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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노래방 위, 골뱅이집 옆, 인쇄소 골목 안 꼭대기층에 간판도 없는 예쁜 카페가 성업 중이다. 과연 이런 곳에 카페가 있을까 싶은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있다. 지역 사람들보다 멀리서 소문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카페 한 곳만 가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에 지도앱을 띄워 놓고 카페 투어를 다닌다.


을지로3가에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대략 2년 전부터다. 임대료가 저렴한 인쇄소 골목의 허름한 건물 꼭대기층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주해 오고, 지난해 9월 1단계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세운상가에 젊은 아티스트들의 공방이 들어서면서 을지로3가는 힙스터들의 공간으로 점점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올해 봄을 맞아 을지로3가에 새롭게 문 연 카페들이 늘었다. 이들은 작업실로 쓰는 공간 일부를 카페로 개조해 운영하며 임대료를 충당한다.



공구, 인쇄 장비, 타일, 종이 냄새가 섞여 진동하고, 전단지, 신문용지 등을 분주하게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가 골목길을 누벼 거칠고 바쁜 곳이던 을지로3가에 아티스트들이 둥지를 틀자 맛집 탐방 나선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경리단길, 망리단길, 성수동 등 서울의 골목길을 발굴해오던 흐름이 종로 익선동을 지나 구도심인 을지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맥주, 골뱅이가 드립커피, 스콘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곳, 산업화 시대의 시간과 소비시대의 시간이 레이어드 룩을 선보이는 곳, 억지로 꾸민 빈티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빈티지한 곳, 전혀 섞일 것 같지 않던 두 이질적인 세계가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을지로3가다.

을지로3가에 위치한 빈티지 카페들을 하나씩 찾아가 봤다.


MWM의 대표 메뉴인 프루트 파워 스파클링 티와 녹차 스콘

최수지 MWM 대표


1. MWM(Mass we made, Mess we made)


'엉망으로 만들다'는 뜻의 MWM은 지난 3월 오픈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최수지 씨(31)가 작업실로 사용하던 공간 일부를 카페로 꾸몄다. 계단을 올라 4층에 위치한 카페로 들어서면 아담한 공간에 라왕 나무로 직접 제작한 8인용 테이블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햇볕 잘 드는 창가에는 1인용 테이블이 놓여 있어 손님들이 인스타용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MWM의 대표 메뉴는 상큼한 베리로 만든 프루트 파워 스파클링 티와 화이트 라떼, 녹차 스콘이다. 모두 포토제닉한 메뉴들이다. 이름과 달리 전혀 엉망이 아닌, 주인의 확실한 취향이 느껴지는 카페다. 최 대표는 "찾기도 힘들고 장소도 좁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예상보다 손님들이 많이 찾아줘 놀랐다"며 "주변 직장인들보다는 인스타나 블로그를 보고 찾아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위치: 서울 중구 수표로 35-1 4층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

▷대표메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라떼 6.0, 프루트 파워 스파클링 티 6.0, 녹차 스콘 + 오렌지 잼 4.0


백두강산을 공동 운영하는 강경미 씨가 커피를 따르고 있다.

백두강산의 대표 메뉴인 백두강산 시그니처 커피와 오렌지 치즈 케이크


2. 백두강산


명동에서 가장 가까운 인쇄골목 초입에 위치한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이름부터 인테리어까지 다방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볼수록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조소학과 선후배 사이인 강경미 씨(38)와 백재희 씨(25)는 카페 이름을 '백두산'으로 하려다가 두 사람의 성을 따서 '백두강산'으로 정했다. 세련됨보다는 지저분함, 그러면서도 약간 고급스러운 반전이 카페의 컨셉트다.


도쿄 카페들을 탐방하며 오랫동안 카페 창업을 구상하던 두 사람은 지난 2월 말 명동 옆 을지로 인쇄골목 초입을 카페 터로 찜했다. 강 씨는 "이곳이 뜰 것 같다는 촉이 왔다"며 "임대료도 저렴해 카페 공간 일부를 무명 작가들의 전시 공간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첫 전시로 4월 말부터 사진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을지로의 다른 카페들이 풍부한 자연광 채광을 자랑하는 반면 백두강산은 햇빛보다는 어두운 실내에 전구 조명과 빈티지한 소파와 벽, 꽃무늬 커튼으로 분위기를 낸다. 백 씨는 "비올 때 오면 전혀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백두강산만의 특별한 메뉴는 백두강산 시그니처 커피와 오렌지를 얹은 치즈 케이크. 독학으로 커피를 공부한 백 씨가 만든 시드니처 커피는 오리지널 블렌딩 드립 커피로 칵테일 잔에 크림을 얹어 낸다.


