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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너무 길게 써온 것 같아 오늘부터 블로그에 올리는 글의 길이를 조절하려 합니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이야기는 최대한 빼고, 제 생각 위주로 짧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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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이비드 O. 러셀의 영화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도 좋았지만 <아메리칸 허슬>은 훨씬 말끔하다. 감독이 영화 전공자는 아니고 영문학 전공자로, 교사로 일하며 시나리오를 쓰다가 독립영화로 데뷔했던데 한국으로 따지면 이창동 감독 케이스?


2. 제목은 <아메리칸 허슬>인데 캐릭터는 그다지 미국적이지 않다. 사기꾼과 팜므 파탈, 공명심 강한 FBI 요원, 그들에게 말려들어 인생 망친 시장까지. 이들중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캐릭터는 하나도 없다. 다들 뭔가 사연이 있고 또 어긋나 있다. 그들의 목표는 제각각이다. 협력을 모른다. 어쩌면 그게 미국적인 '허슬'인지도 모르겠다. '허슬(Hustle)'은 척척 해치운다는 뜻이다.


3. 영화는 경쾌하고 시간가는 줄 모른다. 배우들이 좋아서인지 연기 앙상블이 화려하고 대사들도 좋다. 이런 영화는 보통 FBI가 주인공이지만 사기꾼의 시점으로 바꾼 것도 신선했다. 사기꾼의 시점으로 보니 마음이 흔들릴만큼 착한 정치인이라니. 이런 정치인 캐릭터가 또 있었나? 아참, FBI 요원을 엿먹인 마지막 반전도 좋았다. 결국 이 영화는 사기꾼의 영화라는 걸 수미쌍괄로 보여준 장면이다.


4. 가발, 세탁소, 매니큐어, 영국식 억양 등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클리셰가 많이 쓰였다. 어빙(크리스찬 베일), 시드니(에이미 아담스), 리치(브래들리 쿠퍼)는 모두 헤어스타일에 대단히 신경을 많이 쓰는 인물들이다. 첫 장면에서 어빙은 가발로 정교하게(!) 민머리를 가리고, 시드니와 리치는 집에서 머리카락을 헤어롤로 말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남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가리는 것에 예민한 인물들이다. 그런 성격은 이야기 전개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시드니는 어빙의 세탁소에서 남들이 찾아가지 않은 옷들을 입어보는데 그녀는 이후 다른 사람을 사기치는 삶을 살게 된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반면 로잘린(제니퍼 로렌스)의 매니큐어는 집에 숨어 지내던 그녀가 시드니와 바람난 남편 어빙을 불러들이는 마법의 향기 같은 것인데 그녀는 이 매니큐어로 카마인(제레미 레너) 시장 부부와 소통한다는 점에서 세상과 연결해준 도구로도 쓰였다.


5. 주요 등장인물 다섯 명의 캐릭터가 뚜렷하다. 크리스찬 베일은 얼굴 클로즈업이 잡히기 전까지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대머리에 배볼록한 중년 아저씨라니. 게다가 배트맨의 전지구적인 고뇌가 아니라 마피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찌질한 사기꾼의 고뇌라니. 반전 캐릭터의 묘미로는 가장 충격적이다. 제레미 레너와 함께 건배하는 장면은 DC와 마블의 슈퍼히어로인 배트맨과 호크 아이의 만남인 셈인데 그래도 제법 불꽃 튀더라.


6. 브래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캐릭터는 두 사람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서 연기한 캐릭터와 왠지 닮은 것 같다. 팜므 파탈이어야 할 에이미 아담스는 과감한 의상을 입고 나오고는 있지만 고전적이고 순박한 마스크 탓에 그다지 이 역할에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마지막으로 로버트 드니로는 그 역할에 딱이지만 너무 늙었더라.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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