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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 속에서도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본다."
이 말을 남기고 엄마 엘레인(미셸 윌리엄스)은 떠나갔습니다. 홀로 남은 소년 벤(오크스 페글리)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를 찾아 고향 미네소타를 떠나 뉴욕으로 향합니다. '원더스트럭'은 아빠에 관한 단서가 담긴 책의 제목입니다. 벤은 우연한 사고로 청각 장애를 갖게 되고 세상은 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조금은 낯선 영화문법으로 만들어졌지만,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시궁창 같은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우중충한 하늘에서 발견하는 별 같은 영화입니다. ‘캐롤’ ‘아임 낫 데어’ ‘파 프롬 헤븐’ 등으로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한 토드 헤인즈 감독은 이번엔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5월 3일 개봉을 앞둔 신작 ‘원더스트럭’을 미리 만나보겠습니다.
영화에는 각기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두 명의 청각 장애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소년 벤은 1977년에 살고 있고, 소녀 로즈(밀리센트 시몬스)는 1927년에 살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청각 장애아인 로즈는 선망하는 배우 릴리안 메이휴의 무성영화를 보기 위해 홀로 뉴저지의 집을 떠나 오빠 월터가 살고 있는 뉴욕으로 왔습니다. 50년이라는 시간 차이를 두고 벤과 로즈는 뉴욕의 기차역, 박물관 등 같은 공간을 배회합니다.
그런데 소년과 소녀는 과연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요? 영화는 1시간 30분 동안 끈질기게 궁금증을 유발한 뒤 마지막 25분 동안 모든 비밀을 한꺼번에 털어놓습니다. 요즘 영화에서 잘 쓰이지 않는 무성영화 시대의 고전적인 플롯입니다. 때로는 스토리의 개연성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벤과 로즈가 살아가는 소리 없는 세상을 시각적인 형태로 표현합니다. 대사가 아닌 영상, 음악, 편집, 흑백과 컬러, 영화 속 무성영화, 뉴욕이라는 도시 속 시간여행 등 다양한 요소들이 공감각적 언어 기능을 하기 때문에 기존 스토리 위주의 영화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은 영화 초반부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무성영화 시대의 거장 F W 무르나우, 킹 비더 감독 등의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무성영화에 대한 향수와 오마주가 담긴 작품입니다.
영화의 원작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름다운 동화 같은 작품 ‘휴고’의 원작을 쓴 동화작가이자 삽화가인 브라이언 셀즈닉의 동명 소설입니다. 그는 영화의 각본도 직접 썼습니다. 셀즈닉은 뉴욕 자연사 박물관의 늑대 모형과 퀸스 박물관의 뉴욕시 파노라마 축소 모형을 보고는 상상력을 발휘해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소년, 소녀가 우연히 만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1920년대와 1970년대 뉴욕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기 때문에 사실 한국 관객보다는 오래 전 뉴욕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 할 뉴요커들이 더 공감할 영화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낯익은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 요한 스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경쾌하게 편곡해 선보이는 카터 버웰의 음악은 영화의 촉촉한 감성에 빠져들게 해줄 것입니다.
영화에서 눈여겨볼 배우는 로즈 역을 맡은 13세 소녀 밀리센트 시몬스입니다. 실제 청각장애인인 그녀는 농아학교에서 5년간 연극부 활동을 하던 중 오디션에 합격해 로즈 역을 맡게 됐습니다. 최근 공포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도 세 아이 중 한 명으로 출연했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올해 주목해야 할 신인’으로 시몬스를 꼽았습니다.
시몬스는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에는 감정 표현이 풍부한 청각 장애인 배우들이 쉽게 배우가 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맥이 끊겼다”며 “인종 차별이 없어져야 하는 것처럼 장애인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똑부러지게 말했습니다.
벤 역의 오크스 페글리도 ‘휴고’의 에이사 버터필드를 떠오르게 할 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토드 헤인즈 영화의 단골 배우인 줄리안 무어가 중요한 열쇠를 쥔 인물로 출연해 무게감을 더합니다.
원더스트럭 ★★★
시궁창 속에서도 우리 중 누군가는 별을 바라본다. 무성영화 시대에 바치는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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