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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황소>의 위대한 점은 무엇일까요? 과거에는 경배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봤습니다. 첫 장면에서 Pietro Mascagni의 Cavalleria Rusticana 중 Intermezzo가 흐르면서 흑백 화면이 나타납니다. 한 권투선수가 링 위에서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으며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이 고속촬영으로 느리게 보입니다. 체중을 비현실적으로 감량하고 늘린 로버트 드 니로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고, 매번 다른 방식으로 촬영한 권투 장면에서 편집의 리듬감은 경이롭습니다. 제이크 라 모타의 자전적인 원작을 바탕으로 조셉 카터, 피터 새비지, 폴 슈레이더, 마딕 마틴이 함께 쓴 각본은 어느 캐릭터 하나 낭비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마틴 스콜세지의 연출력은 이 영화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연출, 연기, 촬영, 편집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를 보여준 <성난 황소>는 1980년대 최고의 영화로 곧잘 꼽힙니다.


그런데, <성난 황소>는 정말 그렇게 위대한 영화일까요? 최근 다시 본 <성난 황소>는 이상하게도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잘 만든 영화라는 건 알겠는데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권투 장면에서 피가 튀는 얼굴을 생생하게 잡아낸 인상적인 촬영기법은 이미 이후의 다른 권투영화에서 따라했던 것이기에 흑백화면이 주는 긴장감과 원작으로서의 아우라 외에는 더 사줄 게 없었습니다. 또 제이크 라 모타가 의처증으로 점점 나락으로 빠져드는 설정은 마틴 스콜세지가 이후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좋은 친구들>에서 잘 나가던 갱스터는 한 번의 사고로 나락으로 떨어졌고,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증권 브로커는 마약 때문에 정신이 황폐해졌습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세계에서 인물들은 직업이 권투 선수든, 갱스터든, 증권 브로커든 관계없이 비슷한 세계에 살고 있고 비슷한 삶의 굴곡을 그립니다. 따라서 <성난 황소> 이후의 마틴 스콜세지 영화세계를 알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성난 황소>를 다시 본다는 것은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보며 감탄하는 정도의 감흥 외에는 특별한 점이 별로 없었습니다.



<성난 황소>는 로버트 드 니로-조 페시가 처음으로 함께 출연한 영화입니다. 두 사람은 <파이터>의 마크 월버그-크리스찬 베일처럼 권투선수와 매니저 형제입니다. 두 사람은 이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좋은 친구들> <카지노> 등에 함께 출연하는데 영화 역사상 이렇게 엄청난 시너지를 낸 조합도 참 드물 것입니다. 미국 이탈리안 갱스터 영화 하면 일단 드 니로와 조 페시 조합이 떠오르니까요. 그런데 이건 다른 말로 하면 <성난 황소>에서 드 니로의 형이자 매니저로서 조 페시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약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바로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파이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성난 황소>를 다시 보면서 <파이터>가 얼마나 잘 만든 영화였는지를 역설적으로 깨닫게 됐는데 영화를 배우는 후배들에게 넘기 힘든 <성난 황소>라는 '거대한 산'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으면서도 데이비드 O. 러셀은 주눅들지 않고 자신만의 권투 형제 드라마를 만들어냈습니다.


<성난 황소>의 주인공 제이크 라 모타는 그렇게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현대 복싱의 선구자 슈가 레이 로빈슨이나 에디트 피아프의 연인 마르셀 세르덩보다 덜 알려진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스콜세지가 제이크 라 모타에게 끌린 것은 그가 브롱크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이라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스콜세지는 우디 앨런과 함께 뉴욕에서 영화를 만든 선구자였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또 본인인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제이크 라 모타에게 동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1976년 등장한 <록키>를 위시해 권투영화가 흥행하던 시대 <성난 황소>는 UA 배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23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으니 손해는 아니었지만 UA는 좀 더 센 것을 원했고 감독의 흑백영화에 대한 고집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을 것입니다. 이후 스콜세지는 MGM과 합병한 UA와 결별하게 됩니다.


마틴 스콜세지 초기작에 끈기있게 나타나는 주제인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자기 파괴와 강박증이 <성난 황소>에서도 주요 포커스로 다뤄지는데 이 영화에서 이런 주제들은 매우 건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극중에 라 모타가 마피아와 결탁해 승부조작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은 대기실에서 분노하는 라 모타를 보여준 뒤 '2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넘어갑니다. 마치 별 일 아니었던 것처럼 말이죠. 여성 권리가 증대되던 시대의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스콜세지는 그런 비판에도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전처가 있었지만 이혼과정을 생략해 버리고 바로 비키라는 여성과 함께 살고 있는 라 모타를 보여주는 식입니다. 라 모타의 의처증과 폭력에 기겁해 도망가려던 비키는 무기력하게도 라 모타의 설득에 부부로 남습니다. 영화를 이렇게 건조하게 만든 것은 인물의 삶을 당시의 잣대로 해석하지 않으려는 스콜세지의 의지겠지만 훗날 다시 보는 입장에서는 감독의 그런 의지조차 편견으로 느껴졌고 그래서 참 무책임해 보였습니다.


차가운 흑백화면 만큼이나 건조한 전반적인 영화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뜨거운 순간이 딱 한 장면 있습니다. 그 장면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컬러로 표현되어 있는데 바로 홈비디오로 찍은 화면에 제이크 라 모타와 비키의 행복한 시절이 나타날 때입니다. 1941년부터 1964년까지 제이크 라 모타가 달려온 삶의 궤적은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하드보일드의 세계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바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고 나서도 마치 시합을 준비하듯 개그를 연습합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행복했던 순간, 노이즈 많은 홈비디오로 찍은 순간은 유일하게 따뜻한 컬러 화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속에서 더이상 라 모타는 대기실에 홀로 앉아 과거를 회상할 필요도 없고, 시합 준비를 위해 얼음을 트렁크 속에 부어넣을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영화의 첫 장면으로 돌아와 봅시다. 희미한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사각의 링 위의 고속촬영은 단지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장면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라 모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강박관념을 이미지로 생생하게 재현한 것입니다. 그가 링 위에 있든, 무대 위에 있든 강박관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그는 더이상 홈비디오의 컬러 꿈을 꾸지 못하고 박제된 상태로 흑백 화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점이 제가 이 영화를 오랜만에 다시 보면서 느낀 허무함의 실체였던 것 같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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