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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와 분위기가 전혀 다른 두 편의 영화가 제90회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강력한 작품상 후보로 떠올랐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신랄하고 거침없는 드라마 '쓰리 빌보드'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몽환적인 로맨스 '셰이프 오브 워터'가 그 주인공이다.
먼저 기선을 제압한 영화는 무려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셰이프 오브 워터'다. 작품, 감독, 여우주연, 각본 등 주요 부문 뿐만 아니라 미술, 의상, 음악, 음향, 음향편집 등 기술 부문에서도 탁월함을 입증했다. 7개 부문에 이름을 올린 '쓰리 빌보드'는 양적 경쟁에서는 밀리지만 작품, 여우주연, 남우조연, 각본 등 후보에 오른 거의 모든 부문에서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아카데미 전초전인 골든글로브는 '쓰리 빌보드'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셰이프 오브 워터'도 감독상을 수상하며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이후 열린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는 '셰이프 오브 워터'에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안겼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열린 영국 아카데미는 다시 '쓰리 빌보드'에 작품상, '셰이프 오브 워터'에 감독상을 나누어 주며 골든글로브와 궤를 같이 했다. 두 영화가 유수의 시상식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펼치고 있는 형국이다.
'쓰리 빌보드'는 끔찍한 범죄로 딸을 잃은 엄마가 범인을 잡기 위해 고속도로 간판에 도발적인 메시지로 광고를 내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영화다. 피해자의 아픔을 강조해 감동을 이끌어내는 여느 영화들과 달리 뚜렷하지 않은 선악 구도, 피해자의 분노가 되레 누군가에게는 가해가 되는 아이러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 구조 등이 독창적인 영화다.
실화 소재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영화는 마틴 맥도나 감독의 창작물로 그는 연극계에서 '포스트 셰익스피어'로 이름난 실력을 영화에서도 뽐낸다. '쓰리 빌보드'에는 셰익스피어가 현대에 환생해 이야기를 쓴다면 이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랄한 풍자와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력이 살아 있다.
'파고'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적 있는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이 영화에서 딸을 잃었지만 존 웨인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로 경찰들을 갖고 노는 민폐 여성 밀드레드를 연기해 두 번째 여우주연상이 유력시된다. 또 밀드레드와 갈등을 빚는 월러비 경찰서장을 연기한 우디 해럴슨과 얼빵한 경관 딕슨을 연기한 샘 록웰의 연기도 눈부시다. 두 배우 모두 한 영화에서 드물게 동시에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미국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청소부로 외롭게 살아가던 언어장애인 엘리사가 비밀기지에 실려온 반인반어류인 생명체와 사랑에 빠지면서 펼쳐지는 모험담을 그린 영화다. 엘리사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생명체를 해부용으로 쓰려는 보안책임자의 계획을 알게된 뒤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작전을 세운다. 스토리가 새롭다기보다는 외로운 두 생명체의 동화 같은 사랑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몸에서 빛을 내뿜는 독특한 생명체와 바다속을 헤엄치는 듯한 감미로운 음악이 영화 감상을 특별한 경험으로 이끈다.
'내 사랑'에서 독립적인 여성 화가로 한국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샐리 호킨스가 언어 장애를 가진 엘리사 역으로 분해 여우주연상에 도전한다.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아성이 높긴 하지만 전미 비평가협회상과 새틀라이트상은 호킨스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었기 때문에 기대를 버리기엔 아직 이르다. 영화경력 25년 만에 처음으로 아카데미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거의 모든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집해 아카데미에서도 감독상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무거운 드라마 '쓰리 빌보드'냐, 몽환적인 SF 로맨스 '셰이프 오브 워터'냐. 최근의 흐름은 '쓰리 빌보드'로 기운 듯하다. 하지만 작년 아카데미는 가장 수상이 유력하다고 했던 로맨틱 뮤지컬 '라라랜드' 대신 시적인 드라마 '문라이트'를 택했다. 과연 올해는 어떤 작품의 손을 들어줄지, 시상식은 3월 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국내에서 '셰이프 오브 워터'는 22일 개봉, '쓰리 빌보드'는 오는 3월 15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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