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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위기라고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4년 연속 관객 1억명을 돌파할 만큼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찾는 관객은 꾸준히 늘고 있고, 거장과 신인 감독의 영화가 나란히 극장에 걸리며, 올해는 모처럼 칸 영화제에 진출한 한국영화도 다섯 편이나 된다.


하지만 화려한 화장을 지워보면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난다. 위기의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영화 흥행이 양극화돼 대작이 아니면 극장에 관객이 들지 않는다는 것. 둘째, 흥행이 되지 않으니 투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셋째, 영화가 질적으로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영화 흥행 양극화는 관객 수 차이에서 드러난다. 소위 ‘대박’과 ‘망작’ 사이 즉, ‘중박’이라고 할 수 있는 100만~500만 명 사이의 관객을 동원한 한국영화는 2014년 20편, 2015년 16편으로 줄더니 올해는 4월 현재 3편에 불과하다. 이 구간은 제작비 30억~100억 사이의 영화들이 손익분기점에 도달해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관객 수이기 때문에 이 구간의 영화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안정적인 제작 환경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이대로 가다간 중저예산 영화는 설 곳을 잃고 극장은 1000만 관객을 노린 대작들만 상영하는 곳으로 바뀔 것이다. 1인당 영화 관람 횟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들은 패스트푸드점에 가는 것처럼 모두 똑같은 영화만 보게 되는 것이다.



둘째, ‘중박’ 흥행 영화가 나오지 않으니 중저예산 영화는 투자자를 찾기 힘들다. 제작비 100억 이하 규모 영화의 수익률은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투자금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투자자들은 중간 규모 영화는 꺼리고 대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작품에만 몰린다. 꾸준히 여러 작품에 투자해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용하지 못하고 크게 벌 수 있는 작품에만 올인하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암살> <베테랑> <히말라야> 등 여름과 겨울방학 시즌을 노린 텐트폴 블록버스터들은 거의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만약 100억 이상 들인 대작들 중 단 한 편이라도 삐끗한 흥행 결과가 나온다면 투자자들은 썰물처럼 영화계에서 발을 뺄 것이다.



셋째, 영화의 완성도가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잘 만들었다고 호평받은 영화를 찾기 힘들다. 작년 봄에만 해도 <스물>, <극비수사>, <강남 1970>, <차이나타운> 등 눈여겨 볼만한 작품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흥행에 실패해 아쉽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 <그날의 분위기> <나를 잊지 말아요> <조선마술사> <오빠생각> <좋아해줘> <순정> 등 대부분 영화들이 소위 기존 흥행공식을 답습해 식상하고 만듦새도 좋지 않다. 그나마 <동주>가 체면치레를 했고, <귀향>이 완성도보다는 의미로 평가받았을 뿐이다.


최근 비수기인 봄 시즌 개봉한 한국영화들도 나아지지 않았다. <해어화> <널 기다리며> <대배우> <시간이탈자> <날, 보러와요> 등 하나같이 기존 한국영화나 할리우드 스릴러의 짜깁기 수준이다. 덜 나쁜 후보를 뽑는 선거도 아니고, 굳이 덜 나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갈 필요는 없으니 관객은 티켓을 구입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관객이 들지 않으니 투자가 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이다.



그나마 봄시즌 개봉작 5편 중 <날, 보러와요>는 흥행에 성공했다. 30억을 들인 <널 기다리며>와 <대배우>가 각각 관객 63만 명과 17만 명에 그쳤고, 60억을 들인 <시간이탈자>는 70만 명, 70억을 들인 <해어화>는 고작 32만 명만을 동원하고 있는 사이 10억원으로 만든 저예산 스릴러 <날, 보러와요>는 손익분기점 50만 명을 훌쩍 넘어 88만 명을 동원해 극장 ‘춘궁기’에 유일하게 실속을 챙긴 것이다.


<날, 보러와요>가 특별히 잘 만든 스릴러여서 관객이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반전에 힘주느라 장면들의 이음새가 무척 헐겁고, 어디서 본 것 같은 뻔한 구성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평범한 스릴러다. 여성이 사건의 열쇠를 쥔 여성 원톱 영화라는 타이틀도 그 전에 개봉한 심은경 주연의 <널 기다리며>가 먼저 가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보러와요>가 성공한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자극적인 실제 이슈를 다루었다는 것. 이 영화의 소재는 보호자 2명의 동의가 있으면 누구든 정신병원에 감금할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허점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루면 좋을 만한 소재를 픽션으로 만들었기에 일단 소재만으로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다.


둘째, 스타 캐스팅을 자제하고 촬영기간을 줄여 제작비를 최대한 아꼈다는 것. 여주인공인 강예원을 제외하면 이상윤, 최진호, 지대한, 김종수, 유건 등 얼굴은 낯익지만 이름은 혀에서 맴돌기만 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모든 장면의 촬영을 마쳤다.


셋째, 대작이 사라진 틈새 시장을 겨냥해 개봉했다는 것. <배트맨 대 슈퍼맨>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등 할리우드 대작들이 개봉하는 중간에 재빠르게 개봉시기를 잡아 묻히지 않고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날, 보러와요>가 성공했다고 해서 이런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완성도의 부실함을 자극적인 장면으로 보충하려는 시도는 눈살이 찌뿌려진다. 당장은 흥미로워서 극장을 찾은 관객도 이런 시도가 계속되면 등을 돌릴 것이다.


결국 해마다 줄어드는 중저예산 규모 영화의 관객을 회복하는 방법은 영화의 완성도에서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잘 만드는 것이 기본이고 그 다음에 관객을 탓해야 한다. 올해 중간 규모 영화들 중 굳이 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영화들이 너무 많다. 앞서 언급한 다섯 편의 봄시즌 영화의 완성도 역시 <날, 보러와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 저 영화 짜깁기해 만들어놓고 이 정도면 관객이 봐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한국영화의 호황기는 1990년대 중반,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기존 한국영화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시작됐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의 위기는 한 단계 낮아진 완성도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 징후는 올해 개봉작들의 수준에서 이미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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