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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놀즈(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알마(비키 크리엡스)는 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웨이트리스였던 알마는 잘생긴 노신사 레이놀즈가 마음에 들었다. 의상 디자이너 레이놀즈 역시 알마가 다른 여자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놀즈는 알마가 받아적은 자신의 주문서를 달라고 했다. 알마는 음식을 내오면서 종이를 건넸다. “제 이름은 알마예요.”
배경은 1954년 영국 상류사회. 레이놀즈는 공주, 귀부인 등 상류층 여성들의 드레스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유명 디자이너다. 그에게 여자란 사랑에 빠졌다가 집착해오면 드레스 한 벌 줘서 떠나보내는 존재들이었다. 알마가 그동안 왜 결혼하지 않았냐고 묻자 레이놀즈는 대답하지 못하다가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의상을 만들어요.”
레이놀즈는 알마를 위해 드레스를 만들어준다. 그동안 어깨는 넓고, 가슴은 작고, 엉덩이는 커서 컴플렉스 투성이였다고 말하는 알마는 레이놀즈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몸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레이놀즈의 저택에 함께 살면서 모델 일을 시작한다.
레이놀즈는 알마를 자신이 어릴적 살던 집으로 데려가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는 그가 사춘기일 때 떠나갔다. 집에는 엄마가 자신이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사진이 놓여 있다. 그는 엄마에게 손재주를 물려받았고 그것을 평생 업으로 삼았지만 자신의 삶을 저주받았다고 여긴다. 그는 웨딩드레스를 만진 여자는 평생 결혼하지 못한다는 미신을 알마에게 들려주는데 마치 그 자신이 그 미신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알마가 한 남자에게 자신이 레이놀즈라는 남자와 겪었던 일들을 털어놓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 남자는 레이놀즈를 검진하러 온 적 있던 의사 하디(브라이언 글리슨)다. 그렇다면 알마는 지금 상담을 받는 중이다. 자신이 어떻게 레이놀즈라는 다루기 힘든 남자를 관리하게 되었는지를 털어놓는다. 고객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을 의무가 있는 의사이기에 그녀는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예술가들에게는 뮤즈가 있다. 하지만 알마는 그저 그런 뮤즈가 아니다. 그녀는 레이놀즈가 자신을 제어하려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그녀는 레이놀즈가 아침 식탁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지니 부산스럽게 하지 말라고 말하면 당신이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말하고, 레이놀즈가 누나 시릴(레슬리 맨빌)을 두둔하며 알마에게 당신 취향이 바뀌게 될 거라고 말하면, 그래도 내 취향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응수한다. 또 알마는 레이놀즈가 아스파라거스를 버터로 요리하는 걸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끝끝내 버터를 써서 오믈렛을 만든다.
처음에 레이놀즈와 알마가 만났을 때 유명 디자이너와 웨이트리스인 두 사람의 권력관계는 엄청나게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관계는 역전된다. 다른 여자처럼 고분고분하게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성격을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알마의 카리스마 때문이다. 그녀는 레이놀즈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시릴에게도 결코 져줄 생각이 없다.
레이놀즈를 길들이겠다는 알마의 욕망은 급기야 독이 들어간 아스파라거스를 그에게 먹이는 데까지 이른다. 여기서 그녀는 그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갖기 위해 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악녀들과 차별화된다.
“난 당신이 쓰러져주길 원해요.
힘없이 나약하게 무방비 상태로
내 도움만 기다리며…
그리곤 다시 강해지길 원해요.
죽진 않을 거예요.
당신이 죽고 싶어도 안 죽을 거예요.
당신은 좀 쉬어야 돼요.”
알마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는 여자다. 그녀는 결코 수동적인 그의 뮤즈로 남고 싶은 생각이 없다. 레이놀즈가 떠나간 엄마에게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알마는 레이놀즈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엄마의 자리를 빼앗아 자신이 차지하려 한다. 레이놀즈는 알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한참을 헤매다가 마침내 당신을 찾았군요.” 알마가 대답한다. “당신이 찾은 거죠.” 레이놀즈의 마조히즘은 알마의 사디즘을 만나 마침내 공존을 이루고 사랑의 권력관계는 균형을 찾는다.
사랑은 두 얼굴을 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아름답고 설레고 화려하게 보이지만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본 사랑의 진짜 모습은 병적이다. 그 사람을 소유해야만 만족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누구의 소유물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항상 속박과 자유 사이의 투쟁이다. 영화 ‘팬텀 스레드’는 이러한 사랑의 속살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뒤집어 보면 어딘가에 ‘저주받지 말것’ 같은 자기 최면을 암시하는 문구가 숨겨져 있듯이 사랑의 깊숙한 곳엔 항상 깊은 상처와 상처가 남긴 트라우마가 자리잡고 있다.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과 2시간 10분 내내 잔잔하게 요동치는 음악으로 눈과 귀를 속여가며 이 기막힌 사랑의 실타래를 황홀하게 풀어낸다. 레이놀즈가 연말 파티장에서 알마를 찾아 헤매는 장면부터 독이 든 오믈렛을 알면서도 먹는 식탁 장면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20분은 폴 토마스 앤더슨 영화의 또다른 명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앤더슨 영화의 음악만 주로 맡아온 라디오헤드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 역시 그 자체로 작품이다.
팬텀 스레드 ★★★★☆
사랑은 권력투쟁이다. 눈과 귀가 황홀한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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