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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상반기는 할리우드에 안방을 내준 시기였다. 한국영화의 품질은 갈수록 떨어졌고 그 자리를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들이 채웠다. 한국영화로선 보수층을 노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40대 남자배우들 대신 20대 남자 배우들이 전면에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2015년 상반기를 마감하면서 한국 영화시장의 다섯 가지 포인트를 짚어본다.





1. 진격의 할리우드 ... 최악의 한국영화


7년 만이다. 2008년 이후 7년 만에 한국영화는 미국영화에 1위 자리를 내줬다. 물론 아직 후반전이 남아 있으니 부지런히 쫓아가면 뒤집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전반전에 한국영화와 미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42.5% 대 51.8%로 벌어졌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참조) 42.5%는 지난 12년래 최악의 수치인데 더 암울한 것은 작년 12월에 개봉해 1월로 넘어온 <국제시장>의 관객 890만 명을 제외하면 이 수치가 33%로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한국영화 흥행작은 <조선명탐점: 사라진 놉의 딸>(380만 명), <스물>(300만 명), <극비수사>(240만 명), <강남 1970>(220만 명) 등으로 여기에 <오늘의 연애>(180만 명), <차이나타운>(140만 명) 등 2편을 포함한 6편만이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이에 반해 할리우드 영화는 매달 한 편씩 흥행작을 내놓았다. 1월 <빅히어로>, 2월 <킹스맨>, 3월 <분노의 질주>, 4월 <어벤져스 2>, 5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6월 <쥬라기월드>가 슬리퍼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어벤져스 2>는 역대 외화중 네 번째 1천만 관객 영화로 등극했다.


한국영화가 후반전에 대역전을 이루려면 가장 큰 대목인 여름 시장을 노려야 한다. 작년에도 초반에 부진하던 한국영화가 <명량> 한 편으로 분위기를 바꾼 전례가 있다. 올해는 최동훈 감독의 <암살>과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대기중이다. 그러나 할리우드 역시 하반기에도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를 시작으로 만만치 않은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어 과연 반격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 국제시장, 연평해전 ... 보수 영화의 흥행


시작은 작년말 <국제시장>이었다. 한 보수신문이 이 영화에 대한 보도를 이례적으로 쏟아내면서 영화의 흥행에 불을 지폈다. 올해 6월엔 다시 한 번 <연평해전>으로 비슷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근원을 파헤쳐보면 2013년 <변호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노무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자 영화의 힘을 실감한 사람들이 보수적인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변호인>의 투자사와 배급사는 이 영화에 투자하고 배급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정권의 눈치를 봐야 했는데 한 투자사는 아예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이 투자사는 이름을 바꾼 것이 <변호인> 때문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굳이 이름을 바꿀 이유도 없었다는 점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여기에 한국사회의 고령화로 영화시장의 관객이 중장년층으로 이동한 것도 두 영화의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한국영화의 흥행이 보수적인 애국심 정서에 기댄 것은 최근만의 현상은 아니다. <쉬리> 이후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 2000년대 초반 거의 모든 대작 영화는 애국심을 강조해 흥행몰이를 했다. 그러나 당시 애국심 마케팅이 영화계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면 최근 <국제시장>과 <연평해전>은 영화계 밖의 바람에 의해 흥행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3. 간신, 순수의 시대 ... 수명 다한 조선시대 사극


작년 여름까진 사극의 전성기가 계속될 것 같았다. <군도>에 이어 <명량>이 울돌목에서 사상 최대의 회오리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극 퇴조의 조짐은 작년 말에 개봉한 <상의원>에서 시작됐다. 고수와 박신혜가 주연한 이 팩션 사극은 힘도 써보지 못하고 쓸쓸하게 극장에서 퇴장해야 했다. 제작자 입장에선 <관상>과 별다르지 않은 스토리의 이 영화가 실패한 것이 의아했겠지만 관객은 이미 반복되는 엇비슷한 이야기에 질린 것이다.


올해 상반기엔 세 편의 조선시대 사극이 나왔는데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만 전편의 인기에 힘입어 체면치레를 했을 뿐 나머지 두 편은 민망한 평가를 받으며 사라졌다. 특히 <순수의 시대>와 <간신>은 어디서 본 것 같은 뻔한 이야기에 잔인하고 야한 장면만 노골적으로 반복해 보여줘 극장 관객보다는 VOD 시장을 노리고 있음을 분명히했다.


조선시대 사극의 수명이 다한 것을 확인한 한국영화는 올해 하반기엔 <암살>, <대호>, <아가씨> 등 일제 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쏟아낼 예정인데 신선함을 어느 정도로 끌어올릴지가 관건이다.




4. 김우빈, 이민호, 준호, 강하늘, 박서준, 변요한 ... 20대 남자배우 전성시대


송강호도, 설경구도, 최민식도 없던 상반기 한국영화에 20대 남자 배우들이 빛났다. <스물>의 김우빈(25)은 <친구 2>, <기술자들>에 이어 흥행불패의 기록을 이어갔다. 작년 드라마 <미생>으로 존재감을 알린 강하늘(25)은 <스물>, <순수의 시대>, <쎄시봉> 등 세 편이나 출연해 활동영역을 넓혔다. 또 <스물>의 준호(25) 역시 작년 <감시자들>에 이어 흥행 2연타로 이제 2PM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도 될만큼 성장했다.


이미 빅스타인 이민호(28)와 이승기(28)는 뒤늦게 스크린에 데뷔해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한국형 강남개발 조폭드라마인 <강남 1970>은 이민호의 열연 덕분에 중국에 고가에 판매되기도 했다. 이승기는 무난한 로맨틱코미디 영화 <오늘의 연애>에서 본인의 장기를 살린 호구형 남자친구로 분해 여성팬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연기력으로 주목받은 20대도 있다. <악의 연대기>의 막내 형사 박서준(26)은 깜짝 놀랄만한 반전 활약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8월 개봉하는 <뷰티 인사이드>에도 출연한다. <미생>의 스타 변요한(29)은 독립영화계의 저력을 보여준 <소셜포비아>가 뒤늦게 개봉하며 자신이 독립영화계 스타 출신임을 증명했다. 상반기 한국영화의 발견인 이 영화에서 변요한은 일그러진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요즘 청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5. 미친 스승 위에 더 미친 제자 ... 위플래쉬 열풍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올해 상반기 다양성영화 순위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위플래쉬>는 한국사회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미친 스승과 더 미친 제자의 광기어린 음악수업을 담은 이 영화는 음악영화로서의 재미뿐만 아니라 획일화된 한국 교육과의 비교, 재능과 열정, 강압적인 리더십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내며 입소문의 힘으로 대박을 쳤다.


이 영화의 수입사인 미로비젼은 6천만원에 영화를 구입했는데 극장 매출만 126억원을 올려 그동안 밀린 빚을 다 갚았다. 이 영화의 초대박 이후 올해 칸 영화제 마켓에는 로또를 꿈꾸는 한국의 영화수입업자들이 몰려들어 예술영화들을 웃돈을 주고 싹쓸이해가는 진풍경까지 벌어졌다. 그 영화들이 하나씩 풀릴 올해 하반기에 과연 또다른 <위플래쉬>가 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위플래쉬>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다양성영화 시장의 규모는 작년에 비해 줄어들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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