▷위치: 서울 중구 수표로 22-6 재복빌딩 3층

▷영업시간: 오전 12시~오후 10시 (연중무휴. 인스타그램으로 휴일 공지)

▷대표메뉴: 백두강산 시그니처 커피 7.0, 카페오레 6.5, 오렌지 치즈 케이크 7.0


커피사 마리아의 대표 메뉴인 자몽쌕쌕, 마가렛 티, 바나나케이크

커피사 마리아의 이마리아 씨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3. 커피사 마리아


이곳은 난이도가 꽤 높은 장소에 위치해 있다. 인쇄골목을 한참 헤매고 다녀야 겨우 철문으로 된 입구를 발견할 수 있다. 인쇄소가 있는 낡은 건물의 3층에 위치해 있는데 뒷문 계단으로 올라갔다면 4층으로 다시 올라가 한 바퀴를 돌아 정문으로 가야한다. 도심 한복판에서 미로찾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만하다. 하루 평균 40명 정도가 커피사 마리아를 찾아오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커피사는 지난 3월 19일 종로 익선동의 카페 '식물'에서 경력을 쌓은 이민선 씨(33)가 독립해 차린 곳이다. '마리아'는 이 공간을 나눠 쓰며 그림을 그리는 이마리아 씨(31)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름처럼 이곳은 커피를 마시며 마리아 씨가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는 카페다. 내부는 극장에서 보던 팔걸이 나무의자 등 빈티지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원래 인쇄 공장이던 내부의 느낌도 고스란히 살렸다.


이 대표는 "도심 속 우연히 발견하는 휴식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창밖으로 보이는 소나무, 삭막한 건물 사이로 비치는 햇빛 등이 이곳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위치: 서울 중구 을지로16길 5-1 3층

▷영업시간: 오전 12시~오후 8시

▷대표메뉴: 드립커피 5.0, 자몽쌕쌕 6.0, 애플진저 6.0, 마가렛 티 5.0, 바나나케이크 6.0


CETU의 대표 메뉴인 딸기홍차밀크와 딸기밀크


4. 쎄투(CETU)


의류 브랜드 CETU를 운영하는 동갑내기 친구인 임수지 씨(29)와 이선 씨(29)가 작년 12월 오픈한 카페다. '쎄투'는 프랑스어 '이게 다예요(C'est tout)'에서 따온 이름. 프랑스 소설가 마그리트 뒤라스의 유고작 제목이기도 하다.


노래방 간판이 크게 걸린 빌딩 계단을 걸어 4층까지 올라가면 햇빛이 잘 드는 작고 아담한 카페를 만날 수 있다. 하얀색 테이블과 포토제닉한 메뉴들이 실제보다 더 멋진 인스타용 사진을 만들어준다. 장소가 비좁아 손님이 많을 땐 밖에서 대기해야 한다.


대표메뉴인 팔레트 토스트는 나무 팔레트 위에 서빙되는 식빵과 크림치즈, 과일로 구성된다. 봄엔 딸기홍차밀크, 겨울엔 핫초코와 함께 하면 좋다.


▷위치: 서울 중구 충무로9길 12

▷영업시간: 오후 12시30분~오후 7시 (일, 월요일 휴무)

▷대표메뉴: 팔레트토스트 8.5, 쎄투라떼 5.0, 딸기홍차밀크 6.5, 핫초코 6.0, 앙! 버터 5.0


분카샤의 대표 메뉴인 후르츠 산도와 오미자 라임 소다


5. 분카샤


일본어로 문화사(文化社)라는 뜻의 분카샤는 일본식 디저트 후르츠 산도로 유명해진 곳이다. 키위, 딸기, 망고, 바나나 등의 과일을 썰어서 생크림과 섞은 뒤 폭신한 빵에 발라 4등분 해서 두 쪽씩 내는 후르츠산도는 극강의 비주얼로 인스타그램 핫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온통 흰색 일색의 공간 곳곳에 녹색 식물을 놓아 깔끔한 분위기가 강점이다. 테이크아웃을 하면 1000원을 할인해 준다.


