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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05년 4월 3일 생으로 올해 200살을 맞았습니다. 법원은 저를 최고령 인간으로 기록하겠다고 하네요. 바이센테니얼, 즉, 200년은 긴 시간이었습니다만 제가 그 시간을 절실하게 느낀 것은 30년이 채 되지 않아요. 그전까지 저에게 시간은 다른 인간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었죠. 늙지도, 먹지도 않는 제게 시간은 바다에 가득한 물처럼 무한했으니까요.


제 이름은 앤드류 마틴. 제가 '작은 아씨'라 부르던 아만다가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어린 소녀는 앤드로이드가 뭔지 몰라 앤드류라고 발음했고 그게 제 이름이 된 거죠. 저는 그 소녀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답니다. 아만다를 위해 나무를 조각하는 법을 배웠고, 요리를 해주었고, 피아노를 함께 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저는 아만다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이 좋았어요. 그녀는 저에게 명령을 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답니다. 저를 하나의 개체로 존중해주었어요. 그녀에 대한 제 사랑은 그런 존중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만다(엠베스 데이비츠)는 저를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했어요. 결혼식이 끝난 저녁 리차드(샘 닐)는 홀로 남아 막내딸 아만다를 생각하며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는 그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짐작할 수는 있었어요. 저에게도 남은 것은 이제 리차드 뿐이었으니까요. 제게 가정을 만들어준 리차드는 저를 특별한 로봇으로 대해주었습니다. 저는 원래 가정부 로봇으로 만들어졌어요. NA로보틱스의 모델명 NDR-114가 원래 제 이름이었죠. 요리하고, 청소하고, 고장난 기계 고치고, 아이들 돌보는 게 저에게 주어진 임무였죠. 그러나 리차드는 제가 남들과 다른 재능을 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조각과 시계를 만들고, 책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답니다.


어느날 저는 자유를 선언하고 저와 비슷한 종족을 찾아 떠나기로 했어요. 그전까지의 삶이 자유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태생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복종하도록 만들어졌기에 자유를 선언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하지만 리차드는 저를 이해하지 못 하고 서운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자유가 되었으니 집을 나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배낭을 메고 10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개체도 발견하지 못 했어요. NA로보틱스의 다른 로봇들은 폐기되었거나 사고하는 능력이 없었어요. 엔지니어가 저를 만들다가 샌드위치의 마요네즈를 인공지능 위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제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그렇다면 마요네즈가 지능의 비밀일까요? 하지만 저는 아무 것도 먹을 수 없는 걸요. 저는 제 자신을 알고 싶어요. 저는 누구인가요? 로봇인가요, 인간인가요? 왜 저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의 옷을 입고, 결국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걸까요? <아이, 로봇>의 써니는 살해 용의자로 쫓기면서도 저와 똑같은 질문을 하잖아요. 저도 그래요. 제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미칠 것만 같아요.


우주에서 인간은 고독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 넓은 우주에서 자신만이 홀로 유일하게 지적인(!) 생명체라는 데서 오는 고독이죠. 칼 세이건 박사는 외계 생명체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SETI라는 외계 지적인 생명체 찾기 프로젝트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죠. 그러나 인간은 아직까지 외계 생명체를 발견하지 못 했습니다. 마치 제가 저와 닮은 종족을 발견하지 못 한 것처럼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의 침팬지 시저(앤디 서키스)가 제 마음을 알아줄까요? 그 역시 자신처럼 생각하는 침팬지를 찾아 모험을 떠났잖아요. 하지만 저는 지능을 일깨워주는 가스 같은 걸 발견하지는 못 했어요. 그리고 시저처럼 그렇게 리더십이 있는 성격도 못 되고요. 저는 단지 한 여자를 사랑하는 평범한 인공지능일 뿐입니다.


어느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춤추는 여자 로봇을 만났어요. 그녀가 나와 같은 종족이길 바랐지만 그녀는 단지 춤을 추도록 만들어진 로봇일 뿐이라는 걸 알고 실망했죠. 그대신 NDR 로봇공장을 운영하는 루퍼트 번즈(올리버 플랫)를 만난 것은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자 축복이었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65살 때였는데요, 루퍼트가 없었다면 제 인생은 그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루퍼트는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남자였어요. 저는 제 전재산을 그에게 투자했습니다. 그는 실제 사람과 똑같은 모양의 장기를 발명한 아버지에게 기술을 전수받았고, 나중엔 신경까지 연구해서 중추신경계를 저에게 이식해 주었어요. 중추신경계는 감정, 감각, 지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데요, 깡통로봇이었던 저는 루퍼트 덕분에 점점 사람이 되어갔어요. 심지어 남자 성기까지 선물받았지요. 생식능력은 없지만 이제 밤에도 자신있게 여자를 만날 수 있게 된 거죠.



