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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니콜 키드만)은 화장실에서 셀프카메라(셀카)를 찍는 중이다. 화면 가득히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 그녀는 카메라에 대고 자신의 이름과 장소,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이 알게 된 것들을 이야기한다. 내일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될 자신을 위해 남기는 기록이다.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구는 의심스러운지를 말해둠으로서 오늘의 기억을 내일까지 연장하려 한다.


그녀에게 셀카는 세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외장형 메모리카드다. 내장형 메모리카드인 두뇌가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기 때문에 그녀가 믿을 것은 외장형 메모리카드로서의 셀카 밖에 없다. 둘째, 존재했었음의 증명이다. 자고 일어나면 20대 시절의 기억 밖에 남아 있지 않은 40세의 그녀는 어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 한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그녀에게 셀카는 자신의 존재 증명 그 자체다. 셋째, 사라질 위협이다. 그녀는 다음날 셀카를 확인함으로서 누가 믿을 만하고 누가 적인지 판단한다. 그러나 셀카가 지워지면 그녀의 판단 기준도 사라진다. 그녀는 위기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셀카에 의존해야만 한다.


우선 첫 번째 기능부터 살펴보자. 앙리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에서 모든 이마주들은 기억을 지각하는 과정에서 구체화되는 도구라고 봤다. 지각과 기억은 원뿔 모양으로 공존한다. 즉, 현재적 지각이 기억의 깊이에 따라 고무풍선처럼 늘었다가 줄었다가 하면서 원뿔 모양을 만든다는 것이다. 현대로 넘어오면 베르그송의 원뿔 모형은 가상현실과 통한다. 하나의 지각이 과거의 여러 기억들을 끄집어내는데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선형태를 그리며 증폭된다. 이 영화에서 셀카의 이미지 역시 눈으로 보는 행위 자체가 과거의 기억을 하나씩 불러내는 기능을 한다. 외장형 메모리카드를 컴퓨터에 꽂으면 메모리의 확장 역할을 하는데 단지 하나의 파일을 불러내는 것 뿐만 아니라 컴퓨터의 메인보드와 소통하면서 내장형 메모리카드에서 쓰지 않던 기능이 활성화되기도 한다. 영화 속 셀카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제 찍은 셀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전혀 기억해내지 못했던 빨간 머리의 친구 클레어를 떠올리고, 머리를 가격당하던 순간의 남자 얼굴과 자신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낸다.



두 번째 기능인 '존재했었음'은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에서 멋지게 설명한 바 있다. 바르트에 따르면 사진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증언하는 기능을 한다. 이는 언어와 회화가 할 수 없거나 혹은 아주 공들여야 겨우 해낼 수 있는 것인데 사진은 셔터 한 번으로 할 수 있다. 글이나 그림을 볼 때보다 사진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진실하다고 믿는데 저항이 덜하다. 영화 속에서 크리스틴은 셀카를 찍고 보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한다. 그녀 자신은 아침에 일어나서 자신이 누구이고 여기가 어디인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카메라에 담긴 셀카를 찾은 뒤부터는 비로소 자신이 어제 이곳에 존재했었음을 믿기 시작한다. 이런 존재증명 기능은 그녀의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벤(콜린 퍼스)이 말과 글로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에게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침대에 같이 누워 있던 낯선 남자보다는 어제 찍은 셀카가 그녀에게는 더욱 진실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셀카는 화면에 보이는 것 외의 세상은 보여주지 않는다. 셀카에는 그녀의 얼굴만이 담겨 있다. 바르트는 이에 대해 사진은 드러냄을 통해서가 아니라 감춤을 통해 진실함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셀카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존재에 대해 더 믿음을 준다는 것이다.



세 번째 기능인 사라질 위협을 이야기 하기 전에 레지 드브레를 인용하자. 그는 [이미지의 삶과 죽음]에서 "덧없는 것에 대한 고뇌가 없다면 기억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라질 위협에 처해 있는 것들을 사진과 영화에 담는다"고 했다. 이미지는 죽음에 대항하는 시위이자 시간을 늘리는 도구다. 이미지가 탄생한 것은 인간이 죽음을 인지한 이후 기존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한 뒤부터다. 크리스틴이 셀카에 찍히는 순간 셀카 속의 그녀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늘과 다른 기억을 갖고 있던 어제의 또다른 그녀다. 스스로를 기억하지 못 하는 인간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하다. 따라서 어제의 그녀는 이미 죽었다. 상징적으로도 죽었고 실제로도 이미지 속에서 죽어 있다. 영화 속 기억이 사라진 그녀라는 설정은 '사진이 곧 죽음'이라는 명제를 다분히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크리스틴은 누구를 믿어야 할지 불안해 하며 셀카를 찍는다. 셀카 속에서 믿음의 대상은 그녀가 얻은 정보에 따라 바뀐다. 수잔 손택은 [사진론]에서 "사진은 이해하지 못해 불안해하는 공간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그러나 그 소유는 시간이라는 죽음의 신 앞에서 무력하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언젠가 죽어야 할 운명을 기록하는 것이다. 셀카는 그것을 자기 스스로 하는 자살행위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불가항력적인 소멸의 흐름 속에서 사진은 덧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잠깐 동안 붙잡고는 영영 놓아준다. 영화는 후반부에 반전을 통해 크리스틴이 일시적으로 붙잡은 셀카 속 기억이 되레 그녀 자신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스릴러로 보여준다. 이처럼 기억을 셀카에 의존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증명할 수는 있어도 죽음을 회피하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 한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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