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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다이버전트> 등 최근 할리우드 영화의 경향 중 하나는 가상의 통제된 미래사회를 그린다는 것입니다. 절대적 지배자가 있는 미래 사회에서 인간들은 지역 특성이나 성격에 따라 분류되어 살아갑니다. <헝거 게임>은 캐피톨을 중심으로 12개의 구역으로 나눠지는데 사치품, 목재, 섬유, 수산물 등 산업에 따라 구역을 나누었고, <다이버전트>는 의회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분파를 이타적인 부류, 모험심 강한 부류 등 인간의 성격에 따라 분류했습니다.


<더 기버: 기억전달자>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로이스 로우리의 1993년 뉴베리상 수상작을 영화화했습니다. [더 기버]는 로우리의 SF 4부작 중 한 편으로 다른 3편으로는 [파랑 채집가] [메신저] [태양의 아들]이 있죠. 각각 기억, 원시 폭력, 치유와 회복, 출산과 보육을 소재로 한 SF 판타지입니다. 4편의 공통점은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젊은 주인공이 고착된 미래사회의 문제를 풀기 위해 모험을 감행한다는 것입니다.


<더 기버: 기억전달자>가 그리고 있는 미래사회에서 세상은 정해져 있습니다. 폐허가 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원로들이 차별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계획도시를 만들었고 그 아래에서 출산과 양육을 통제해 신인류를 창조했습니다. 인공적으로 태어난 '뉴 차일드'는 '가족 단위'에서 양육되다가 15살이 되는 해에 적성에 맞는 직업에 배정됩니다.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일일이 감시카메라로 지켜보며 관찰하고 있던 원로회에서 정해줍니다. 대부분 성격과 적성에 맞춰주기 때문에 실패가 없습니다.


어릴적부터 단짝친구인 세 아이들이 등장하는데 애셔(카메론 모나한)는 드론 파일럿이 되고, 피오나(오데야 러쉬)는 보육사에 배정받고, 조너스(브렌튼 트웨이츠)는 기억보유자라는 직업을 갖게 됩니다. 가만, 그런데 기억보유자라니 그런 직업도 있나요? 원로회는 과거의 세상에 대한 기억을 누군가 보유하고 있다가 후세에 전달해주기를 바랬나 봅니다. 원로회가 만든 미래사회는 기후가 통제되고, 인간을 제외한 동물은 모두 멸종했으며, 인간은 매일 주사를 맞아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만약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과거의 유산 중에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 했고 그래서 기억을 보존해줄 사람이 필요했던거죠.


기억보유자는 기억전달자(제프 브리지스)에게 기억을 건네받습니다. 기억보유자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 후계자가 생기면 다시 기억전달자가 되는 구조입니다. 처음엔 눈, 썰매, 벌, 태양, 바다, 배 등 신기한 것들 위주였습니다. 색깔, 음악, 춤, 결혼식, 동물, 기쁨을 전달받은 조너스는 과거의 세상을 동경하게 됩니다. 그러나 공포, 전쟁, 고통, 배신, 죽음을 알게 되자 조너스는 혼란스러워집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선뜻 선택할 수 없습니다. 색깔, 인종, 종교를 없애고 평등하게 만들어버린 원로회의 선택이 옳았던 것일까요?


그러나 원로회가 만든 세상은 고통과 죽음을 없앤 이상향이 아니었습니다. 그대신 나쁜 것들을 다른 용어로 치환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눈속임일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사람들은 정해진 용어만 사용해야 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와 노인은 '임무해제'라는 명목으로 죽여서 버립니다. 그 일을 담당하는 직업이 바로 보육사들이었던 것입니다.


결론은 첫 장면부터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인간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돌려주기 위해 조너스가 모험을 떠나는 것입니다. 원로회 수석(메릴 스트립)이 그를 찾아나서지만 기억전달자는 그에게 용기와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며 기억의 경계선을 넘어가면 모든 이들의 기억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더 기버: 기억전달자>는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 이를테면 결혼식 파티, 래프팅, 사막횡단, 전쟁, 종교행사, 시위 등을 다큐멘터리처럼 짧게 짧게 보여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인간들의 온갖 악행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통제된 미래사회보다는 낫지 않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보면서 그 주장에 동의하기 힘들었습니다. 작가의 지나친 낙관주의가 무책임한 것은 아닌지 조소하게 되었습니다. 조너스가 위대한 선구자로 보이기보다는 조너스에 의해 과거의 기억을 모두 갖게 된 신인류의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가 더 궁금했습니다.


<매트릭스>가 남긴 위대한 질문이 하나 있죠. 바로 "빨간약 먹을래, 파란약 먹을래" 입니다. 그 질문을 이 영화에 대입해볼까요? 파란약을 먹으면 통제된 사회에서 고통없이 살아가게 될 것이고, 빨간약을 먹으면 인간 세상의 수많은 고통들을 몸소 겪어야만 합니다. 흑백으로 시작한 영화는 조너스가 색깔을 볼 수 있게 되면서 점점 컬러로 변합니다. 처음엔 흑백화면이 컬러에 익숙한 현대 관객들에게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나중에 어떤 컬러 장면은 차라리 흑백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굳이 컬러가 필요하지 않은 장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은 영화처럼 컬러와 흑백을 섞어서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빨간약과 파란약을 동시에 먹을 수는 없다는 것이죠.


1993년에 출간된 원작 소설은 당시 공산주의 몰락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상향을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했습니다만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이 밝은 미래였는지는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지나치게 나이브합니다.


영화 속에 조너스가 기억보유자가 되고 나서 직업 규칙을 알려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 그에게 부여된 권한이 하나 있는데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금지된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로회는 그에게 왜 그런 능력을 주었을까요? 거짓말을 할 수 있게 허락받았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이고 또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영화는 이에 대해 흐지부지 넘어갔지만 사실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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