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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과 <소수의견>의 대결은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영화계 보혁대결의 구도였지만 관객 입장에선 국가의 역할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한 두 영화를 비교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개봉을 해보니 두 영화의 흥행은 극과 극으로 갈렸습니다. <연평해전>은 개봉 4일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질주하고 있는데 반해 <소수의견>은 이제 막 20만 명을 넘겼을 뿐입니다. 두 영화의 흥행성적이 작품의 완성도나 관객의 호불호에 따라 즉, 시장 논리에 따라 갈린 것이라면 이 글은 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최근 갈수록 한국영화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영화계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느끼는 전반적인 분위기입니다. 고만고만한 줄거리에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반복되거나 VOD에서 흥행을 노린 여배우 노출 경쟁으로 정작 영화는 산으로 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한국영화계에 모처럼 신선한 영화가 찾아왔습니다. <소수의견>은 지금까지 법정영화 중 가장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평론가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본 관객들 역시 호평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양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평점 9.1, 다음 평점 8.7로 다른 영화에 비해 압도적입니다. 물론 관객의 평점이 흥행을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의 반응은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것이니까요. 그러나 <소수의견>은 더 악조건 속에 놓여 있습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영화를 막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 한국의 극장가에는 유령이 떠돌고 있습니다. <소수의견> 정도 규모의 상업영화는 몰아내도 끄떡없다고 생각할 만큼의 힘센 유령입니다. 영화 예매를 하기 위해 극장을 검색해보면 <소수의견>을 상영하는 곳을 찾기 힘듭니다. 늦은 밤시간대이거나 다른 영화와 함께 퐁당퐁당 상영하는 곳이 많아 원하는 시간대에 영화를 보기 힘듭니다. 좋은 시간대는 대부분 <연평해전>의 차지입니다.


극장들은 보수언론과 정권의 집중 지원을 등에 업은 <연평해전>에 스크린을 몰아주고 있습니다. 개봉 5일째인 지난 28일에는 극장 좌석을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데도 천만 영화들만 가능하다는 1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밀어줘 독과점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지 같은 시기에 개봉했다는 이유로 다른 영화들이 희생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더구나 <소수의견>은 CJ가 배급을 포기할 정도로 개봉 전부터 정치적 논란에 휘말린 영화입니다. <연평해전>과 <소수의견> 중 선택을 해야 하는 극장들이 눈치를 보며 자발적으로 <소수의견>을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에 대해 최광희 평론가는 대기업 계열 극장은 물론 개인 극장주들도 부담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어쩌다 한국영화계가 영화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흥행이 좌우되는 시장이 됐나요?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지 못하고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만 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23년 전 우리는 창작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검열을 철폐했고 그 결과 한국영화는 한동안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들을 양산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영화는 비슷한 영화들을 찍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잘 만든 영화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찍어내리기에 급급한 환경으로 타락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앞으로 과연 누가 과감한 창작 시도를 할 수 있을까요? 한국영화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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