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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뭐라 말하기 힘들다. 분명한 건 매력 있다. 넘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외피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이야기다. 재능 없는 남자가 재능 있는 남자를 만나서 질투한다. 선배 키보디스트 돈(스쿠트 맥네어리)은 그렇게 질투만 하다가 자살했다.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은 존(돔놀 글리슨)은 어느날 우연히 '소론프르프브스'라는 발음도 하기 힘든 밴드의 키보디스트가 된다. 팀의 리더인 프랭크(마이클 파스벤더)는 샤워할 때도 가면을 벗지 않는 남자다. 존은 이들의 음악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괴팍한 음악을 열정을 다해 연주하는 팀원들을 보며 이들의 일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1년 동안 산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존이 알게 된 것은 프랭크에겐 엄청난 음악적 재능이 있어서 음악을 처음부터 새롭게 정의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악기로 음악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프랭크에 비해 존이 가진 것은 어디서 들어보던 음악을 베끼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존은 유명해지고 싶었다. 프랭크의 연주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자 반응이 오기 시작한다. 급기야 텍사스의 SXSW 축제에서 초정장이 오고 존은 프랭크를 설득한다. 우리도 유명해질 수 있다고. 그러나 이들이 산을 나와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서부터 모든 상황은 바뀐다. 이들에게 세상은 산소 없는 화성 같은 곳이었다. 우주인처럼 가면을 쓰지 않으면 산소 결핍으로 죽게될 것이다.



프랭크가 가면을 벗지 않는 이유는 뭘까? 내성적이라 얼굴 마주보는 게 불편해서? 가면에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수시로 자신의 얼굴 표정을 말로 설명한다. 당황스런 찡그림, 환한 미소 등. 그러나 말로 하는 설명만으로 그의 진짜 표정을 알 수는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 가면의 존재가 불편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가면 속에서 오롯이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프랭크는 가면을 쓰고 있을 때 진짜 프랭크인 것이다. 그는 존을 처음 본 날 이렇게 말한다. "난 숨기는 게 제일 싫어. 숨길 게 뭐 있어." 가면을 쓴 자가 하는 말이라 더 의뭉스러운데 이 말의 비밀은 영화 후반부에 밝혀진다. 가면을 벗은 그에겐 음악적 재능이 사라지고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루저가 보일 뿐이다.


소론프르프브스 밴드는 프랭크를 중심으로 잘 어울렸다. 완벽하게 폐쇄된 시공간 속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새로운 우주처럼 보였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평생 갇혀 살다가 늙어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존이 합류하고 나서 이 밴드는 서서히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한다. 완벽했던 균형에 구멍이 뚫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들에겐 구력이 있다. 블랙홀을 경험한 후에도 다시 뭉치도록 만드는 엄청난 힘을 가진 구력이다. 애초에 그 구력의 중심엔 프랭크가 있었지만 블랙홀을 통과한 뒤에는 그 중심에 아무것도 없다. 진공상태다. 가면을 벗고 나타난 프랭크는 더 이상 중심이 아닌 독립적 멤버로 존재한다. 그 상태에서 새로운 균형이 맞춰진다.



재미있는 장면이 군데군데 있다. 특히 돈의 시신을 화장한 재를 사막에 뿌리는 장면. 짐짓 심각하게 돈을 추모하던 프랭크는 그가 뿌린 것이 돈의 시신이 아니라 그로우넛 밀가루임을 알게 되자 허탈해한다. 이 장면은 '진짜 같은 가짜' 혹은 '가짜여도 상관없는 가짜'에 대한 가장 상징적인 에피소드다. 또 대망의 SXSW 공연 중 존의 노래를 듣다가 쓰러진 프랭크가 하는 말 "노래가 너무 구려." 영화는 '솔직하다'라는 뜻의 <프랭크>라는 제목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진짜와 가짜, 솔직함과 거짓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재능이 없는 자는 재능이 없어서 괴롭고, 재능이 많은 자는 그 재능으로 인해 괴롭다. 존과 프랭크는 다른 방식으로 괴롭다. 괴롭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았다. 그래서 모두 사랑해야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드디어 가면을 벗은 프랭크는 "모두 사랑해"라고 노래한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밴드의 팀원들이 즉석에서 세션을 만들어 함께 연주한다. 마이클 파스벤더가 눈물을 흘리며 노래하는 이 장면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는 "크리스 시비의 아웃사이더 정신에 바친다"는 자막으로 끝맺는다. 크리스 시비(Chris Sievey)는 '프랭크 사이드바텀'이라는 이름으로 영화에서처럼 커다란 탈을 쓰고 공연하던 1970~80년대 영국의 뮤지션이자 코미디언이었다. 프랭크 사이드바텀의 가면은 막스 플레셔의 만화에서 영감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프랭크>의 각본을 쓴 존 론슨은 영화 속 존의 실제 모델로 크리스 시비 생전에 그와 함께 밴드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프랭크 ★★★★

솔직해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독창성을 끝까지 밀고 간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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