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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스톰>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블레이드 러너>의 특수효과를 담당해 이 분야 최고의 명성을 얻은 더글라스 트럼블이 두 번째로 연출한 영화이자 <야곱의 사다리> <사랑과 영혼> <딥 임팩트> <마이 라이프> <시간여행자의 아내>의 각본을 쓴 브루스 조엘 루빈의 시나리오 데뷔작입니다. 브루스 조엘 루빈은 <사랑과 영혼>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음악은 훗날 <에이리언 2> <패트리어트 게임> <가을의 전설> <브레이브하트> <타이타닉> <아바타> 등으로 영화음악계의 거장이 되는 제임스 호너가 맡고 있고, 주연은 크리스토퍼 월켄과 나탈리 우드입니다.


나탈리 우드 하면 <이유없는 반항> <초원의 빛>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같은 1950~1960년대 영화들에서 청순하고 예쁜 여배우의 이미지가 강한데 그녀가 <킹 뉴욕> <데드 존> <어딕션> <펄프 픽션> <슬리피 할로우>의 크리스토퍼 월켄과 부부로 등장한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만난 듯한 느낌이랄까요? 크리스토퍼 월켄은 로버트 드니로와 동갑으로 <브레인스톰>을 찍을 때만 해도 <애니 홀>에 이어 <디어 헌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촉망받는 배우였습니다. 나탈리 우드와는 5살 차이로 나탈리 우드가 연상입니다.


나탈리 우드는 1970년대에는 결혼과 출산으로 거의 영화계에서 잊혀진 스타가 되었다가 1981년 11월 익사하였는데 <브레인스톰>은 그녀가 죽은 지 2년만에 개봉하며 그녀를 추모하는 영화로 헌정되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처럼 나탈리 우드에 대한 추모로 이해하지 않는다면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참, 나탈리 우드가 보트에서 물에 빠져 익사할 때 크리스토퍼 월켄과 함께 있어서 두 사람 사이의 치명적인 스캔들이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런 백그라운드를 가진 <브레인스톰>은 어떤 영화일까요?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뇌파를 조종하는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가 이 기술을 군용으로 전용하려는 정부에 의해 밀려났다가 시스템을 해킹해 복수하는 이야기입니다. 크리스토퍼 월켄은 과학자 마이클 브레이스로, 나탈리 우드는 그의 아내이자 연구소의 디자이너인 카렌 브레이스로 분합니다.


영화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서로 다른 화면비율을 오갑니다. 현실일 때는 TV 화면 같은 1.33:1의 비율이었다가 머릿속 환영을 보여줄 땐 2.35:1의 와이드스크린 비율로 바뀝니다. 특수효과의 거장이 메가폰을 쥔 영화답게 <브레인스톰>은 오프닝 크레딧부터 와이드스크린의 화면에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을 수놓는 스타게이트 시퀀스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와이드스크린 화면에서 시점샷이 자주 등장하며 관객이 영화 속 신기술을 함께 체험하도록 돕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시점샷들은 더글라스 트럼블이 애초에 쇼스캔(Showscan) 방식으로 구현하려 했던 것입니다. 쇼스캔은 압도적인 몰입감을 구현하는 영사기술이라고 하는데 이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개봉을 2년이나 미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해 정작 개봉 때는 일반 방식으로 상영했다고 합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이제 막 뇌파 전송기기의 개발을 마친 마이클과 릴리안 레이놀즈 박사(루이스 플레처)가 기기를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실험대상인 두 남자가 복잡한 전선으로 만든 두꺼운 헬멧을 쓰고 있는데 한 사람이 눈으로 보는 것과 입으로 먹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이 헬멧의 전선을 통해 그대로 다른 사람의 뇌로 전달됩니다. 수신자는 자신이 직접 보거나 먹지 않았지만 마치 경험한 것처럼 또렷이 기억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실현되지 못한 가상현실의 공감각적 구현입니다. 연구소의 책임자 알렉스(클리프 로버트슨)는 연구 성과에 고무되어 이사회를 소집합니다. 그리고 카렌에게 헬멧을 좀더 작고 스타일리시하게 만들 것을 주문합니다. 이제 연구소는 이 획기적인 발명품을 통해 큰 명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연구소가 주최한 파티에서 알렉스가 릴리안과 마이클에게 소개한 사람은 국방과 관련한 인사였습니다. 릴리안은 본능적으로 이 연구의 악용 가능성을 알아차리고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마이클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공동연구자로서 따라 나옵니다. 여느 영화였다면 여기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이 생기고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식으로 발전했겠지만 이 영화는 과학자들을 괜히 척지게 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과 SF에 대한 애정을 가득 담고 있어 곧이어 두 사람이 또다른 새로운 기기를 발명하는 장면으로 나아갑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각을 기록해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마이클은 첫 실험 대상으로 자신의 부인인 카렌에게 헤드셋을 씌웁니다. 그러나 당시 두 사람은 집을 파는 문제로 갈등이 생겨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카렌의 생각을 알게 된 마이클이 화를 내자 두 사람은 서로 싸우게 되는데 얼마 후 마이클은 다시 이 기기를 이용해 화해를 시도합니다. 결혼식날부터 아이와 함께 한 순간까지 두 사람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려 기기에 기록해 카렌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마이클과 카렌이 한때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곳은 노스 캐롤라이나 키티 호크의 라이트 형제 기념관이었습니다. '하늘의 지배자'라는 푯말과 함께 서 있는 라이트 형제의 동상 앞에서 두 사람은 사진을 찍었지요. 라이트 형제처럼 마이클은 과학을 통해 불가능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행복했던 기억의 공유를 통해 두 사람은 관계를 회복합니다. 더글라스 트럼블 감독은 이처럼 기계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진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낙관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연구소의 이름도 'Research for a Better Tomorrow'입니다.


