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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주목받고 있는 영화가 있다. 1995년작 <아웃브레이크>다. 독일 출신으로 <특전 U보트>를 만들고 할리우드로 건너가 <네버 엔딩 스토리> <사선에서> <에어 포스 원> <트로이> 등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은 볼프강 페터슨이 감독하고 더스틴 호프만, 르네 루소, 모건 프리먼, 케빈 스페이시가 출연했다. 한국에서도 1995년 4월 5일 개봉했는데 영화 속에서 바이러스의 숙주 원숭이를 옮기는 화물선이 한국 국적의 '태극호'라는 이유로 개봉 반대 목소리가 일기도 했다. 1993년 <폴링 다운>에서 한국인 상점 주인이 주인공의 총에 맞아 죽는 등 당시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은 변방이었다.


<아웃브레이크>는 아프리카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미국에 상륙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군의관의 사투를 다뤘다. 그 과정에서 바이러스를 생화학적 무기로 사용하려 했던 군 수뇌부의 음모가 드러난다. 영화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최근 이 영화를 다시 봤다. 그러나 영화 속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에볼라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가상의 '모타바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에볼라'가 1976년 발병이 첫 확인된 아프리카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 북부의 에볼라 강 이름을 따서 지은 것처럼 영화 속 가상의 '모타바 바이러스' 역시 1967년 처음 발견된 자이르의 모타바 계곡에서 이름을 따왔다. 모타바 바이러스는 눈이 충혈되고, 핑크색 반점에서 피와 고름이 흐르고, 설사와 복통에 시달리고, 발작증세를 동반하며, 체내의 장기가 녹아내린다는 점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증상과 비슷하지만, 잠복기가 하루도 안될 정도로 아주 짧고, 발병하면 사망까지 24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통 2~21일의 잠복기와 사망까지 8~9일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에볼라 바이러스보다 훨씬 강력하다. 또 두 바이러스 모두 인간 사이에 체액과 혈액으로 감염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변종 모타바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 감염되기까지해 더 치명적이다. 영화는 긴박감을 표현하기 위해 에볼라 바이러스를 변형해 새로운 가상의 바이러스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1967년 모타바 계곡 용병 캠프에서 의문이 출혈열이 발생해 군인들이 죽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장에 도착한 미군은 전염병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소개령을 내린다. 폭탄을 투하해 캠프 전체를 초토화시켜버린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미국 육군 전염병 의학연구소(USAMRIID)의 샘 대니얼스 대령(더스틴 호프만)은 위성전화 한 통을 받는다. 자이르의 모타바 인근 한 마을에서 바이러스가 재발했다는 전화다. 현장을 답사한 샘은 이 바이러스의 놀라운 전염력에 충격을 받고 미군 수뇌부에 비상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하지만 친구이자 상사인 빌리 포드 준장(모건 프리만)은 미국으로 번질 일이 없다며 이를 묵살한다.


그러나 며칠 후 모타바 계곡에 살던 원숭이 한 마리가 태극호를 타고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도착한다. 한 동물 밀수꾼이 들여온 것이다. 밀수이기 때문에 이력도 남아 있지 않고 흔적도 없다. 이 장면은 최근 아프리카에서 의료선교 활동을 하던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환자 2명이 미국에 상륙한 것을 연상시키며 주목받았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숙주 원숭이는 밀수를 통해 몰래 들어온 반면 현실에서 환자 2명은 방역장비가 탑재된 전용기를 이용해 들어와 특별 격리된 공간에서 치료받고 있어 전혀 다르다.


어쨌든 영화 속에서 숙주 원숭이는 밀수꾼을 감염시키고, 밀수꾼이 원숭이를 팔려고 했던 애완동물 상점의 주인도 눈이 충혈되는 증세를 보인다. 병원에서 혈액 샘플을 채취하던 연구원도 튄 혈액을 뒤집어 쓴 바람에 감염되고, 결정적으로 연구원이 여자친구와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바람에 극장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순식간에 캘리포니아 해안의 작은 마을 세다 크릭은 출열혈 환자들로 넘쳐나게 된다.


