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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의 본성과 광기를 드러내는 영화는 많았다. 극단 연우무대의 해무 역시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데 영화로 만들어진 <해무>는 인간이 미쳐가는 과정을 제대로 설득해내지 못한다. 선원들은 점점 살인자가 되어가는데 그 과정이 두루뭉술하다. "선장이 시키니까 하는 거야"가 전부다. 단지 해무 속에 고립된 배라는 배경으로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 세월호 트라우마, 나쁜 선장, 막내 선원의 혁명 등 메시지는 많지만 캐릭터가 개연성이 없다보니 잘 와닿지 않는다.


2. 스크린에 등장한 해무는 문학작품을 보는 것처럼 몽롱하다. <샤이닝>의 눈이나 <더 포그>의 안개처럼 시각적으로 관객을 답답하게 만들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영화는 거기까지다. 해무가 보여지는 정도에서 그친다. 상상력을 자극해놓고 영화적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것은 감독의 한계다. 해무를 더 이용했어야 했다. 카메라를 통해 더 과감하게 인물 속으로 들어갔어야 했다. 영화는 2001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을 극화했다는 것을 의식한 듯, 처음부터 끝까지 지나치게 리얼리티에 의존하려 한다. 하지만 영화는 재현다큐가 아니다. 감독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을 보여줄 땐 망설여서는 안 된다. 고속촬영, 클로즈업, 환상 속 세트 등 방법은 많다.


3. 처음부터 시나리오가 나빴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책에는 분명히 다 표현되어 있었을 것이다. 선원들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우연한 사고 이후 왜 미쳐가게 됐는지 등. 그러나 영화는 밋밋하게 줄거리를 나열할 뿐이다. 클라이막스에서 결정적 한 방이 없었다.


4. 한예리는 요즘 한국영화에서 가장 뜨는 얼굴이다. <군도: 민란의 시대>에서도 하정우 동생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확실한 존재감이 있었다. <해무>에선 선원들 사이의 갈등 한복판에 있는 조선족 여자 역할을 맡았다. 말투와 표정이 정말 조선족처럼 보인다. 박유천은 첫 영화로서 의외로 비중이 크다. 김윤석의 영화인줄 알고 들어갔다가 박유천을 확인하고 나온다.


5. <살인의 추억>의 각본을 쓴 심성보의 연출 데뷔작인 <해무>는 막상 <살인의 추억>보다는 김기덕 영화를 더 닮았다. 무겁고 단순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명량>의 예에서 보듯 흥행에서 영화의 무거움이 꼭 단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단순함이다. 여자 한 명을 사이에 놓고 선원들 사이의 모든 갈등을 설명하려는 단순함으로 관객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김기덕 영화는 단순함을 통해 통찰력을 만들어내지만 <해무>는 그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했다. 총제작비 100억을 들인 <해무>는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NEW는 올해 여름시장에 맞는 영화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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