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는 '요즘 아이들'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누구나 한때 요즘 아이들인 적이 있으니까.

또 나는 느린 움직임을 싫어한다. 안정적인 것은 참을 수 없다. 나는 항상 진보적인 것이 좋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매혹되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향해 비웃고 비아냥거리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이런 비슷한 말을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했는데 사실 나도 그렇다.


<소셜포비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는 "에고는 강한데 에고를 지탱할 알맹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따라붙는 대사는 "요즘 아이들 다 똑같죠"였다.

이 대사가 좋았던 이유는 아이들이란 그래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에고가 약하거나 혹은 강한 에고를 지탱할 알맹이까지 지니고 있다면 더 이상 아이들이라고 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김연아나 아이유 같은 아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어쩌다 한두 명 나올까 말까한 엄청난 멘탈의 소유자들이다.

세상이 김연아나 아이유로 넘쳐나면 갑갑해서 살 수가 없을 것이다.


<소셜포비아>는 SNS 세상을 그린다.

그러나 'SNS의 폐혜'라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 SNS 악플러들이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망치는 지를 볼 것이고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 자기가 만든 덫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볼 것이다.

전자로 보면 사회고발 영화이고 후자로 보면 미스터리 스릴러다.


나는 후자로 보는 걸 더 선호한다.

전자로 보기 시작하면 이 영화는 소위 '꼰대'의 시선에서 "그러니까 악플 달지 말란 말이야"로 귀결될 뿐이다.

하지만 악플도 인간의 본성이다. 성욕, 식욕처럼 익명성 뒤에 숨어서 누군가를 욕하고 싶은 것도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인간은 태생부터 사회적 동물이었고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살아왔다.

그게 우리를 '호모 어쩌구쿠스'로 부르는 이유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이 묵묵히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을 우리는 외톨이라고 부른다.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을 욕할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그걸 쟁취해내려 역사 속 선조들은 수많은 피를 흘렸다.



그러니 <소셜포비아>를 미스터리로만 바라보자.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지웅(변요한)과 용민(이주승)은 키보드워리어인 레나와 '현피'를 뜨려는 BJ 양게(류준열)와 함께 레나의 집을 찾아갔다가 목 메단 채 죽어 있는 레나를 발견한다. 이 과정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면서 이들은 곤경에 처하는데 용민은 레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의심하며 범인을 찾아나선다.


미스터리 영화의 구조로 보자면 <소셜포비아>의 구성은 최초의 목격자 중 누가 범인일까를 추적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인물들에 한 명씩 초점이 맞춰지고 그들의 사연이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번 반전이 이루어지는데 안타깝게도 그 과정이 매끄럽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여러가지 디테일들이 핍진성을 이끌어내 계속해서 영화에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력은 괜찮다.


특히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말을 하지 않고도 포스트잇을 통해 구체성을 전달하는 장면들이었다. 인터넷 화면을 보여주는 것은 이제 조금 식상해서 눈길이 가지 않았는데 오히려 포스트잇은 물질성을 띄고 있어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이 장면들은 시끌법썩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전혀 요란하지 않은 영화의 분위기와도 잘 맞았다.


영화의 초반에 이런 대사가 있다. '현피'를 뜨러 PC방에 모인 BJ 양게 일행에 합류한 지웅이 용민에게 이렇게 묻는다.

"다들 이렇게 채팅만 하고 있는 거야?"

그러자 용민이 대답한다.

"그럼 뭐 다같이 자기소개라도 할까?"

이 장면은 익명성이란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줬다.

그들이 만나서 영화에서처럼 살인 같은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소한 일들이다.

사소함 속에서 익명성은 숨어서 웃고 떠들고 자기들끼리 흉보고 왕따시킨다. 사람이니까 그렇다.



<소셜포비아>는 홍석재 감독의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이다.

<파수꾼> <짐승의 끝> <잉투기> <들개> 등 선배들의 명성에 버금가는 작품을 내놓았다.

특히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 계속 보게 만드는 능력은 상업영화에서도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유에프오>의 주인공이었던 이주승은 <소셜포비아>에서도 연기를 참 잘한다.

<파수꾼>의 이제훈을 연상시키는 장면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변요한은 관찰자 배역의 한계 탓인지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다.


레나 혹은 베카 역의 소녀 역을 맡은 하윤경의 얼굴도 좋았다.

기존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마스크였다.

조만간 다른 영화에서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