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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시온은 만드는 영화마다 극단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일본 감독이다. 그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돈키호테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과 그 뒤에 감춰진 섬뜩한 아이디어를 칭송하거나 혹은 잔인하고 변태 같은 취향을 거부하는 것으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적어도 소노 시온 영화에 `그럭저럭' 같은 반응은 나올 수 없다. 2006년 <기묘한 서커스>를 시작으로 국내에서 몇 편 개봉했으나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유수의 영화제에선 만드는 영화마다 초청받고 관객상을 받아간다.


지하철에서 54명의 여고생이 집단자살하는 <자살클럽>, 아버지가 딸을 첼로 가방에 집어 넣고 성교 장면을 훔쳐보도록 강요하는 <기묘한 서커스>, 무예하듯 몸을 날리며 여자 치마 속을 촬영하는 변태 이야기 <러브 익스포져>, 대형 물고기 가게를 운영하는 싸이코패스 살인마가 등장하는 <차가운 열대어> 등 하나같이 마음을 굳게 먹지 않으면 두 눈 뜨고 똑똑히 보기 힘든 영화들이다. 그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참사가 터지자 이를 배경으로 <두더지>와 <희망의 나라>를 만들기도 했는데 비교적 평온한 이 영화들 역시 참사 이후 일본의 사회상을 삐딱하게 그린다.


올해 53세인 소노 시온의 최근 영화들은 과거에 비해 많이 코믹해지고 스케일도 커졌다. 화려한 화면과 유머 속에 B급 정서를 녹여내는데 `똘끼'는 그대로지만 다작으로 관록이 쌓이면서 녹록치 않은 연출 실력까지 갖췄다. <지옥이 뭐가 나빠>와 <도쿄 트라이브>는 각각 작년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열광적 반응을 얻은 작품으로 그중 <지옥이 뭐가 나빠>가 13일 개봉한다.



액션 영화에 미친 청년이 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하게 영화에 미친 세 친구와 영화클럽 `Fuck Bombers'를 결성한다. 이들의 모토는 죽기 전에 세상을 바꿀 위대한 액션영화를 만드는 것. 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종횡무진하며 액션영화를 찍는다.


한편 야쿠자 두목 무토는 10년 전 수감된 부인이 출소할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조직을 위해 `독고다이'로 칼을 들었던 부인의 소원은 어릴 때 광고 모델이었던 딸 미츠코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에 무토는 부인을 위해 딸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을 것을 결심한다. 야쿠자들은 촬영 스태프와 음향 스태프의 역할을 맡아 영화제작에 나선다. 그런데 문제는 감독이 없다는 것. 이 과정에서 10년 동안 영화에 미쳐 살던 청년이 드디어 감독을 맡게 되는데 그는 원수 지간이던 두 야쿠자 조직의 실제 살육전을 영화 속에 담기로 한다.



다음 장면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감독이 "레디, 액션"을 외치자 <킬빌>의 액션을 능가하는 살육전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사무라이 검에 팔이 잘리고 피가 솟구친다. 야쿠자들은 검을 휘두르면서도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영화인지 실제 전투인지 헷갈리는 상황 속에서 화면은 핏빛으로 물든다. 애초 리허설은 불가능하고 NG도 존재할 수 없다. 멈추고 다시 할 수도 없다. 감독은 피로 흥건한 살육전의 한가운데서 모니터로 리얼한 영상을 바라보며 희희낙락한다. 그에겐 죽어나가는 주위 사람들보다 드디어 위대한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성취감이 더 크다. 바로 이 지점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영화에 미친 남자의 광기를 통해 인간의 뒤틀린 욕망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모든 장면을 정색하고 찍었다면 <지옥이 뭐가 나빠>는 보는 것이 고역인 슬래셔 무비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발랄한 코믹함을 잃지 않는다. 깔깔거리며 보다가 움찔해지는 그런 영화다.


영화의 영어 제목인 "지옥에서도 연기하지 그래?(Why don't you play in hell?)"는 어디에서나 카메라를 들이대며 `리얼리티'에 집착하는 요즘 현실을 꼬집는 문장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상대편 야쿠자 두목 기타가와는 진짜 싸움을 영화로 찍겠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리얼리즘, 놈들은 판타스틱이라 우리가 불리해" 라고 말하는데 이는 영화의 탄생부터 나뉜 두 축인 리얼리즘과 판타지의 대립에 대한 코믹한 은유다. `영화 속 영화'라는 설정을 통해 판타지 안에 리얼리티를 우겨넣으려는 시도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각인시켜주는 것이다. 007 주제곡을 패러디한 음악으로 시작해 이소룡의 노란색 추리닝, <시네마천국> <샤이닝> <킬빌> 등 여러 영화들을 패러디한 장면들을 볼 수 있는 <지옥이 뭐가 나빠>는 한마디로 영화광들을 위한 `핏빛 시네마천국'이다.



소노 시온의 영화는 비슷한 감독을 찾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자극적 소재와 욕망 가득한 캐릭터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한국의 김기덕 감독을 떠오르게 하지만 김기덕 영화가 무거운 주제를 반복하며 강조하는데 반해 소노 시온은 주제를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장면들 속에 최대한 감춘다는 점에서 다르다. 상영시간 내내 웃다가 긴장하다가를 반복하다 보면 씁쓸한 현실을 돌아보게 되는 그런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지옥이 뭐가 나빠>는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기상천외한 B급 상상력을 맛보고 싶다면 놓쳐서는 안될 영화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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