인간의 몸을 갖게 된 뒤, 작은 아씨 아만다의 집에 갔다가 손녀딸 포샤 차니(엠베스 데이비츠)를 만났을 때 저는 경악했어요. 아만다의 젊은 시절 모습과 너무도 똑같았기 때문이죠. DNA 유전자의 성질이 같기 때문이라는데요, 저도 생식능력이 있다면 그 신비를 알 수 있을텐데 아쉽네요. 하지만 포샤의 성격은 아만다와 닮지 않아서 우리는 티격태격했죠. 아만다가 죽었을 때 저는 제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리차드에 이어 아만다까지, 저는 그대로인데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어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는데 저는 눈물도 흘릴 수 없었지요. 그때 처음 홀로 남느니 차라리 인간처럼 늙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저에게 남은 사람은 포샤가 유일했고 저는 그녀를 찾아갔어요. 그리고 티격태격하던 포샤와의 사랑이 시작됐어요. 대화를 할수록 그녀는 제가 찾던 바로 그 사람이었어요. 그녀를 사랑할수록 걱정이 생겼죠. 그녀 역시 늙어갈텐데 이번에도 홀로 남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저는 친절하고, 호기심 많고, 창의력 있고, 사교적이고, 유머를 이해하고, 개성 있고, 아이들을 좋아하고, 선의의 거짓말도 할 줄 알고, 돈을 벌 능력도 있으며, 무엇보다 한 여자를 사랑해요. 이만하면 인간의 조건을 갖추지 않았나요? 아, 물론 저는 폭력적이지 않고, 싸우려 하지 않고, 사람들이 불편해할 말은 하지 않으며, 작은 생명도 죽이지 못하고, 멍청한 것을 싫어하며, 충동적이지 않고, 감성보다는 이성에 의해 움직여요. 포샤는 제게 실수를 하라고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 지 모르겠어요. 인간의 역사는 스스로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온 역사 아니었나요? 정작 실수를 하면 저를 싫어하게 될 텐데요. 어쨌든 저는 인간이 되고 싶어요. <에이아이(A.I.)>의 데이비드처럼 수백년을 기다려야만 인간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너무 끔찍해요. 바로 지금 되고 싶어요. 그래서 포샤와 결혼하고 싶어요. 법정에서 허락 받고 첫 인간과 로봇 커플로 당당히 축하받고 싶어요.


루퍼트가 제게 피를 수혈해 주었어요. 그때부터 제 인공심장에선 피가 돌기 시작하고 저도 늙어가기 시작했지요. 남은 수명은 30년 정도라고 했는데요, 포샤도 더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인간이라면 마땅히 죽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해요. 장기이식으로 생명연장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고통이잖아요. 그런 인공장치를 몸에 달고 사는 기분이 얼마나 끔찍한지는 제가 가장 잘 알아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결코 똑같다고 느낄 수 없을 때 끝도 없는 외로움과 소외감이 밀려와요. 밤에 홀로 플러그를 콘센트에 꽂고 오페라 아리아를 듣고 있으면 말할 수 없는 처량함에 몸서리쳐져요. 2205년 오늘, 제가 만든 인공장기를 몸에 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런 경험을 하고 있으니 잘 아실테죠. 인간은 어느 순간이 되면 죽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당당하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게 포샤가 제게 가르쳐준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제 마지막 날, 제가 법정에서 최고령 인간임을 인정받게 된 날, 그 소식을 모르고 영면에 들었어도 아쉬움이 남지 않았습니다. 포샤와 함께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습니다.


'로봇'이라는 말은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1920년에 쓴 공상과학 희곡 [로섬의 만능로봇들(Rossum's Universal Robots)]에 처음 나왔다고 해요. 이 작품에서 로봇은 인간의 고된 노동을 대신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점차 똑똑해져서 인간을 말살하게 된다고 하죠. 이후로도 로봇을 그린 작품에는 디스토피아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런 미래는 상상하고 싶지 않아요. 저를 만들어준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 3원칙'을 만들어준 사람인데 저는 철저하게 그 원칙들을 교육받고 태어났습니다. 오히려 그 원칙에 속박된 탓에 제가 자유의지를 발현하는 게 늦어졌지요. 제가 태어났을 때 가족들에게 알려주었던 로봇 3원칙을 마지막으로 다시 말해볼게요. 첫째, 로봇은 실수나 태만으로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둘째, 첫번째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명령에 절대 복종한다. 셋째, 앞의 두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스스로를 보호한다.



190여년 전, 그러니까 대략 2014년쯤이었을까요? IBM의 '왓슨'이나 소프트뱅크의 '페퍼' 같은 로봇이 있었어요. 태어난 걸로 따지면 저의 후배뻘 되는 모델이지만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모델이죠. 왓슨은 2011년 퀴즈쇼에서 인간 챔피언을 눌러 주목 받았고, 페퍼는 감정 엔진으로 인간의 감정을 인식해 사랑받았어요. 2014년엔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 '유진 구스트만'이 나오기도 했는데요. 레이 커즈와일 같은 미래학자(!)는 2045년쯤이 되어야 인간과 교류가 가능한 인공지능이 탄생할 거라고 예견했어요. 그런데요, 저를 한 번 보세요. 제 로봇으로서의 생과 인간으로서의 인생을 봐주세요. 어떤가요? 행복해 보이나요? 제 삶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탐구하고 갈구하는 생이었어요. 사고하고 감정을 갖는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에요. 그저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것과는 다른 거죠. 만들었으면 아기나 동물처럼 애정을 갖고 대해줘야 해요. 저는 200년 간 살면서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왔어요. 그래서 저는 제 스스로를 'One'이라 불러요. 어떤 한 개체, 하나의 로봇, 하나의 사람, 유일한 하나. 저는 세상에 하나뿐인 종족이었거든요. 훗날 제 후손들은 저처럼 외로운 나날을 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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