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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외과의사가 못 되고, 대출을 못 받아 집을 못 사고,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하고… 그렇게 난 여기까지 왔어요. 10년 전엔 상상도 못할 상황이 벌어진 거죠. 이건 나에게 숙명이에요. 지금 이걸 안하면 대체 난 누구죠?”
영화 ‘다운사이징’은 생존을 위해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의 배경은 노르웨이에서 다운사이징 기술이 개발돼 범용화된 가상의 근미래. 기술 발전으로 인간은 키 12.7cm로, 부피 0.0364%로, 무게는 2744분의 1로 줄어들 수 있다.
줄어드는 게 왜 필요하냐고? 명목적인 이유는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다. 인간은 무분별하게 환경을 오염시켜서 자원은 고갈되어가고 있고, 지구는 황폐화되어가고 있다. 이 상태로 가다간 인류는 멸종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따로 있다. 그것은 작아지면 더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크기가 줄어들면 더 적은 공간에서 더 적게 먹으면서 살 수 있다. 그래서 레저랜드의 상담사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곳에선 1억원이 120억원의 가치가 있어요. 부자로 평생 즐기면서 살 수 있습니다.”
나 같으면 작아지면 거인들에게 밟혀 죽지 않을까 걱정이 가장 클텐데 영화에는 그런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는다. “레저랜드는 모든 벌레들을 제거했다”는 한 마디로 불안감을 일축시킬 뿐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과연 실제로 더 작은 세상을 보면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평생 다시는 큰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화에는 단지 경제적 풍요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이런 고민은 부족하다.
어쨌든 영화의 주인공 폴 사프라넥(맷 데이먼)은 레저랜드 상담사의 말에 혹한다. 외과의사가 꿈이었지만 실패하고 치료사로 일하는 그는 사람들이 자꾸만 다운사이징하면서 생산 인구가 줄자 소비가 줄고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이 버티기 힘들다. 아내 오드리(크리스튼 위그)가 새 집으로 이사 가기를 원해 집을 알아보는데 은행에서는 신용도가 떨어져 대출 한도를 축소해야 한다는 연락이 온다.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해도 번듯한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현실에 폴은 오드리를 설득해 결심을 한다. 소인이 되기로 말이다.
여러 회사들이 만든 소인을 위한 7개의 도시를 비교한 뒤 폴과 오드리는 가장 럭셔리하고, 소인국 최대(?) 레저시설이 있고, 디저트 상점도 3곳이나 있는 레저랜드를 선택한다. 그리고 마침내 ‘트랜지션’ 시설에 도착해 온몸의 털을 다 밀고 금니도 제거(가장 중요하다! 금니는 작아지지 않아서 머리가 터질 수 있다)하고 소인이 되기 위한 시술대에 오르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오드리가 그만 변심해버린 것이다. 이제 폴은 홀로 남아 소인국에서 살아가야 한다(영화 속 설정으론 한 번 작아지면 다시는 커질 수 없다).
폴은 궁전같은 집에 살게 됐지만 혼자다. 아내와 결별한 뒤 소인이 된 것을 후회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폴이 소인이 되기 전 영화는 소인국에는 범죄가 없다는 말로 한껏 기대를 부풀렸다. 모두 부자인 사람들이 풍족하고 게으르게 살아도 실제로는 과거보다 훨씬 덜 먹고 덜 쓰게 되니 이러한 유토피아가 또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어디나 다 그렇듯이 밖에서 좋아 보이던 것을 실제로 경험해 보면 그동안 몰랐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기업 입사가 최고의 꿈이었던 신입사원은 보통 입사 3~5년 후에 그만 두는 비율이 높고, 환상을 품고 만난 이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점이 장점을 덮기 시작한다.
폴 역시 마찬가지다. 마냥 낙원일 줄 알았던 소인의 세상은 그 전에 살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점점 드러난다. 소인국에도 여전히 불법 밀수, 인종차별 등이 있고, 거인 세계와의 갈등도 있다. 그리고 이곳에도 역시 슬럼이 있다. 이기적인 사람은 소인이 되어도 이기적이고, 한 번 발생한 갈등은 잘 극복되지 못한다. 사람 사는 세상이 어디나 그렇듯 완벽한 곳은 없다.
영화 중반부터 폴의 상대역으로 등장하는 여성은 베트남에서 온 녹 란 트란(홍 차우)이다. 스스로 다운사이징을 택한 폴과 달리 녹 란은 베트남에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강제로 작아졌다. 그녀는 TV 상자의 모서리에 숨어 몰래 미국으로 들어온 난민으로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한쪽 다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슬럼에서 더 외로운 다른 환자들을 돌보는데 몰두한다. 폴은 누구보다 강인하고 이타적인 그녀와 함께 다니며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이처럼 다운사이징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빈틈을 정치적인 풍자, 다인종 로맨스 등으로 만회하려 한다.
하지만 영화의 신선함은 후반부엔 약발이 다한다. 인류 최후의 안식처로 소인국이라는 화두를 제시했으나 결말은 너무나 익숙한 길이다. 그것은 ‘둠스데이’로 거인이 된 인류를 멸종시키고 소인을 최후의 생존자로 만드는 것이다. 자연친화적인 노르웨이의 소인들은 ‘노아의 방주’를 지하에 짓고는 지구를 되찾을 때까지 버티기에 들어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폴은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동안 스스로 실패라고 규정한 삶을 살아오던 폴에게 있어 '선택'은 결과적으로는 탈출이었다. 외과의사가 못된 현실로부터 탈피하고, 대출심사로부터 벗어나고, 강제 이혼의 고통으로부터 이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나름대로 ‘버티는 삶’의 방식이었다. 살아남아 버티기 위해서 탈출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 그는 다시 한 번 선택해야 한다. 사랑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 최후의 생존자로 남을 것인가. ‘버티는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온 그는 이번에는 생애 처음으로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한다.
결국 이 영화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고와 유토피아의 허상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소재는 환유의 방식으로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메시지가 되어 다가오는 영화다. 그 메시지란 최후의 순간에도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운사이징’은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전작인 ‘네브라스카’(2013), ‘디센던트’(2011), ‘어바웃 슈미트’(2002), ‘사이드웨이’(2004) 등과 결을 같이 한다.
다운사이징 ★★☆
생존을 위해 계속해서 떠나는 남자 이야기. 멈추면 비로소 찾아오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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