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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개봉 이후 벌써 340만 명(7월 24일 현재)의 관객을 불러모은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3부작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두 번째 편이다. 이 시리즈는 지난 1968년부터 1973년 사이에 다섯 편의 시리즈를 양산한 작품을 '리부트'(콘셉트와 캐릭터를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한 것인데,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네 번째 속편 <노예들의 반란>에서,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다섯 번째 속편 <최후의 생존자>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탄생한 혹성탈출


<혹성탈출>의 원작은 1963년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이 쓴 [유인원 행성]이다. 피에르 불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아시아에 파견돼 일하던 중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자유프랑스군에 입대했다. 그는 스파이 훈련을 받고 동남아시아에서 비밀요원으로 활약했는데, 이때 나찌와 일본군에 대항한 경험담을 전쟁이 끝난 뒤 소설로 풀어낸 [콰이강의 다리]로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은 데이비드 린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제작돼 아카데미 작품상 등 7개 부문을 휩쓸었는데 이때 시나리오 작가인 칼 포먼과 마이클 윌슨이 매카시즘 블랙리스트에 오르자 피에르 불이 각본상을 대리수상하기도 했다.


피에르 불은 이후 프랑스로 돌아와 엔지니어를 그만두고 소설가로 전업한 뒤 아시아에서의 경험담을 살려 주로 서구 문명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작품을 썼다. [유인원 행성]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 본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출세작인 [콰이강의 다리]와 비슷한 주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유인원 행성] 이전 작품들 중에도 SF로 분류할 수 있는 소설이 있는데 피에르 불은 이에 대해 생전 인터뷰에서 SF보다는 '사회 판타지'라는 구분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유인원 행성]을 쓴 계기에 대해 우연히 동물원에 갔다가 고릴라의 행동을 보고 인간과 닮았다고 생각했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카렐 차페크가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 고안하거나 SF 작가들이 외계생명체를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출간 이후 공교롭게도 미국과 소련 사이에 우주탐험 경쟁이 본격화 되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함께 우주개척 시대를 예견한 SF의 고전으로 추앙받게 된다.


그러나 정작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을 재미로 썼다며 마음에 들지 않아 했는데, 그 때문인지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기대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만듦새에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콰이강의 다리>가 영화화 됐을 땐 극중 일본군이 다리를 폭파하는 장면이 자기 아이디어가 아니라며 영화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하던 그였지만 <혹성탈출>의 파격적인 '자유의 여신상' 엔딩은 흔쾌히 승락했다. '자유의 여신상' 엔딩은 <환상특급> 시리즈의 각본을 쓴 로드 설링이 초고를 쓸 때 만든 아이디어인데, 정작 영화가 개봉한 이후 피에르 불은 생각이 변해 제작자에게 사실 자신의 소설 속 엔딩이 더 좋았다며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문명 폐해 통렬하게 비판한 우화


[유인원 행성]은 1968년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유인원 분장이 제대로 되기 힘들 것이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당시로선 획기적인 분장 실력으로 유인원 종을 창조해내 아카데미 위원회가 이듬해 분장상 부문을 신설하게 했고, 결말에서 소설과 달리 이 행성이 지구였다는 충격적 반전을 만들어내 전세계의 영화 관객들을 경악시켰으며, 속편을 통해 시공간을 오가며 전혀 새로운 시간 패러독스 이야기로 뻗어갔다. "알고보니 거기가 지구였다", "과거를 바꾸면 미래도 변한다" 같은 이후 수많은 SF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의 원조가 바로 영화 `혹성탈출'이었던 셈이다. 전자는 <오블리비언> 같은 SF 영화나 <스페이스볼> <마다가스카르> 같은 코미디 영화에서 곧잘 패러디됐고, 후자는 <터미네이터> <백 투더 퓨쳐> <나비효과> 등 시간여행 패러독스를 담은 이야기로 응용됐다.


