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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구를 찾아나선 한 인간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인터스텔라>는 거룩하면서 강렬한 주제를 품고 있는, 야심과 비전으로 가득한 영화입니다. 과학적으로 꼼꼼히 고증하려 웜홀 전문가인 물리학자 킵 손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대화 속에 과학용어를 많이 집어넣어 어떤 장면은 흡사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전체적인 얼개는 부성애를 중심으로 한 사랑과 인류애입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인간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문명을 이어나간다는 것이 이 영화의 메시지이죠. 그런데 스케일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논리적인 오류도 곳곳에 보입니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품었던 의문점 5가지를 적어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 이 글이 모바일 다음 톱 화면에 실린 뒤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로 여러분의 관점을 보여주세요.



1. 인간은 왜 기후를 지배하지 못할까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매튜 매커너히)가 우주로 떠나는 이유는 지구가 황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오존층이 파괴돼 자외선이 차단되지 않아 농작물도 자라지 못하고 심한 황사가 몰아쳐 먼지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식량인 옥수수도 멸종 위기에 처합니다. 그런데 영화 밖으로 나오면 현재 인간은 사막에 농작물을 심을 만큼 기후를 조절하는 기술을 향상시켜 가고 있는데 영화 속 인간은 왜 기후를 조절해서 그 상황을 타개하려 하지 않고 NASA를 동원해 우주를 개척하려고만 할까요? 떠나보낸 우주인을 기다리는 것보다 지구를 고쳐쓰는 게 훨씬 쉬워 보입니다.


2. 드론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영화 초반에 인도산 드론이 등장합니다. 태양열 에너지로 10년 간 떠돌아다녔다고 하죠. 꽤 비중 있게 등장했던 드론은 그러나 이후 사라져버립니다. 드론 에피소드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설명, 아버지의 과거 직업에 대한 유추에 도움이 됐지만 그걸로 끝내기엔 러닝타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3. 머피가 푼 유레카는 도대체 뭐였을까요?


성인이 된 머피(제시카 차스타인)는 블랙홀에 갇힌 아버지 쿠퍼의 도움으로 거대한 문제를 풀어냅니다. 머피는 "유레카"를 외치지만 영화는 그녀가 풀어낸 문제가 뭐였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머피의 스승인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는 중력이상에 관한 방정식을 풀었지만 응용에서 실패했다고 하죠. 그래서 이 부분을 풀기 위해 머피가 골몰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박사가 실패한 부분이 무엇인지, 머피가 연구하던 게 무엇인지 이론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중력방정식을 풀어서 플랜A가 가동하게 됐다" 이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전까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뉴턴의 제3법칙, 웜홀이론 등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던 영화가 갑자기 꿀먹은 벙어리가 됐는데 왜 이 부분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4. 우주로 나온 인류는 왜 에드문드 행성으로 가지 않을까요?


아멜라 박사(앤 해서웨이)는 홀로 에드문드 행성으로 향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가 된 머피는 쿠퍼를 만나 홀로 남은 아멜라를 만나라고 말합니다. 동면까지 취했다는 머피가 할머니가 될 정도니 머피와 쿠퍼가 블랙홀 속에서 교감을 나눈 날로부터 아무리 적어도 50년 이상의 시간은 흘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토성의 우주정거장까지 건설한 인류가 그동안 왜 에드문드 행성에 가지 않았을까요? 왜 아멜라는 쿠퍼가 찾아가기 전까지 홀로 남아 있을까요? 이상합니다.


5. 크리스토퍼 놀란 아닌 스필버그 영화 아닌가요?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과 인류애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영화 곳곳에 넘쳐 흐릅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게 크리스토퍼 놀란 영화 맞아?"였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찍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스필버그 영화처럼 보인다는 말은 대다수의 감독들에게 칭찬일 수 있겠지만 놀란에게는 칭찬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전혀 놀란 영화답지 않다는 말이거든요. <다크 나이트>와 <인셉션>의 패기는 어디로 갔나요? 영화는 블랙홀의 5차원 세계에서 머피의 책장으로 연결되는 순환구조를 만들기 위해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절대자를 등장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사랑이란 감정을 불필요하게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고 예측가능해서 놀란 특유의 배경과 설정으로 밀어붙이는 힘이 떨어집니다. 애초 감독이 스필버그였는데 영화의 각본을 쓴 놀란의 동생이 놀란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놀란은 조금 더 자신의 인장을 영화 속에 담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속에서 브랜드 박사가 낭송한 딜런 토마스의 시를 인용하려 합니다. 쿠퍼가 탄 우주선이 처음 우주로 나가면서 침묵의 소용돌이 속에서 브랜드 박사의 육성이 들리는 이 장면은, <인터스텔라>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우주와 아주 잘 어울리는 시입니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라

분노하고 분노하라, 사라져가는 빛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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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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