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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떠오르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영화 속에서 루시드 카(데인 드한)가 앨런 긴즈버그(다니엘 래드클리프)에게 하는 말이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그것이 영감이고 문학이고 예술이며 곧 삶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라도 그래야만 한다. 규율 속에 갇혀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되지 않는 식으로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네모 반듯한 액자 속에 보이는 엇비슷한 졸업생처럼 되기 위해 그들을 흉내내야 하는 삶을 사느니 단 한 순간이라도 마음이 시키는대로 살 것이다. 학교에서는 글을 쓸 때 사적인 감정은 배제하라고 가르친다. 제목 그대로 '킬 유어 달링(Kill Your Darling)'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그것이 가장 좋은 글의 소재다. 왜 그런 삶을 실천하며 살지 않고 죽이려 하는가. 마음이 시키는대로 글을 써서 학교에 제출했는데 그것 때문에 퇴학이냐 글의 수정이냐를 결정해야 한다면 앨런은 주저하지 않고 퇴학당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획일화된 사회에 그 자신을 가두지 않을 것이다.


"이 동네가 그런 놈들 뿐이야

다들 고층빌딩에서 문장을 찍어내

진짜 작가들은 침대에 있거나

참호에 들어가 있거나 죄다 망가졌지"


영화 속에서 잭 케루악(잭 휴스턴)이 앨런에게 하는 말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후 복구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미국은 중산층이 급속하게 늘어나며 대량 소비 사회로 접어들었는데 이 시절의 깨어있는 청춘들은 사회의 경직된 획일성을 견딜 수 없었다.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에 환멸을 느끼며 등장한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영혼을 이어받았다는 의미에서 '비트 제너레이션'이라고 불렸는데,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며 물질의 풍요가 아닌 인간 정신의 회복을 주장했다. 1960년대 들어 미국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히피 문화의 선구자 격이다. 영화는 1956년 '울부짖음(Howl)'을 발표해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 시인이 된 앨런 긴즈버그, 1957년 7년간 미국 남서부, 멕시코와 지중해를 여행하고 [길위에서(On the Road)]를 펴내 센세이션을 일으킨 잭 케루악, 환각소설의 효시 [네이키드 런치(Naked Lunch)]로 평단을 발칵 뒤집은 윌리암 버로우즈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문학가들이 실제로 겪은 '의문의 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어떤 사랑은 가지게 되면 거부한다 해도 돌고 돌아 결국 나한테 온다."

루시드 카는 비트 제너레이션의 뮤즈였다. 그는 잭과 앨런, 그리고 데이빗 캐머러(마이클 C. 홀)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자극하는 마성의 매력을 지닌 남자였다. 그 자신은 창작을 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빼어난 선구안으로 예술이 나아갈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그는 신화 속 뮤즈의 역할이 그랬듯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욕구를 자극했지만 눈은 멀게 했다. 그는 암컷 사마귀를 닮았다. 암컷 사마귀는 수컷을 유인해 교미한 후 수컷의 머리를 뜯어먹는다. 교미가 끝나면 수컷 사마귀가 더이상 살아야 할 이유는 없기에 암컷은 후세를 위해 수컷을 영양분으로 섭취하는 것이다. 루시드는 결코 자신의 본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엔 차갑게 뒤돌아선다. 데이빗과 앨런은 루시드라는 치명적인 암컷 사마귀의 희생양들이다. 루시드를 자살 위기에서 구해주었던 데이빗은 수컷 사마귀처럼 루시드의 품에서 최후를 맞는다.

"한때 네가 원했던 것은 너의 것이 되고, 네가 그걸 내치려 하면 그것은 너에게 돌아가 너의 일부가 돼 너를 파괴할 것이다."

루시드는 자신을 스토킹하는 남자를 죽임으로서 사랑이 만들어놓은 고통스런 순환고리를 파괴하려 했다. 여기서 이 영화의 제목은 중의적으로 쓰였는데 두번째 '킬 유어 달링'은 운명의 고리를 스스로 끊고 자유를 얻는 과정에 대한 은유다. 그러나 루시드의 칼날은 결국 그 자신을 파괴하고 만다. '킬 유어 달링'을 통해 자유를 얻은 것은 루시드가 아니라 오히려 그의 주변에 있던 예술가들이었다. 그날의 '의문의 밤'은 앨런과 잭과 윌리엄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소재가 된다. 아버지의 후광에 가려 자신만의 글을 쓰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앨런은 비로소 비트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우뚝 선다.

"또 다른 사랑이 우주에 나타나며 순환은 깨진다. 하지만 죽음과 함께 또다른 태어남이 따라오니 모든 슬픔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 나는 시인이다."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존 크로키다스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따라가기에 친절한 작품은 아니다. 다소 산만한 구성으로 인물 사이의 관계를 느슨하게 그리는데 이야기의 핵심을 짚지 못하고 빙빙 돌아가는 것 같은 답답한 느낌이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그러나 1940년대 재즈와 브람스의 교향곡 등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을 따라 윌리엄 예이츠의 후예가 되고 싶어하는 문학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지켜보다 보면 지적 호기심이 발동한다.

부족한 연출력은 배우들의 연기가 채우고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영화의 화자로서 동성 친구에게 빠져드는 과정에서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작가이자 의사이면서 동시에 혁명가였던 남자로 분한 잭 휴스턴이 그 이미지 그대로 비트 제너레이션의 아이콘 잭 케루악을 연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배우는 루시드 카 역으로 다른 연기자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데인 드한일 것이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을 가진 위험한 청춘, 단 두 명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혁명가, 아르튀르 랭보가 되고 싶었지만 글쓰는 재주는 미처 갖추지 못한 불운의 천재를 눈빛 만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그는 과거 <토탈 이클립스>에서 랭보 역할을 맡았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떠오르게 하는데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해진다.

눈을 떠라, 여긴 이상한 나라가 아니다

네 영혼에서 자란 광기가 들린다

허나 너는 무지하고 고립돼 있어 다행이다

너 고통받은 자여, 숨은 사랑을 찾아라

베풀고 나누고 잃어라. 피지 못한 채 죽지 않도록


Be careful, you are not in Wonderland.

I’ve heard the strange madness long growing in your soul.

But you are fortunate in your ignorance, in your isolation.

You who have suffered, find where love hides.

Give, share, lose — lest we die, unbloomed.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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