당시 영화가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박상준 SF아카이브 대표는 정치적인 풍자를 꼽는다. "매카시즘과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미국인들이 이념의 경직성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혹성탈출>은 인간과 유인원의 역지사지를 통해 이를 통렬하게 비판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유인원 행성]은 곧잘 조지 오웰의 1944년 작품 [동물농장]과 비교되는데 정치 체제를 풍자하기 위해 동물에게 인격을 부여한 점이 닮았다.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인간을 내쫓고 동물농장을 세우는 이야기인 [동물농장]이 소비에트 독재를 비판하는 우화로 읽힌 것처럼, [유인원 행성] 역시 배경만 2500년 미래일 뿐 인종과 계급에 따라 서로 공격하던 인간이 되레 유인원에게 착취당한다는 설정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부조리를 폭로한다. 소설 속 유인원의 행동은 인간의 행동을 고스란히 모방하고 있기에 독자들은 인간사회의 문제를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종학살, 생체실험, 진실 은폐, 핵전쟁 공포 등 문명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원작 시리즈가 담고 있던 정치적 함의는 40여년 후 리부트 되면서 현재 상황에 맞게 바뀌었다. 원작에서 인간이 멸망하는 것이 핵전쟁 때문이었다면 새로운 시리즈에선 바이러스 전염에 의한 것으로 좀더 현실적으로 바뀌었고, 원작이 자유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데 반해 새 시리즈에선 평화를 지키는 리더십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원작이 인간의 관점에서 대부분의 유인원들을 호전적으로 그리고 있는 데 반해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유인원 리더 시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관객이 되레 유인원에 감정이입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40여년 전이었으면 납득받지 못했을 이런 설정이 가능해진 것은 그만큼 당시 충격적이었던 [유인원 행성]의 설정이 요즘 관객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혹성탈출>이라는 한국판 제목의 원조인 일본판 포스터


인간과 너무 비슷한 유인원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넌 유인원이 아니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클라이막스에 등장하는 의미심장한 대사다. 우리는 흔히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혹성탈출>의 유인원들이 들으면 섭섭해할지 모른다. 유인원이 보기에 인간은 진화가 덜 된 종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략 5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진화해 지금까지 왔다. 200종에 이르는 인간의 조상들이 전부 멸종하고 유일하게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그에 비해 인간의 사촌 종인 유인원은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 현대에도 다양한 종이 공존하고 있다. 진화를 전쟁을 통한 승자독식이 아닌, 평화로운 공존을 이루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확실히 인간보다 더 진화했다는 유인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렇게 반박하고 싶을 것이다. 인간의 뛰어난 지능과 이룩해놓은 문명이 진화의 증거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인간은 문명사회를 이룩했지만 동시에 제노사이드를 자행했다. 문명은 소수의 정복자가 지배하던 약육강식의 세상을 다수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시스템의 세계로 바꾸는 방향으로 전개돼 왔지만 그 과정에서 공존을 포용하지 못하는 세력은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만 평화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 온갖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평화는 합리적 이성을 필요로하는 고차원적인 영역이다. 그래서 평화를 위해서는 오히려 더 굳건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은 평화를 지키려는 리더십이 어떻게 좌절하고 또 끝내 추앙받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평화를 지키고 싶던 유인원의 분노


영화의 배경은 전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으로부터 10년 후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인해 인간의 문명이 몰락한 미래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유인원은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며 산다. 유인원의 리더 시저는 이 세계를 오래 지속시키고 싶어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호전적인 다른 유인원들이 인간을 공격해야 한다고 부추겨도 그는 인간과 공존할 방법을 찾는다.


서로의 존재를 모르던 인간과 유인원이 만나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이 부족한 전기 공급을 위해 유인원 거주지의 폐쇄된 댐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대표로 자원한 말콤은 유인원을 설득하기 위해 금문교를 건너 유인원 거주지로 찾아가는데 이 장면은 15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원주민을 처음 만난 유럽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원주민과 달리 유인원은 인간의 호전적인 속성을 간파했다. 시저와 대척점에 놓인 코바는 인간을 믿어서는 안된다며 전쟁을 벌이려 한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공격당할까봐 두려워한다.



평화를 지키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을 깨는 것은 너무 쉽다. 코바는 시저를 암살하는 쿠데타를 벌이고 권력을 탈취한 뒤 결국 전쟁을 일으킨다. 말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 시저는 분노한다. 어렵게 지켜온 평화가 한순간에 깨졌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남아 있던 자신의 지지세력의 도움을 받아 코바를 응징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난 유인원이 인간보다 낫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결국 유인원도 인간과 다를 바 없다."


이 대사를 인간과 짐승에 대입해보면 그 절실함이 더 잘 이해된다. 결국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이 지구 유일의 고등생명체로 자임하고 있지만 아직 충분히 진화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1984년 SETI를 세우면서 외계의 고등 지적생명체를 탐사하겠다고 나섰는데 어쩌면 여기서 그냥 지적생명체가 아닌 '고등 지적생명체'를 찾겠다고 한 것 자체가 우주 전체의 눈으로 보면 오만일 지도 모른다. 서기 40세기 미래의 우주 어느 행성을 무대로 한 원작 [혹성탈출]은 그 오만에 대한 유인원의 응징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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