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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원'은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주는 선물 같은 영화다. 영화 속에는 1970~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거의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이 총망라되어 등장한다.
'킹콩',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헤일로', '로보캅', '쥬라기공원', '아이언 자이언트'를 비롯해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 '사탄의 인형'의 처키,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 '빽 투 더 퓨쳐'의 드로리안, '스피드 레이서'의 마하5, 'A-특공대'의 밴, '매드맥스'의 포드 팔콘, 일본 캐릭터인 '아키라'의 오토바이, 건담, 메카고지라, 게임에서 가져온 '스트리트 파이터'의 류, 블랑카, 춘리, '갓 오브 워'의 크라토스, '언차티드'의 네이선 드레이크, 듀크 뉴켐, 슈퍼소닉, '오버워치'의 트레이서 등 양적으로 엄청나고 컴퓨터그래픽의 퀄리티도 높다.
"이 영화로 누군가 오스카를 받는다면 저작권 확보팀이 받아야 한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 관한 농담 중 하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프로듀서 크리스티 크리거를 비롯한 제작진은 영화 속 캐릭터들의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 수년 간 공을 들였다. 1억7500만달러 예산의 거의 대부분이 CG와 저작권 확보에 쓰였다.
이토록 많은 캐릭터들의 저작권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에는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이름값이 주는 신뢰가 컸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잭 펜은 한 인터뷰에서 "판권 협상에서 감독이 스필버그라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작권 문제를 풀지 못해 넣지 못한 캐릭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타워즈'다. 1970~80년대를 이야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프랜차이즈지만 스필버그 팀은 스타워즈의 판권을 갖고 있는 월트 디즈니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스필버그의 절친인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를 만들긴 했지만 정작 루카스에겐 아무 권한이 없었다.
어니스트 클라인이 쓴 동명의 원작 소설에선 '스타워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디즈니가 스타워즈를 허락했다면 가상현실 오아시스 시스템에서 엑스윙 파이터를 타고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삽입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 소설에서 중요하게 등장하지만 영화에 나오지 않는 캐릭터 중 하나는 울트라맨이다. 스필버그 팀은 울트라맨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 일본을 찾았지만 정작 판권이 법정 소송에 휘말려 있어 소유자가 불명확해 포기해야 했다. 대신 영화 속에선 아이언 자이언트가 울트라맨의 역할을 대신한다.
스필버그는 그 자신이 1970~80년대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적인 아이콘이었다. 그가 만든 영화 속 캐릭터들인 죠스, 인디아나 존스, E.T 등만 등장시켜도 충분히 스토리가 만들어질 법하다. 하지만 그는 '1941'(1979)을 찍으면서 '죠스' '듀얼' 등 자신의 영화를 풍자했다가 평론가들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은 쓰라린 과거가 있어서 최대한 자신의 캐릭터는 자제했다. 다만 스필버그는 '미지와의 조우'의 우주선과 음악은 꼭 넣고 싶어했으나 소니픽쳐스와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해 결국 포기해야 했다.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속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가장 공들인 오마주가 있다. 바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1980)이다. 혹시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레디 플레이어 원' 티켓을 구입하기 전에 반드시 보기를 추천한다. 다른 캐릭터들은 그저 존재만 할 뿐이지만 '샤이닝'은 스토리와 배경지식이 영화의 중요한 플롯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샤이닝'은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킹은 자신의 작품 영상화 판권을 저렴하게 공개하는 소설가여서 영화화된 작품이 많은데 킹은 유독 큐브릭이 만든 '샤이닝'을 싫어했다. 자신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스토리를 바꾸었고 지나치게 음울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다. 하지만 영화는 매 장면이 거의 세공술을 보여준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꽉 짜여져 있다. 이토록 무서우면서 또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기에 최고의 공포영화를 꼽을 때 항상 최상위권에 자리한다.
스필버그가 과거 대중문화 추억을 공유하는 이 영화에서 큐브릭의 '샤이닝'을 가장 중요하게 사용한 이유는 뭘까? 절친이었던 두 사람의 인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영화 '샤이닝'
1999년 큐브릭 사후 스필버그가 영국 감독 폴 조이스와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두 사람은 1980년 처음 만났다. 스필버그가 '레이더스' 촬영을 위해 유럽을 방문했을 때 큐브릭이 런던 자신의 집으로 그를 초청해 저녁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큐브릭은 스필버그에게 '샤이닝'을 어떻게 봤느냐고 물었고, 스필버그는 영화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큐브릭은 "대체 좋지 않은 이유가 뭐요?"라고 물었고, 스필버그는 잭 니콜슨의 과장된 연기 등 몇 가지 이유를 댔다. 큐브릭 역시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날 첫 만남을 계기로 LA의 스필버그와 런던의 큐브릭은 정기적으로 전화통화를 하며 우정을 쌓아나갔다. 두 사람은 한 번 통화를 시작하면 3시간씩 했다. 나중에 스필버그는 '샤이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영화를 스물다섯 번 봤다. 처음엔 싫었지만 보면 볼수록 새롭게 보였다. 그의 영화는 매장면이 완벽하다. 누구도 그보다 더 잘 만들 수 없다. 지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큐브릭 영화다."
스탠리 큐브릭과 스티븐 스필버그
큐브릭은 괴팍한 은둔주의자로 알려져 있었지만 스필버그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기억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사람들은 큐브릭의 영화에선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스필버그는 큐브릭의 영화에 사람들이 모르는 휴머니즘이 이스터 에그처럼 녹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큐브릭의 미완성 프로젝트인 'A.I.'(2001)를 따뜻한 감성을 가진 로봇의 이야기로 만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스필버그가 '레디 플레이어 원'을 만들면서 오아시스 크리에이터 제임스 할리데이(마크 라일런스)를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최고의 천재로 그린 것 역시 아마 큐브릭을 염두에 둔 설정일 것이다.
스필버그는 큐브릭과의 우정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다. "처음에 그는 나에게 그의 영화 만드는 비법을 알려줬고, 그 다음엔 소중한 시간을 줬다. 이는 한 사람이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A.I.'에 이어 스필버그가 큐브릭에게 보내는 두 번째 선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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