호한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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