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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의 17번째 영화 <헤일, 시저!>는 그들의 전작들만큼이나 위트와 품위를 갖춘 코미디 영화다. 195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황금기를 낭만적으로 재현하고 있는데 대형 스케일의 시대극 촬영현장뿐만 아니라 수중발레와 탭댄스 뮤지컬 장면까지 삽입돼 볼거리도 풍부하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출한 편이다.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사 캐피톨 픽처스의 책임 프로듀서 에디 매닉스(조쉬 브롤린)는 시나리오 검토부터 배우들의 스캔들 관리까지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모든 일을 관리하고 있다. 어느날 공산주의자들이 톱스타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을 촬영장에서 납치하고 매닉스는 이를 해결하는 와중에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헤일, 시저!>를 끌고 가는 두 축은 ‘향수’와 ‘소동극’이다. 그동안 코엔 형제 영화는 마냥 웃기도, 그렇다고 울기도 애매한 블랙코미디가 많았는데 이 영화는 무게감을 쫙 빼 비교적 가벼운 편이다. <아리조나 유괴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한 편의 납치소동극이면서 순진한 사람들이 북적북적한다는 점에서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와도 닮았다.


하지만 아무리 가볍고 향수를 자극한다고해도 지식인과 사회 시스템에 시니컬한 코엔 형제 특유의 뉘앙스는 여전히 영화 속에 살아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세 장면을 하나씩 살펴보자. (스포일러 있습니다.)



1. 공산주의든 기독교든 부족한 건 믿음이다


영화 속에 토론하는 장면이 두 번 나온다. 하나는 매닉스가 4대 종교인들을 불러놓고 영화에 관해 토론하는 장면이고, 또 하나는 휘트록이 자신을 납치한 공산주의자들과 토론하는 장면이다.


장면 1: 매닉스는 로마시대 예수가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나리오에 대해 종교인들의 의견을 구하려 하지만 한자리에 모인 4대 종단 지도자들은 예수가 신의 아들인지 아닌지에 대해 그들끼리도 의견이 맞지 않는다. 결국 매닉스는 그 자리에서 벌어진 이들의 난상토론을 막아야만 한다.


장면 2: 휘트록은 납치된 저택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설득당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납치범답지 않게 품위 있는 태도와 어투로 그를 협박하며 그들의 이상을 설파한다. 휘트록은 거의 자발적으로 그곳에 머물러 있다가 빠져나온다. 납치범에게 동조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이지만 "중요한 건 메시지보다 태도"라는 것을 설파하는 장면이다. 매닉스를 만난 휘트록은 공산주의의 위대함을 설파하지만 곧바로 멱살을 잡힌다. 공교롭게도 매닉스의 영화사 이름은 로마시대 신전이자 수도를 뜻하는 ‘캐피톨(Capitol)’로 마르크스의 유명한 저서 ‘Kapital(자본)’과 발음이 비슷하다.



코엔 형제 특유의 익살로 그려진 종교인들과 공산주의자들은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당인 인물들이다. 종교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자신이 맞다며 싸우고, 똑똑해 보였던 공산주의자들은 납치 댓가로 받은 거액을 그들의 이상향인 소련을 향해 바치다가 결국 돈을 바다에 떨어뜨리고 만다.


다시 촬영장에 선 휘트록은 세트장의 예수 앞에서 열연을 펼치다가 그만 ‘믿음’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린다. 공산주의든 기독교든 결국 ‘믿음’이 문제다. 뜻은 좋지만 믿음이 부족해 변질되고 만다. 반면 자본주의가 번창하는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돈에 대한 믿음이 투철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2. 어려운 일과 쉬운 일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땐 옳은 일을 하라


매닉스는 자주 고해성사를 한다. 그는 영화 첫 장면에서 금연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고백한다. 금연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지키기 쉽지 않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는 금연에 실패하는 듯 보였지만 영화의 중반부에 담배를 거부한다. 록히드 마틴에서 스카웃 제의를 해올 때 담배를 끊었다고 말하며 받지 않는다.



10년 동안 고용보장이라는 탐나는 제안을 앞에 두고 매닉스는 고민한다. 지금처럼 매일 새벽 5시부터 바람잘 날 없는 할리우드를 관리하는 일을 해야하는지 혹은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전투기를 만드는 군수산업체로 이직해야 하는지. 그는 다시 한 번 고해성사를 하고 신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일을 하세요.”


군수산업체는 안정적이고 짭짤한 직장이지만 회사에서 만드는 제품은 전쟁을 유발한다. 그래서 비도덕적이다. 반면 할리우드는 쉴새없이 바쁘고 골칫거리 투성이지만 결과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혹시 지금 어떤 직업을 택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매닉스의 고민을 되새겨 보면 좋겠다.



3. 결국 성실한 사람이 해결한다


코엔 형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설정 중 하나는 초반부에 무시당하고 바보라고 느껴졌던 사람이 결국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호비 도일(엘든 이렌리치)은 스턴트가 강점인 액션 스타지만 막상 정극 영화에서는 뻣뻣하게 굳어서 대사도 잘 발음하지 못한다. 감독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장면에선 지능이 낮은 것이 아닐지 의심될 정도다. 감독 로렌스 로렌츠(랄프 파인즈)는 매닉스에게 찾아가 당장 배우를 바꿔달라고 요청하지만 매닉스는 도일은 열심히 하는 배우이니 금세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도일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순수함이 매력적인 배우이고 나중에 휘트록 납치사건을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매닉스는 편집감독 C.C. 칼훈의 작업실에서 로렌츠 감독 영화의 편집본을 확인하는데 그속에서 도일은 나쁘지 않은 정극 연기를 하고 있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코엔 형제가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을 설정할 때 참고했을 만한 실제 인물을 소개한다.


캐피톨 픽처스 = MGM 스튜디오(<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랑은 비를 타고> 제작)


에디 매닉스(조쉬 브롤린) = 에드가 조셉 매닉스(MGM 스튜디오 대표)


베어드 휘트록 = 찰턴 헤스턴(<벤허>)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 = 찰턴 헤스턴(<벤허>), 커크 더글러스(<스팔타커스>), 로버트 테일러(<쿼바디스>)


디에나 모란 = 에스더 윌리암스(<백만달러 인어>)


디에나 모란(스칼렛 요한슨) = 에스더 윌리암스(<백만달러 인어>)


버트 커니 = 진 켈리(<닻을 올려>)


버트 커니(채닝 테이텀) = 진 켈리(<닻을 올려> <춤추는 대뉴욕>)


로렌스 로렌츠(랄프 파인즈) = 머빈 르로이(<백만달러의 인어> <쿼바디스>)


호비 도일 = 로이 로저스(<아리조나 키드>)


호비 도일(앨든 이렌리치) = 로이 로저스(<아리조나 키드>)


쏘라 데커 & 테살리 데커 자매(틸다 스윈튼) = 헤다 호퍼, 루엘라 파슨즈(가십 칼럼니스트 라이벌)


C.C 칼훈(프랜시스 맥도먼드) = 블랑쉐 시웰(MGM 편집감독)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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