▷위치: 서울 중구 을지로14길 20

▷영업시간: 오전 12시~오후 11시 (월요일 휴무)

▷대표메뉴: 후르츠 산도 8.0, 오미자 라임 소다 6.0, 크림바닐라 6.0, 비엔나 커피 6.0



6. 잔


종로 익선동에서 카페 '식물'을 운영하는 루이스 박 대표(46)는 작년 11월 을지로3가 골뱅이 골목에 새로운 카페 '잔'을 오픈했다. 공방과 겸하는 다른 을지로 카페들과 달리 3층과 루프트탑을 오르내리는 복층 구조로 된 탁트인 공간을 자랑한다.


벽을 뚫고 지나가는 긴 나무 테이블, 장미 벽지, 모자 모양 조명, 미러볼이 달린 화장실 등 매장 안은 카메라를 유혹하는 오브제들로 가득하다. 커피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와인과 하몽, 치즈, 살라미 등 가벼운 안주도 즐길 수 있다.



'잔'만의 특징은 취향에 맞는 잔을 먼저 고른 뒤 음료를 주문하는 방식에 있다. 주문하는 곳 옆에 여러 모양의 잔들이 진열돼 있는데 이는 여행과 출장이 잦은 박 대표가 직접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공수해온 것이다. 박 대표는 "잔이라는 사물과 카페 공간이 인간을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내기를 바랐다"며 "잔을 선택하려고 고민하는 짧은 순간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잔을 오픈하기 전 공간 디렉터로서 '호텔 수선화'의 실내를 디자인하기도 했던 박 대표에게 최근 을지로3가의 카페들이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버려진 동네 취급받던 구도심이라 엘리베이터도 없고 주차장도 없는 불편한 건물들이 대부분이지만 예전 홍콩 누아르 영화 속 쓸쓸한 도심을 걷는 것 같은 매력이 있다"며 "색다른 재밋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발견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위치: 서울 중구 수표로 52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2시 (일요일 휴무)

▷대표메뉴: 베트남 연유 커피 6.0, 아포가토 6.5, 아이스크림 팥 도너츠 6.0


호텔 수선화의 원혜림 대표가 5월을 맞아 새롭게 바뀔 메뉴판을 만들고 있다.


7. 호텔 수선화


을지빌딩 뒤쪽 골목의 평범한 4층 건물에 위치해 있다. 1,2층에는 제본업체들이 바쁘게 영업 중이어서 번짓수를 확인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계단으로 4층에 올라 세월호 추모 포스터가 걸린 철문을 열면 비밀스런 아지트 같은 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름만 보면 호텔이 아닐까 싶지만 이곳은 분명 카페다. 카페 이름에 '호텔'을 쓴 이유는 차와 기계가 가득한 을지로에서 여행지의 호텔 같은 의외의 느낌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란다. '수선화'의 꽃말인 자존심, 고결, 신비함과 이국적인 카페 내부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



2015년 12월 문을 연 이후 세 명의 디자이너들이 함께 운영하다가 지금은 주얼리 디자이너 원혜림 씨(33)가 홀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패션프루츠 에이드, 오가닉 티를 냉침으로 만들어 한정 수량 판매하는 콜드 밀크 티, 치즈와 햄, 루꼴라가 들어간 샌드위치 등이다. 저녁엔 다양한 종류의 병맥주와 와인도 즐길 수 있다. 카페 한켠은 작업실로 활용되고 있어서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현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위치: 서울 중구 충무로7길 17 4층

▷영업시간: 오전 12시~오후 12시 (일요일 휴무)

▷대표메뉴: 패션프루츠 에이드 6.0, 민트 밀크 티 7.0


혜민당에서 판매하는 각종 디저트 메뉴들


8. 커피 한약방


허준 선생이 진료하던 혜민서 터에 위치한 커피 한약방은 이미 을지로3가의 명소가 된 곳이다. 골목길을 돌아서 들어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구한말 시대로 이동한 듯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약재를 담던 수납장, 예스러운 자개장, 오래된 전등, 추억의 LP, 낡은 문고리 등이 고풍스런 멋을 재현한다.


커피 한약방에서는 커피만 판매하고, 바로 옆 혜민당에서 디저트를 판매한다. 대표 메뉴는 필터 커피와 프로마쥬. 커피는 사발에 내기 때문에 한약을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매월 마지막주 일요일에 부모님과 함께 방문하면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


▷위치: 서울 중구 삼일대로12길 16-6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10시30분 (평일), 오전 11시~오후 10시 (토요일), 오전 12시~오후 8시 (일요일)

▷대표메뉴: 필터 커피 4.2, 필터 스페셜 5.0, 프로마쥬 6.1, 무스 오미자 6.1


(매일경제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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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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