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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조금 낯설긴 합니다. 하지만 라즈베리 어워드에서 최악의 아류작에 선정될 만큼 이상한 영화는 아닙니다. 라즈베리 어워드는 이 영화를 작품상, 감독상, 조니 뎁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하기까지 했는데 여기서 수긍할 수 있는 것은 조니 뎁 남우주연상 정도입니다. 조니 뎁은 확실히 이상한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반적인 작품의 질을 떨어뜨릴 정도는 아닙니다.


<론 레인저>의 장점은 캐릭터 콜라보레이션과 멋진 기차 액션입니다. 이 영화는 분명히 서부극인데 마치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는 듯합니다. 그런 이유로 라즈베리는 이 영화를 '최악의 아류작'으로 꼽은 것 같은데요, 그러나 제게는 그것이 장점으로 보였습니다. 서부극의 단조로움을 탈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예컨대 아미 해머의 외모를 보면 멋진 보안관으로 나와야 할 것 같지만 그는 어설픈 '샌님'입니다. 코만치족 톤토와 백인 보안관의 듀오가 마치 슬랩스틱 같은 연기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구성은 지금까지 어떤 서부극에서도 본 적이 없는 구도입니다.


여느 영화였으면 웃음을 담당했을 톤토라는 캐릭터.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웃음기를 쏙 빼고 시종일관 진지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코만치족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힌 과거마저도 아주 무겁습니다. 가벼워보이는 외모와는 전혀 다른 이런 무게감 때문에 사람들이 더 어색하게 느꼈을 듯한데요, 여기에 역시 외모와 전혀 달리 존(아미 해머)이 썰렁한 유머를 가진 '허당'으로 그려져 이 듀오는 예사롭지 않은 균형을 얻었습니다. 가만히 팔짱 끼고 바라보면 두 배우의 콤비네이션이 기묘하게 어울립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더 멋지거나 심하게 웃기는 인물로 부각됐다면 균형이 깨졌을 것 같은 아슬아슬한 조합입니다. 여기에 인육을 먹는 악당 부치 캐빈디시(윌리엄 피츠너)의 카리스마를 더하면 <론 레인저>의 캐릭터들은 전부 개성이 넘칩니다.



사람들이 <론 레인저>의 단점으로 꼽는 것은 인디언에 대한 오락가락하는 태도입니다. 코만치족의 결연한 자세를 보여줬다가 다음 장면에선 장난기 넘치는 톤토를 보여주는 식이어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단점이라기보다는 오락영화의 미덕 아닐까요? <론 레인저>는 <늑대와의 춤을>처럼 진중하게 인디언에게 다가가는 백인을 보여주려는 영화는 아닙니다. 문명사회의 이면을 본 백인이 인디언 편에 서서 백인에 맞선다는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이 영화가 노리는 것은 두 이질적인 남자 사이의 우정과 액션입니다. 우정은 기묘하지만 남다르게 표현됐고 액션은 글자 그대로 황홀합니다.


<론 레인저>의 영상은 어떤 영화와 비교해보더라도 세공을 많이 들여서 와이드스크린이 꽉 차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화면 전환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막을 건너가는 두 사람이 물잔에 비친 모습으로 바뀌더니 레이텀 콜(톰 윌킨슨)의 수하가 그 잔에 약물을 타 레베카(루스 윌슨)에게 먹입니다. 그냥 커팅으로 끊어갔을 때와 비교하면 얼마나 풍부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액션이 절정에 달한 장면은 단연 클라이막스의 기차 추격 시퀀스입니다. 개인적으로 열차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론 레인저>의 기차 액션은 그중에서도 탑클래스입니다. 두 대의 열차가 서부대륙을 나란히 달리고 톤토는 그 사이에 사다리를 놓아 두 열차 사이를 오갑니다. 앞서 두 주인공의 연기가 슬랩스틱 같다고 했는데 이 열차 장면에서 톤토가 보여주는 연기야말로 <대열차강도>의 버스터 키튼 못지않은 슬랩스틱입니다. 영화내내 끈질기게 대결하는 악당 캐빈디시, 콜 형제와 엎치락뒤치락 하는데 열차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립니다. 와이드스크린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최고의 쾌감을 선사하는 장면입니다.


결과적으로, <론 레인저>에서 실망스러운 것은 조니 뎁 뿐이었습니다. 조니 뎁은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빠져나와 전혀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많이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영상미와 오락성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훌륭한 조합을 이루고 있는 수작입니다. 조니 뎁이라는 이름값에 눌려 '허당 영웅' 아미 해머나 '잔혹 카리스마' 윌리엄 피츠너, '상아다리 총잡이' 헬레나 본햄 카터마저 묻혀버린 것은 무척 아쉽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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