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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 날 7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그러나 관객 수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영화를 미리 본 기자나 평론가들의 평이 호평 일색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배트맨 대 슈퍼맨>보다 슈퍼히어로끼리 싸우는 이유가 더 명백하긴 합니다만, 저는 오십보 백보 정도로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들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팀 캡틴 아메리카


1. 캐릭터들이 조화를 이룬 영화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수많은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도 조화를 이뤄 어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치 걸그룹에서 비주얼 담당, 노래 담당, 춤 담당이 따로 있듯 '어벤져스'에서도 각각의 캐릭터들이 제각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이를 잘 살렸습니다. 팀 캡틴 아메리카와 팀 아이언맨으로 나눠 보면 맡은 역할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윈터솔저' 반즈와 '워머신' 로드가 불구가 되는 리더의 절친이고, '스칼렛 위치' 완다와 '블랙 위도우' 나타샤는 홍일점이며, 앤트맨과 스파이더맨이 개성파 이방인으로 짝을 이룹니다. 모두 이전 마블 시리즈에서 제각각 주연을 맡았던 캐릭터들이 이 영화에선 새로운 매력을 뽐내면서도 중구난방이 아닌 팀의 일원처럼 보이게 만든 것은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의 공입니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은 캐릭터의 조화는 공항 액션 신에서 그 진가를 멋지게 발휘합니다. 그러나 칭찬은 여기까지입니다.



2. 깊이가 부족한 내전의 이유


<배트맨 대 슈퍼맨> 만큼이나 이 영화도 대결의 이유가 중요했습니다. 슈퍼히어로들끼리 대체 왜 싸우는지 납득할 수 없다면 영화의 컨셉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싸우는 이유를 설득하지 못했던 <배트맨 대 슈퍼맨>과 달리 다행히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조금 더 명분이 있습니다. UN이 팀 어벤져스를 통제하게 둘 것이냐 말 것이냐는 충분히 의견이 갈릴 수 있는 사안이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그 깊이입니다.


영화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모호하게 처리하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이것이 왜 둘이 싸워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인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아이언맨이 한 아이 때문에 통제받는 쪽에 서는 것을 선택하는 과정은 너무 단순해서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분명히 더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두 사람이 더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어야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제어받는 것과 독립 단체로 활동하는 것의 차이점을 깊이 있게 비교했어야 했습니다. 특히 UN 같은 비교적 편파적이지 않은 기구라고 할지라도 간섭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설명했어야죠. 하지만 영화는 이를 모두 생략하고 갈라진 두 리더가 팀원을 모으는 캐릭터 소개의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팀 아이언맨


3. 허무한 시베리아 윈터솔저


영화에서 가장 허무한 장면은 아마도 마지막 시베리아 장면일 것입니다. 가공할 만한 위력의 또다른 윈터솔저가 나올 것을 기대했던 관객은 <배트맨 대 슈퍼맨>의 결정적 장면과 별로 다르지 않은 느낌을 주는 숨겨둔 비디오를 보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듯 내전의 이유가 두루뭉술해 아쉬운데 영화는 어벤져스를 갈라놓은 것은 지모라는 남자의 계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991년 암호같은 주술문을 반복하며 잔뜩 기대하게 했던 시베리아 클라이막스를 이렇게 끝내는 것은 지나치게 허무합니다.



4. 캐릭터를 얻고 존재의 이유를 잃다


총평하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다양한 종류의 마블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의 재간과 능력을 보는 재미는 갖춘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내전의 이유를 깊이있게 만들어놓지 않은 것입니다. UN에서 '소코비아 협정'을 맺어 슈퍼히어로를 통제한다는 아이디어는 현대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줄 수 있었습니다.


'팀 어벤져스'는 돌연변이들의 집단인 '엑스맨'과 달리 다양한 형태의 캐릭터들이 섞여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나 헐크처럼 유전자 조작 히어로도 있고, 아이언맨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사이보그도 있으며, 스칼렛 위치 같은 돌연변이도 있고, 비전 같은 인공지능 로봇도 있습니다. 단순히 허구의 캐릭터로 여기기엔 현대 기술의 발전이 매우 빠릅니다. 따라서 이들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1991년, 현재, 라고스, 비엔나, 베를린 등 다양한 현존 시대와 지명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이 영화를 실제가 아닌 허구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계속될 마블 2기 유니버스에서 슈퍼히어로들의 존재 이유를 만들어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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