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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역사를 다룬 유럽영화 두 편이 6일 동시 개봉했다. 1945년의 덴마크와 1973년의 칠레가 배경인 두 편의 연결고리는 '나치'다. 덴마크 영화 '랜드 오브 마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덴마크 해안에 매설된 수백만 개의 지뢰제거 작업에 강제 투입된 독일 소년병을 조명하고, 독일 영화 '콜로니아'는 칠레로 도망간 나치 전범이 독재자 피노체트와 결탁해 정치범을 강제수용한 사이비 종교단체 '콜로니아 디그니다드'를 배경으로 한다.


전자는 나치의 만행에 가려져 덴마크 내에서도 쉬쉬하던 전쟁의 이면을 드러내고, 후자는 독재정권과 결탁해 나치의 수법으로 인권을 유린해온 비밀조직을 고발한다. 두 영화 모두 가슴아픈 역사를 다루고 있어 전반적인 분위기는 무겁지만 각각 서스펜스와 스릴러 요소를 적극 차용해 보는 재미도 갖췄다. 두 편의 영화를 파헤쳐 보자.



일촉즉발 지뢰제거 <랜드 오브 마인>


1945년 덴마크의 해안가 마을에 독일 소년병들이 포로로 잡혀 있다. 이들의 임무는 나치가 해변에 매설해놓은 지뢰를 찾아 해체하는 것이다. 한 번 터질 때마다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소년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나치군은 연합군 상륙을 막기 위해 덴마크 서해안에 무려 200만 개의 지뢰를 매설했다. 전쟁이 끝난 후 덴마크군은 독일 소년병 2600여명을 포로로 잡고 지뢰 해체 작업에 투입한다. 이들은 히틀러에 의해 강제 징집된 민간인이었고 가장 어린 군인은 13세에 불과했다. 전쟁 포로 학대를 금지한 제네바 협약이 체결된 때가 1929년이었으니 명백한 협약 위반이다. 독일군이 덴마크를 점령한 5년 간 발생한 사상자보다 지뢰 해체 작업이 이루어진 5개월 간 발생한 사상자가 더 많았을 정도로 결과는 처참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아이러니는 영화 보는 내내 관객을 당혹스럽게 한다. 소년들은 자신의 형 혹은 아버지 세대의 나치군이 저질러 놓은 만행 때문에 버림받고 또 덴마크군에 의해 다시 한 번 희생되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어느 특정 소년보다 소년들 전체가 주인공인 이 영화에서 이들을 훈련시키다가 소년들의 처지에 동화되는 덴마크군 책임자 카를 상사(롤랜드 뮐러)는 관객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는 또다른 비극 앞에 영화가 끝나고 나면 악의 평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마르틴 잔드블리엣 감독은 모두가 쉬쉬하던 역사를 용감하게 들춰내 덴마크 내에서 호평받고, 올해 미국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소년병들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고 폭탄이 언제 터질까 가슴 졸이게 만드는 서스펜스를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다. 러닝타임 내내 소년병들의 불안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을 졸이지 않고 보기 힘들다. 다만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탓에 지나치게 단순해진 스토리는 아쉽다.



사이비 종교단체 탈출극 <콜로니아>


1973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다. 아옌데 정권 연장을 위한 시위에 가담했던 독일인 다니엘(다니엘 브륄)은 피노체트의 군대에 체포된다. 레나(엠마 왓슨)는 연인 다니엘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그가 수감된 콜로니아로 몰래 들어간다.


영화는 위장 잠입과 탈출이라는 스파이 스릴러 서사를 칠레의 실제 역사에 대입한다. 버마 탈출기 <비욘드 랭군>(1995), 시에라리온에서 빠져나오는 <블러드 다이아몬드>(2006) 등과 비슷한 구성이다.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살아서 돌아온 사람이 5명 뿐이었다는 비밀스런 사이비 종교시설을 무대로 다니엘과 레나는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감춰졌던 처참한 역사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콜로니아는 1961년 독일에서 아동 성폭행으로 수사받다가 도피한 나치 전범 파울 셰퍼가 칠레 중부에 세운 컬트적 종교시설이다. 신도들은 외부와 고립돼 하루 12시간씩 집단농장에서 노동하며 살았다. 무상교육, 의료 등을 제공했기에 한때 가난한 주민들이 유토피아로 알고 찾아오기도 했으나 셰퍼는 곧 본색을 드러내고 이곳은 지옥으로 변한다.


셰퍼는 스스로를 신으로 칭하면서 아동 성폭행, 여성 학대 등을 자행했다. 소년들의 성욕을 관리하기 위해 전기 충격기를 사용하고 탈출하지 못하도록 무장 경비가 24시간 감시했다. 겉으로는 종교단체지만 내부는 철저한 수용소였던 셈이다.


피노체트가 권력을 잡은 뒤 셰퍼는 이곳을 반체제 인사들을 구금하고 고문하는 장소로 제공했는데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의 천사'라는 별명으로 불린 의사 조세프 멘겔레에게 전수받은 사린가스 사용법을 비밀경찰에게 건네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셰퍼는 독일 대사관도 매수해 외교관마저 그의 만행을 묵인했다. 훗날 칠레 정부가 조사해 밝힌 '진실과 화해 리포트'에 따르면 이곳에서 고문당한 뒤 죽어나간 반체제 인사들만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한다. 사실상 나치가 지어준 피노체트의 아우슈비츠였던 셈이다.



셰퍼의 왕국은 1990년 피노체트 정권이 끝난 이후에도 7년 더 지속되다가 1997년 막을 내렸다. 셰퍼는 아르헨티나로 도망간 뒤 2005년 붙잡혔지만 이때 그의 나이는 이미 84세였다. 칠레 법원에서 20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형기를 채우지 못하고 2010년 사망한다. 뒤늦게 이 사태의 책임을 인정한 독일 정부는 작년 대통령이 직접 콜로니아를 방문해 사과하기도 했다. 콜로니아는 이후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름을 '비야 바비에라'로 바꾸고 여전히 수백 명의 신자가 활동 중이라고 한다. 다만 출입은 좀더 자유로워졌다.


영화에는 잔혹한 고문 장면과 혹사당하는 신도들이 등장하지만 극의 흐름을 깨지 않는 선에서 수위를 조절한다. 콜로니아의 처참한 실상은 오히려 허구의 캐릭터인 다니엘과 레나의 극적인 탈출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스토리를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곳곳에 무리수를 둔 설정으로 인해 개연성이 무너진 점은 아쉽다.



다행히 배우들의 적확한 연기는 영화의 단점을 상당 부분 만회해준다. '미녀와 야수'의 엠마 왓슨은 침착하고 강인한 모습으로 극의 중심을 잡고, '굿바이, 레닌'의 다니엘 브륄은 절박한 두 얼굴 연기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또 스웨덴판 '밀레니엄' 3부작으로 얼굴을 알린 미카엘 뉘크비스트가 셰퍼 역할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을 소화한다.


영화를 만든 플로리안 갈렌베르거 감독은 전작 '존 라베: 난징 대학살'(2009)에서도 일본군 공습으로부터 중국인들을 피난시킨 '중국판 쉰들러'인 난징의 독일 사업가를 그려 감춰진 역사 속 실화를 재조명한 적 있다.


랜드 오브 마인 ★★★☆

인간이란 참 잔인한 존재. 악은 동전의 양면이다.


콜로니아 ★★★

인간이란 참 나약한 존재. 악은 악끼리 연대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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