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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1시간은 아주 좋습니다. 장면 하나하나 공들여 찍은 티가 나고 인물들이 등장하는 타이밍도 적확합니다. 빨래질 당한 사장(이경영), 사장을 배신한 작은마담(박효주), 의외의 고수 우지연(이하늬), 능청스럽고 잔인한 장동식(곽도원), 필요한 때 나타난 허미나(신세경), 촉새에서 은둔 고수가 된 고광렬(유해진) 등 캐릭터들이 생동감 있고 무엇보다 함대길 역 최승현의 연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짜임새 있던 이야기가 삐딱해집니다. 실컷 공들여 탑을 쌓았는데 벽돌 한 개를 잘못 놓는 바람에 위태로워지는 형국이랄까요? 한 번 삐딱해지니 수습이 잘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한 곳에 모아놓고 마무리지으려고 하는데 억지스럽습니다.


대길과 미나는 우여곡절 끝에 탈출해서 공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미나는 스페인어로 청혼을 어떻게 하는지를 외우고 있었고요. 새로운 삶을 살아갈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대길은 장동식의 연락을 받고 작업하던 팀을 구하기 위해 돌아갑니다. 아주 중요한 장면이자 플롯 상의 터닝포인트인데 영화는 '의리'라는 한 단어로 퉁치고 넘어갑니다. 이곳이 바로 벽돌을 잘못 놓은 지점입니다. 고를 외치다 고박을 쓴 것처럼 그 뒤부터 영화는 추진력을 잃습니다.


미나가 갑자기 스턴트맨 같은 운전 솜씨를 발휘하고(나미의 '빙글빙글'이 흐르면서 이 장면은 명백하게 영화의 흐름을 끊습니다), 지연이 유령에게 속임수가 뻔한 박카스를 받아 마시며, 동식은 허술하게 버려진 쓰레기장에서 살아돌아옵니다.


마지막 장면은 아귀의 집인데 이 모든 일에 어떻게 아귀(김윤석)가 연결되는 것인지 영화는 개연성을 건너 뛰고 오래전에 예약해둔 것처럼 한 판 승부를 벌입니다. 그런데 그 승부에서 뭔가 새롭고 멋진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전작 <타짜>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아귀의 유명한 대사가 그대로 등장하거든요. "너는 나에게 구땡을 줬을 것이여. (중략) 이 패가 장땡이라는데 내 돈 전부와 내 목을 건다." 너무 똑같아서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 문장만 없습니다. 아무리 오마주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에서 쓰다니 맥이 빠집니다. 이렇게 똑같이 만들 거면 뭐하러 새로운 인물을 만드느라 공들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귀와 동식 모두 마지막 베팅에 목을 걸었습니다. 죽이거나 혹은 죽겠다고 각오한 겁니다. 노름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었잖아요. 전편에서 지리산 작두 고니는 손모가지를 건 아귀의 손을 잘랐습니다. 그런데 대길은 목을 건 아귀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적을 굳이 죽이지 않을 때는 이유라도 대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동식은 끝까지 안경을 벗지 않고 그래서 대길이 궁금해하던 안경 속 비밀도 관객에게 알려주지 않는데 이처럼 영화는 궁금증을 유발해놓고 수습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수습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그동안 미나가 오빠 동철(김인권)의 과거까지 상세하게 기술해주었던 친절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최동훈 감독의 <타짜>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영화이고 한국 상업영화의 최고작품 중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타짜 - 신의 손>을 보면서 영화 한 편 짜임새 있게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전작의 김혜수에 비하면 이하늬의 팜므파탈로서의 매력은 확실히 약합니다. 신세경은 당차보이는 정도지 장면을 접수할 만큼은 아닙니다. 최승현은 생각보다 잘해냈지만 영화 전체를 끌고 갈 만큼은 안 됩니다. 김윤석은 카리스마가 있지만 등장 자체에 당위성이 없습니다. 곽도원은 후반부로 가면서 김윤석에게 완전히 눌렸습니다. 느슨한 중반부를 지탱해주던 유해진이 사망한 뒤부터 영화는 미리 정해놓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억지로 달려갑니다. 좋은 배우들을 모아놓고도 앙상블에서 시너지를 내지 못한 데에는 연출의 책임도 있을 것입니다.


허영만, 김세영의 [타짜]는 4부작으로 된 만화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아귀가 자신이 키우는 제자(여진구)를 언급하며 그가 언젠가 도박판을 접수할 것이라는 말을 하는 걸로 봐서 3편에서는 여진구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겠네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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