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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개봉한 <핵소 고지>와 28일 개봉한 <사일런스>는 전쟁영화와 종교영화로 전혀 다른 영화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꽤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두 영화 모두 종교적인 신념이 강한 남자가 주인공인데 그는 공교롭게도 일본에서 악전고투합니다. 한 편씩 살펴보겠습니다.



<핵소 고지>는 제7의 날 재림 교회라는 한 기독교 분파의 신자 데스먼드 도스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보여준 영웅적인 활약상을 재현한 전쟁영화입니다. 어릴적 트라우마로 무기를 손에 들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진 그는 국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오키나와 전투에 의무병으로 참전해 부상병 75명을 구출해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실제 도스의 생존 당시 영상이 꽤 길게 삽입돼 감동을 배가시키기도 합니다.


멜 깁슨 감독


영화의 감독은 멜 깁슨으로 <아포칼립토>(2006) 이후 10년 만에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한때 음주운전과 인종차별 발언으로 할리우드를 떠나 있어야 했죠. 이번에도 그는 투자를 받지 못해 사비를 털어 제작비를 조달했을 만큼 절박감이 컸습니다.



주연 배우로 캐스팅된 앤드류 가필드는 깁슨의 인종차별 낙인이 부담되지 않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며 그를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데스먼드 도스는 전쟁 중 미국인 부상병만 구출한 게 아니라 일본인 부상병도 구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깁슨은 도스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존경했어요. 트럼프 같은 선동가와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입니다."


깁슨이 도스라는 인물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지적한 것이죠. 더 극단적인 트럼프와의 대비를 통해서요.


촬영은 2015년 9월부터 59일간 일본이 아닌 호주에서 이뤄졌습니다. 전작보다 적은 제작비에도 과감하고 생생한 전투 장면이 영화의 백미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편집상과 음향상을 수상했습니다.


외유내강형 군인으로 열연한 앤드류 가필드를 비롯해 <라이트 아웃>의 테레사 팔머, <에베레스트>의 샘 워싱턴이 출연합니다.



<사일런스>는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1966)을 각색한 작품으로 17세기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신부 페레이라가 에도 막부 시대 일본으로 갔다가 선불교로 개종한 충격적인 실화를 뼈대로 그 위에 이야기를 덧입혔습니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성은 <지옥의 묵시록>(1979)을 떠오르게 합니다. 포르투갈인 로드리게스 신부(앤드류 가필드)와 가루페 신부(아담 드라이버)는 배교했다는 소문이 자자한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를 직접 만나기 위해 가톨릭 박해가 극에 달한 일본을 찾는데 이곳에서 끔찍한 광경을 목도합니다. 일본인 영주는 이 땅엔 가톨릭이 자랄 수 없다며 로드리게스를 배교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회유하고 협박하는데 결국 로드리게스는 마을 주민을 살리기 위해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스콜세지는 이 작품을 당초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의 속편으로 기획했지만 제작이 계속 미뤄지다가 거의 30년만에 빛을 보게 됐습니다. 촬영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가 만들어낸 영상은 마치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보는 듯 명암 대비가 강렬합니다. 로드리게스 신부의 고통스런 심리를 명암 대비로 표현한 것이죠.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 촬영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츠카모토 신야, 아사노 타다노부, 카세 료, 고마츠 나나, 이세이 오가타 등 일본 톱스타들이 총출동할 정도로 캐스팅도 화려합니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왜 신은 응답하지 않는가? 영화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로드리게스를 만난 페레이라 신부는 갈등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는 핍박받는 자신에게서 예수를 떠올리겠지만, 마을 주민들은 자네를 보고 있네. 그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예수가 아니라 자네 뿐이야."


페레이라 신부는 배교하고 불교도가 됐지만 그의 표정에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종교가 과연 인간의 삶과 생존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촬영은 2015년 1월부터 4개월간 일본이 아닌 대만에서 진행됐습니다. 앤드류 가필드는 하루 3시간만 자는 강행군으로 산을 오르고 태풍을 견딘 끝에 몸무게가 18kg나 빠졌다고 합니다.



규모와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소재가 비슷한 만큼 두 영화의 메시지는 닮았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핍박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독의 종교적 성향에 따라 용기의 결말은 전혀 다릅니다.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인 멜 깁슨 영화는 어떤 상황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용기라고 말하지만, 논쟁을 즐기는 진보적 기독교 신자인 마틴 스콜세지 영화는 교리와 상징에 연연하기보다 신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면 때론 신념을 꺾는 것이 더 큰 용기라고 말합니다.


용기에 관한 두 가지 해석 중 당신은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고 싶으신가요?


>> <핵소 고지> <사일런스> 앤드류 가필드의 변신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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