샘은 그의 전부인인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의사 로비 커우(르네 루소)와 함께 환자들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설상가상으로 모타바 바이러스는 '세다 크릭 모타바 바이러스'로 변이를 일으켜 공기로 전염되기 시작한다. 군대는 세다 크릭 마을을 봉쇄해 주민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막고 환자들을 격리한다. 이제 2600여명의 주민들은 마을에 완전히 고립됐다. 인터넷이 일상에 쓰이지 않던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라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전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현장을 지휘하는 맥클린톡 장군(도날드 서덜랜드)은 백악관에서 48시간 내에 미국 전역이 바이러스 무법천지가 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브리핑하고, 이에 백악관은 1967년에 자이르에서 했던 것처럼 세다 크릭에 폭탄을 투하해 이 지역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 계획 뒤에는 맥클린톡을 위시한 군 수뇌부가 모타바 바이러스를 군의 생화학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자행한 당시 살상의 흔적을 감추려는 음모가 숨겨져 있었다.



영화 속에서 숙주 원숭이가 미국에 상륙하는 날은 9월 1일로 설정되어 있다. 바이러스는 더위에 창궐한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 강력한 바이러스는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도 빨리 퍼진다. 영화는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 있었던 강력한 전염병 사례로 1918년 28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 1969년 나이지리아에서 5천명의 사망자를 낸 라싸 바이러스, 1993년 뉴멕시코에서 유행한 한타 바이러스 등을 군의관들의 대화 중에 언급하고 있다. 영화가 나온 후 공교롭게도 1995년 콩고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해 245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는데 당시에도 <아웃브레이크>는 에볼라 바이러스 예견 영화로 주목을 받았었다.


<아웃브레이크>는 바이러스 공포와 이를 해결해야 할 국가의 음모와 무능을 담은 전염병 재난 영화의 원조다. 이후 <28일후> <에볼라 바이러스> <컨테이전> <나는 전설이다> <월드워Z> 등이 만들어졌고 한국에서도 <연가시> <감기> 등의 영화가 나왔다.


그중 2001년작 `에볼라 바이러스'(원제 Contagion)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직접적으로 미국 대통령 테러에 이용하는 이야기로 치명적 바이러스가 생화학적 테러의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영화 속에서 범인은 다트에 바이러스를 묻혀 대통령에게 부상을 입혀 감염시킨다. 다트를 건드린 보좌관과 간호사도 차례로 감염되고 공기 오염으로 바이러스가 퍼져가는데 대통령은 병원에 폭탄을 터뜨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아웃브레이크> 속 미군 전염병의학연구소는 바이러스를 치명도에 따라 4단계로 나누고 있는데 가장 치명적인 4단계 바이러스에는 에볼라, 라싸, 한타가 속해 있다. 이들은 치사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백신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발병하고 한 번 발병하면 신속히 사망해 환자가 많지 않은 탓에 제약회사들이 백신 개발에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SNS에서 "전염병에 걸리려면 선진국 환자들이 걸리는 병에 걸려야 살 확률이 높다"는 자조 섞인 푸념으로 상황을 비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최근 직원 9명에 불과한 소규모 제약회사가 에볼라 바이러스의 실험용 치료제 '지맵(ZMapp)'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니 뒤늦게라도 이 사태를 끝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지금까지 전염병 재난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대부분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약이 있으니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개발된 치료제가 아프리카의 환자들에게 공급되는 과정에도 높은 장벽이 있어 보인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프리카의 과일박쥐를 통해 인간에게 전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왔다. 철새가 옮긴 인플루엔자, 원숭이에서 온 에이즈, 돼지를 매개로 한 신종플루, 야생조류를 통해 온 AI 등 현대의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모두 원시 야생에서 왔다. 이는 자연 위에 군림하려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일 수 있다.


<아웃브레이크>의 원작 소설 [The Hot Zone]을 쓴 리처드 프레스턴은 "생물은 어느 것 하나 명확한 것이 없다. 우리가 뭔가를 이해했다고 하는 것은 겨우 한 꺼풀 벗겨낸 것일 뿐, 그 아래 훨씬 더 복잡한 것들이 도사리고 있다. 자연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웃브레이크>를 비롯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재난영화들은 끔찍하지만 있을 법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이 일궈놓은 문명사회는 한 순간에 붕괴하고 지구상 유일한 지적생명체임을 뽐냈던 인간의 창피한 민낯이 드러나고 만다.


영화의 결말은 샘이 숙주 원숭이를 찾아내 백신을 만들어내고, 빌리의 도움을 받아 군의 음모를 밝혀내 폭탄 투하 계획을 저지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전염병의 가공할 만한 위력에 긴장이 집중돼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사건을 감추고 은폐하려는 인간의 이기적 욕심에 더 포커스를 맞춘다. 결국 바이러스를 방치해 전염병을 키운 것도, 치료제를 개발했음에도 이를 퍼뜨리지 못하게 막은 것도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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