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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의 가장 큰 특징은 탈중앙화다. 모든 참가자들이 N분의 1만큼의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진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처럼 혁신적인 암호화폐가 블록체인 기술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지만 사실 이런 코인을 오대수 씨라고 못 만들라는 법은 없다.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게 블록체인이다.


"까짓거 나도 암호화폐 하나 만들어서 세상을 바꿔봐?" 오대수 씨 같은 사람들이 늘면서 세상에는 벌써 1300종 이상의 암호화폐가 나와 있다. 이더리움은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암호화폐를 쉽게 발급할 수 있는 플랫폼 기능을 제공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토큰만 무려 1만2000종 이상이다.



암호화폐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투자자에게 비트코인이나 이더 등 기존의 암호화폐를 지급하고, 새로운 암호화폐를 발급해 제공하면 끝이다. 이 과정을 ICO(Initial Coin Offering)라고 한다.


ICO는 비상장 기업이 주식을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IPO(Initial Public Offering)를 떠올리게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다르다. ICO는 투자은행과 증권회사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투자자에게 배당이나 이자를 지급하지 않으며, 공시 의무도 없고, 기업 실적을 공개할 필요도 없다. 투자자는 지분이나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한다.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전혀 없는 셈이다. ICO는 IPO보다는 차라리 크라우드펀딩에 가깝다. 그래서 대부분의 ICO는 코인을 '판매'한다고 하지 않고 '기부(Contribution)'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더리움 플랫폼 기반 암호화폐는 'ERC-20 토큰'(ERC-20은 Ethereum Request for Comment 20의 약자로 이더리움 네트워크 표준을 의미)이라 불리는데 누구나 자기 토큰을 만들고 이더리움 전자지갑을 통해 주고받을 수 있다. 까다로운 거래 검증(채굴) 과정을 이더리움 네트워크가 대신해주기에 복잡한 프로그래밍이 필요 없다.


2017년 수많은 암호화폐들 중 히트상품은 단연 비트코인이지만 상승률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이더리움이 비트코인보다 압도적으로 높다(이더리움 9000%, 비트코인은 1700%). 그 이유는 JP모건, 크레디트 스위스, ING, MS, 인텔 등 글로벌 기업들이 올해 초 이더리움 기반 프라이빗 블록체인 연구모임 EEA(Ethereum Enterprise Alliance)를 발족하면서 이더리움이 블록체인의 표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더리움은 플랫폼을 공개한 덕분에 블록체인 생태계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더리움 플랫폼 기반의 앱을 'DAPP(Decentralized Application, 분산 애플리케이션)'이라 부르는데 DAPP이 성공을 거두면 DAPP이 발행한 토큰의 가치가 상승하고 투자자들은 수익을 얻는다. 퀀텀(QTUM), 이오스(EOS) 등이 DAPP에서 성공한 토큰들이다. 토큰의 가치가 오르면 당연히 이더리움 플랫폼의 가치도 올라간다.


크립토 키티 게임


최근엔 DAPP으로 만든 최초의 게임 '크립토 키티'가 대박을 터뜨리며 블록체인 게임이 또 다른 블루오션으로 등장했다. '크립토 키티'는 '포켓몬 카드'처럼 고양이 캐릭터를 모으는 게임이다. 출시 10일 만에 무려 6700만 달러(7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는데 희귀한 고양이의 경우 무려 18만 달러(2억원)까지 가격이 치솟기도 한다. 인터넷의 보급에도 게임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을 상기하면 블록체인 게임의 등장은 고무적이다.


코인이든 토큰이든 ICO는 투자자를 필요로 한다. 암호화폐에 돈이 몰리면서 2017년 ICO 시장은 대폭발해 거래 규모가 벤처캐피탈의 투자 규모를 넘어섰다. 블록체인 ID 플랫폼인 시빅(Civic)을 설립한 비니 링햄 CEO는 "토큰이 세계를 먹어치우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문제는 아직 코인 발행과 투자에 대해 법률적 근거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범죄 자금이 들어가도 제재할 방법이 없고, 자금 출처에 대해 명확하게 답변할 주체도 없으며, 투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할 길도 없다. 그래서 이더리움을 공동창업한 찰스 호스킨슨마저 현재의 ICO 열풍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는 "ICO 기반의 자금조달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했다.



ICO가 투자자의 권리를 보호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돈을 빨아들이면서 각국은 일단 ICO에 철퇴를 가하고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연방증권법으로 ICO 시장을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고, 한국도 ICO 금지를 선언했다. 중국은 이미 ICO 시장을 폐쇄했고, 러시아는 개인 투자자의 ICO를 제한했다.


하지만 투기 열풍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법적 요건이 만들어지고 나면, ICO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ICO는 블록체인의 분산 효과를 극대화할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이를 가장 쉽고 편리하게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이 ICO다. 문제의 해결책은 가장 단순한 길에 있다는 '오컴의 면도날' 법칙을 상기해보면 ICO는 다른 대안이 없는 한 언젠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다.


또 국경이 따로 없는 블록체인 특성상 ICO 수요는 풍선효과처럼 금지되지 않는 국가로 몰려갈 텐데 돈이 한 국가로 쏠리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국가는 없을 것이라는 점도 ICO 재부상을 점치는 이유다.


특히 스위스는 블록체인에 무척 개방적이어서 ICO에 관한 법적 구조를 이미 마련해놓고 있다. 입주기업 세제 혜택과 행정 지원까지 풍부해 이더리움 재단을 비롯해 자포(Xapo), 셰이프시프트(ShapeShift), 모네타스(Monetas), 싱귤러 DTV 등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이 취리히에 둥지를 틀었고, ICO를 하려는 기업들도 몰려가고 있다.


또 세계 최초로 국가에 의한 ICO를 추진하는 에스토니아는 자체 암호화폐 '에스트코인(Estcoin)'을 발행해 조달 자금을 벤처캐피털 펀드처럼 전자시민권에 따라 설립되는 기업을 지원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다.



지금은 국가마다 ICO에 대한 대응책이 전혀 달라 혼란스럽지만, 언젠가 ICO가 실물자산을 가진 기업이나 단체로까지 확대되면 그때야말로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삼성과 현대차가 증시가 아닌 ICO로 돈을 조달하기 위해 주식 대신 삼성코인, 현대차코인을 발급한다고 생각해 보라. 또 지방자치단체 역시 서울코인, 부산코인, 경기코인을 만들어 유치한 자금을 재정에 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단 기업이나 단체뿐만 아니라 개인도 코인이나 토큰을 발급할 수 있다. '오대수 토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ICO 초기에는 그럴듯한 비전이 담긴 사업계획서(Whitepaper) 하나만 있으면 투자금이 몰려들었지만 암호화폐 거품이 커다란 사회현상이 되면서 이젠 확실한 차별화 요소가 있지 않으면 점점 투자받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오대수 씨 역시 ICO를 계획하고 있다면 자신만의 필살기를 찾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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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2) 막강 기술 스마트 컨트랙트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3) 왜 암호화폐로 시작했나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4)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차이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5) 일곱 가지 변화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6) 누구나 코인을 만들 수 있다

>> 블록체인이 바꿀 세상 (7) 완벽한 기술은 없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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