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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과 프랭크 다라본트의 <쇼생크 탈출>은 각각 1982년에 출간되고 1994년에 영화화된 작품입니다. 한참 지났지만 이만큼 훌륭한 소설과 그에 못지않게 완벽하게 각색된 영화를 많이 알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경험에 비춰보면 영화가 좋으면 원작소설이 나쁜 경우가 많았고, 원작이 좋으면 오히려 영화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쇼생크 탈출>은 둘 다 완벽합니다.


최근 스티븐 킹의 [사계]를 읽게 됐고 이후에 프랭크 다라본트의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원작 소설은 사계 시리즈의 봄 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겨울 편을 제외하고 봄, 여름, 가을이 모두 영화화됐는데 세 편 모두 걸작입니다. 여름 편인 [우등생(Apt Pupil)]은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브라이언 싱어에 의해 영화화됐고, 가을 편 [바디]는 그 유명한 <스탠 바이 미>의 원작입니다.


두 가지 <쇼생크 탈출> 중 "소설이 좋아, 영화가 좋아?" 라고 묻는 건 "커피가 좋아, 차가 좋아?" 라고 묻는 것 만큼이나 대답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그건 취향의 문제일 뿐입니다. 소설을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 영화가 그려집니다. 반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활자를 읽으며 느꼈던 것들이 그대로 영상으로 살아 움직이는 듯합니다. 완벽한 콜라보레이션이라고 할까요? 스티븐 킹의 [샤이닝]을 스탠리 큐브릭이 영화화했을 때 그때도 물론 둘 다 완벽한 작품으로 남았지만 두 작품은 별개였습니다. 책을 보면서 영화를 떠올리기 힘들었고 영화를 보면서 책을 유추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냥 영감을 받아 탄생한 다른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스티븐 킹은 큐브릭의 <샤이닝>을 정말 싫어했고 최근 자기 의도가 담긴 속편 [닥터 슬립]을 출간하기도 했죠.


원작을 영화로 옮긴 모범 사례인 <쇼생크 탈출>을 통해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적어보려 합니다.



1. 복잡한 캐릭터를 강렬하게 압축하라


소설에선 교도소장이 두세 번 바뀝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교도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새뮤얼 노튼(밥 건튼) 한 명 뿐입니다. 그는 성경만을 믿는 소장과 앤디(팀 로빈스)에게 세무관리를 맡긴 소장, 사업을 벌려 놓고 뒤로 돈 챙기는 소장을 합쳐놓은 인물입니다. 또 50년 만에 출소한 브룩스(제임스 휘트모어) 역시 책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의 특성을 모아 만들었습니다. 브룩스는 앤디에게 망치를 운반해주고 새를 키우기도 합니다. 소설에서처럼 다른 캐릭터로 분산시켰다면 오히려 브룩스에 대한 관심이 줄었을 것입니다. 노튼과 브룩스는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시간 제약이 있는 만큼 주인공의 주변 인물을 만들 때 최대한 임팩트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2. 상반된 캐릭터를 만들라


소설에서 레드(모건 프리먼)는 아이리쉬계 백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선 흑인입니다. 소설에서 레드와 앤디는 나이가 엇비슷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두 사람은 꽤 나이차가 있습니다. 만약 레드가 소설에서처럼 백인의 동년배였다면 영화가 지금처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있었을까요? 레드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람이니만큼 현명한 화자로 설정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앤디가 속을 알 수 없는 과묵한 엘리트 은행가로 설정된 만큼 레드는 그와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인물이 되는 편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 감옥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새장 속의 삶을 살다 간 브룩스의 에피소드가 꼭 필요했던 만큼 브룩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그에 동화될 인물이 필요했는데 그러려면 레드가 좀 더 나이들고 사회를 두려워하는 인물로 그려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앤디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레드는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고 제지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믿음이 있기에 결국 함께 하게 됩니다. 레드가 출소한 뒤 백인과 함께 버스를 타는 장면이 있는데 짧은 장면이지만 소설에서보다 더 쉽게 세상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3. 개연성을 확보하라


소설에서 앤디는 감옥에 들어오기 전부터 철두철미하게 지인을 통해 목돈을 보관해놓고 있었습니다. 엉덩이 속에 1달러짜리 500장을 숨겨서 들어온 그는 감옥 밖 지인을 통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돈을 불립니다. 엄청나게 영리한 인물로 그려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사실 웬만한 슈퍼맨이 아니고서는 힘듭니다. 영화는 영리하게 이 문제를 교도소장을 통해 해결했습니다. 교도소장이 탈세를 위해 가상의 인물을 만드는데 앤디가 앞장섰고 훗날 앤디는 이 가상의 인물 행세를 하며 교도소장의 돈을 인출합니다. 애초부터 가상의 인물이 있었다는 소설의 설정보다 영화가 훨씬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4. 한 방에 해결하라


영화는 노튼과 해들리에게 악역을 맡겼습니다. 노튼은 소설에서보다 훨씬 잔혹합니다. 책에서 교도소장은 토미(길 벨로)와 딜을 해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그를 다른 감옥으로 이송시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노튼은 토미를 살해합니다. 영화는 토미의 죽음을 '트리거'로 이용합니다. 소설에선 앤디가 구멍을 뚫어놓고도 계속 망설이다가 어느날 갑자기 결심해서 탈옥을 감행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토미의 죽음을 탈옥의 계기로 만들었습니다. 사실 앤디는 십여년간 구멍을 뚫어놓았기 때문에 탈옥하지 않으면 언젠가 발각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앤디에게 가석방 명령이라도 떨어진다면 오히려 그로 인해 방 수색을 하다가 발각될 지도 모르고요. 소설은 그 과정을 레드의 시점에서 차분하게 묘사해주고 있지만 영화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토미를 죽여 앤디에게 노튼을 향한 복수심을 심어줬고 이는 곧 앤디가 그곳을 빠져나가야 할 이유가 됩니다. 한 방에 해결한 것이죠. 앤디는 비밀장부와 구두, 양복까지 가져가면서 노튼에게 완벽하게 복수합니다. 사소한 것까지 되갚아주는 앤디가 통쾌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은 역으로 노튼을 그만큼 악랄한 캐릭터로 그려냈기에 가능했습니다.


5. 음악을 이용하라


소설엔 나오지 않지만 영화에 쓰여 명장면으로 남은 씬이 있습니다. 바로 앤디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방송실에서 교도소 전체를 향해 트는 장면입니다. 삭막한 교도소에 희망을 선물하는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더 감성적이 됐고 앤디는 박애주의자 캐릭터로 사랑받게 됐으며 '희망'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더 선명하게 부각됐습니다. 영화에서 음악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활자매체인 소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을 영화는 공감각을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원작의 이야기가 훌륭할수록 혹은 영상으로 옮기기 어려울수록 음악에 더 비중을 두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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