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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제목인 코코는 증조할머니다. 증조할머니가 제목인 영화는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러니 이제 증조할머니의 어린 시절이 나오겠구나 생각하면 그건 또 오산이다. 영화는 치매에 걸린 증조할머니 코코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결정적 장면은 코코의 대사에서 비롯된다. 코코의 외손자인 미구엘이 ‘기억해줘’라는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에 코코가 화답하는 대사다. ‘기억해줘’는 코코의 아버지가 코코를 위해 만든 노래다. 음악의 길을 갈 것인가, 가정을 지킬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서 코코의 아버지는 음악을 택했다. 그것이 딸에게 못내 미안했던 아버지는 코코에게 이 노래를 불러줬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아직까지도 그 노래를 기억한다.


(이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다


영화는 ‘죽은 자의 날’이라는 멕시코 전통 축제를 배경으로 한다. 멕시코에서 11월의 첫 날인 이 날은 죽은 자와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날이다. 추수감사절, 한국의 추석처럼 조상에게 그 해 수확한 곡식으로 만든 음식을 올리는 날이기도 하다. 특이한 것은 후손이 조상의 사진을 갖고 있어야만 죽은 자는 저승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었다.



‘코코’의 세계에서 사진이 발명되기 이전의 조상들은 대부분 잊혀졌다. 사진이 없는 경우 자손 중 누군가가 그를 ‘기억해줘’야 하는데 이 경우 후손을 많이 남길수록 유리하다. 또 유명할수록 더 오래 기억될테니 더 유리하다. 한 마디로 ‘코코’의 저승 세계는 자손을 많이 남겼거나 유명한 자들만 오래오래 살아남는 불공평한 세상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또다시 죽어야 한다. 이런 이상한 저승에서 미구엘은 헥터를 만나 그를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려고 고군분투한다.



픽사 스토리텔링의 힘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음악을 하고 싶은 소년이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미래를 개척해 나아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순한 스토리 속에 마음을 붙잡는 요소들이 삽입돼 있다.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늘 그런 식이다. 99가지가 비슷하다면 그중 한 가지만 바꾼다. 그것만으로 감동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코코’가 바꾼 그 한 가지는 복잡한 인물 관계다. 주인공 미구엘로부터 무려 고조할아버지까지 올라가는 가족 관계가 이 영화의 신의 한 수다. 그 중간에 코코가 있다. 그러니까 증조할머니 코코는 이 영화에서 결코 최고령이 아니다. 게다가 치매에 걸린 그녀는 가장 순수한 소녀의 마음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 마음은 영리한 소년 미구엘을 통해 가족에게 전달된다.


미구엘의 가족은 대대로 신발을 만들며 살아왔다. 하지만 미구엘만큼은 신발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는 거리에서 ‘마리아치’를 보고 기타에 빠진다. 그는 TV에서 톱스타 에르네스토 데 라 크루즈를 보고 그의 기타 프레이즈를 그대로 따라한다. 데 라 크루즈는 고조할아버지와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음악의 핏줄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가족은 그가 음악하는 것을 결사 반대한다. 고조할아버지가 음악 때문에 가족을 버렸다는 것이 이유다.


여기서 미국영화와 일본영화의 차이점 하나. 만약 일본영화였다면 가업인 신발을 만드는 장인정신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조화시키는 선에서 마무리할 것이다. 하지만 ‘코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할리우드는 부러지더라도 꿈을 위해 전진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산실이다. 미구엘은 끝내 포기하지 않고 음악의 길을 쟁취해낼 것이다.



비슷하면서 다른 ‘코코’와 ‘신과 함께’


이번엔 한국영화와 비교해 보자. ‘코코’는 저승 세계가 영화의 무대라는 점에서 ‘신과 함께’와 닮았다. ‘신과 함께’의 주인공 김자홍은 죽은 뒤 저승 세계에서 심판을 받는다. 심판의 결과에 따라 다시 한 번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저승 세계는 불, 물, 얼음, 사막 등 다양한 형태로 묘사되고 있는데 그 모습은 이승을 극단적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반면 ‘코코’의 저승세계는 굉장히 화려하다.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테마파크처럼 보인다. 입구에서 신원이 확인되면 자유롭게 생활이 가능하다. 심판도 없고 판결도 없다. 다만 “잊혀지면 죽는다”는 하나의 규칙만 있을 뿐이다.


'신과 함께 - 죄와 벌'


‘코코’와 ‘신과 함께’의 저승 묘사를 통해 서양과 동양의 세계관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서양에서 사후 세계는 아름다운 시절을 다시 사는 것인 반면, 동양에서 사후 세계는 이승으로 돌아가기 위한 심판이 진행되는 곳이다. 동양에선 합격하는 자만 이승으로 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자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타인에게 죄 짓지 않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 서양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있는 동안 남들과 다른 삶의 흔적을 남기려고 한다.



‘코코’와 ‘신과 함께’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생전에 죄를 지은 자는 죽어서라도 그 죄의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구엘이 저승세계 모험을 통해 얻어낸 성과 중 하나는 영웅인줄 알았던 데 라 크루즈가 사실은 뻔뻔한 살인자에 도둑이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신과 함께’에서도 영웅인줄 알았던 김자홍에게 사실은 파렴치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다.


하지만 이후 심판 과정은 또다시 동서양의 차이를 보여준다. 저승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코코’에서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을 테지만 고조할아버지대의 범죄는 저승에서라도 심판받는다. 반면 ‘신과 함께’의 김자홍은 염라에 의해 용서받는다. 정상참작할 상황들이 많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사연 없는 죄가 어디 있으랴. 데 라 크루즈에게도 피치못한 사정들이 있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그가 얼마나 가여운 소년이었는지 파고 들어가기 시작하면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들지도 모른다. 모두 생략돼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말이다. 이렇듯 '코코'는 무관용 원칙을 말하고, '신과 함께'는 용서의 미덕을 강조한다는 것도 두 영화의 차이점이다.



마지막으로 ‘코코’가 지금까지 픽사 영화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멕시코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데에서 나아가 아예 멕시코의 전통문화를 영화의 소재로 차용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픽사가 만든 이야기들이 이렇게 특정 국가의 지역성을 띤 적은 없었다. 일본색이 짙었던 (픽사의 모회사) 디즈니의 ‘빅 히어로’의 경우에도 어쨌든 배경은 도쿄와 믹스된 샌프란시스코였다. ‘코코’의 시도는 영화적인 신선함을 추구하기 위한 자구책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족 이야기가 지역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가 20%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하며 흥행을 좌우하고 있다는 것도 이런 과감한 결정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


'코코' 엔드크레딧에 등장한 영화에 영감을 준 인물들 콜라주.


어쨌든 그 결과, ‘코코’는 지금까지 픽사 애니메이션과 전혀 다른 작품처럼 보인다. 마치 일본 전통문화를 줄곧 애니메이션의 소재로 삼아온 스튜디오 지브리의 방식을 픽사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확장해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다. 픽사가 만드는 이야기의 폭은 이처럼 더 넓어지고 있다.


코코 ★★★★

억울함은 죽은 뒤에라도 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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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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