그러나 기술이 사용처를 잘못 찾을 때 그것은 악몽이 됩니다. 더글라스 트럼블 감독은 이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인간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인공지능 HAL9000을 디자인한 바 있습니다. ('할'은 <브레인스톰>에서는 연구소의 직원 이름으로 쓰였는데 그는 사이버섹스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새로운 인생을 찾아 연구소를 떠납니다.) <브레인스톰>에서 악역은 신기술을 악용하려는 정부와 군수산업체의 몫입니다. 정부는 뇌파기술을 군인들을 세뇌시키는데 이용하려 합니다. 그것이 '브레인스톰'이라는 비밀연구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 매니저 로버트 젠킨스(앨런 퍼지)와 랜던 박사(도날드 호튼)는 군사용 헬멧과 연결코드를 만들기 위해 생산라인 개조합니다.


릴리안은 심장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연구밖에 몰랐던 그녀는 결국 연구실에서 급성 심장마비로 죽고마는데 죽기 전에 마이클을 위해 자신의 기억을 기록해둡니다. 이 기록을 보기 위해 헬멧을 쓴 마이클 역시 갑자기 쇼크에 빠져 병원신세를 지게 되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마이클은 뇌파 연구가 치명적인 무기로 쓰일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마이클은 퇴원 후 연구소로 돌아오지만 알렉스는 이미 연구소를 개조했습니다. 결국 연구소에서 쫓겨난 마이클은 동료였던 할(조 도시)의 도움으로 브레인스톰에 원격접속해 자신의 연구가 사람들을 세뇌하는데 쓰이고 있다는 것을 밝혀냅니다. 단지 사실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제공하는 기계인줄로만 알았던 뇌파연구의 이면에는 잠재의식을 조종해 두려움을 의식적 지각으로 바꿔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가공할 만한 위력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고문당하는 환영 속 이미지가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게 되고 심지어 사망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이런 부작용은 영화 속에서 마이클을 감시하던 연구원이 어이없이 쇼크사해버리는 설정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화의 엔딩은 조금 황당합니다. 여기까지 스토리를 전개했으니 당연히 마이클이 정부 비밀연구의 실체를 만천하에 밝혀 진실을 드러내거나 혹은 이들에 의해 세뇌당하거나 혹은 싸우다가 죽는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게 일반적인 각본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글라스 트럼블과 브루스 조엘 루빈은 이 과정을 대충 얼버무립니다. 그대신 독특하게도 우주로 나아갑니다. 웬 우주냐고요? 그것은 릴리안의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이클은 릴리안이 남긴 테이프에 계속 원격접속을 시도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이미 죽은 릴리안이 지각하는 것을 뇌를 통해 보게 됩니다. 그것은 먼 우주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접속을 마친 마이클은 때마침 라이트 형제 기념관으로 찾아온 카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됐어. 다 끝났어. 저 우주를 봐." 마이클과 카렌은 서로 포옹하고 키스하는데 이 모습을 우주에서 릴리안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연구소에서는 군수물품을 생산하는 기계가 작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가더니 스스로 움직이며 물건들을 박살냅니다. 아마도 원격접속한 릴리안의 기억이 기계들을 작동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때 마이클의 대사가 의미심장합니다. "자유를 얻으려면 죽어야 하는 걸까." 릴리안의 죽음 이후 그녀가 우주에서 환생하고, 그녀의 뇌파가 기계들을 조종한다는 설정은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동양적인 테마입니다. 마이클은 결국 뇌파가 사라진 이후 죽음을 연구한 과학자였던 셈이지요. 아마도 이런 독특한 설정이 이후 같은 작가가 쓴 <사랑과 영혼>에서 심령술을 다루는 것으로 연결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전반적으로 <브레인스톰>은 완성도로 논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더글라스 트럼블이 이후 10여년 간 영화를 연출하지 못한 것엔 이유가 있습니다. 지나친 비약에 연기의 감정선을 살려주지 못하고 끊어버리는 편집은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아이디어만으로 만든 영화가 내러티브를 소홀히 대할 때 어떻게 자멸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보기입니다. 비슷한 뇌파 소재로 좀더 단순한 스토리를 가진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1981년 작품 <스캐너스>와 비교해보면 완성도의 차이가 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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