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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를 좋아하는 사람과 이 영화는 사기라고 생각하는 사람. 공교롭게도 전 후자였습니다. 인생이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뭘 꺼내먹을지 모른다니. 겉만 그럴듯한 초콜릿 포장지 같은 말이어서 대체 무슨 뜻인지 공허하게 느껴지기만 했습니다. 베트남전이 벌어진 1960년대 초반부터 레이건 대통령 저격 미수사건이 벌어진 1980년대 초반까지 미국의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지만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더군요. 사운드트랙의 수많은 좋은 노래들과 로케이션의 멋진 경치들은 그나마 이 영화를 기억하게 해준 이유였습니다.



<포레스트 검프>가 세상에 나온지 20년이 됐습니다. 한국에선 1994년 10월 15일에 개봉했더군요. 성수대교 참사가 발생하기 딱 6일 전입니다. 서울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이나 존 레논과의 합성 영상으로 뉴스에까지 소개된 영화였습니다. 또 날아가는 깃털이 주인공 발 밑에 떨어져 이야기를 시작하는 도입부와 엔딩은 이후 다른 영화들이 비슷하게 따라하기도 했었죠.


그로부터 20년 만에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봤습니다. 옛날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최초의 경험과 많이 다릅니다. 그때 전혀 알 수 없던 것들을 느낄 수 있어요. 좋은 영화일수록 그 차이는 두드러져서 나이별로 다른 감상이 나옵니다. 신기한 경험이지요. 만약 기억속에 가물가물한데 자꾸만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면 시간 내서 한 번 다시 보기 바랍니다. 분명 뭔가 새롭게 느끼는 점이 있을 겁니다.



20년 전의 포레스트 검프


영화는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 분)가 벤치에 앉아서 옆에 앉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검프의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에피소드마다 바뀝니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가버리거나 혹은 검프의 이야기를 믿지 않아요. 하지만 검프는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이죠. 꽤 러닝타임이 길어서 놀랐는데 후반부는 꼭 요즘영화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지나치게 늘어지는 경향이 있더군요.


영화의 플롯은 단순합니다. 아이큐 75의 저능아인 포레스트 검프가 특유의 순수함으로 파란만장한 미국 역사에서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한다는 것이죠. 그는 과연 벌이는 일마다 승승장구하며 미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에 영향을 끼칩니다. 군대는 체질에 딱 맞았다고 소회하고, 탁구는 소질이 있었다고 말하며, 달리기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었고, 새우잡이는 친구와의 약속이어서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런 그가 가장 긴장한 것은 제니(로빈 라이트 분)와의 사랑,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와의 관계였습니다.



발 밑에 떨어진 깃털로 시작해서 신발을 신고 달리는 이야기. 그런데 이 영화를 다시 봐도 역사적인 배경을 어떤 맥락으로 끼워 맞춘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검프의 엄마는 KKK 단원인 포레스트 장군의 이름에서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마침 검프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소는 버스정류장(흑인 인권운동의 시발점!)이고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은 흑인입니다.


흑인 부바 검프의 엄마는 평생 하녀로 새우요리만 하다가 나중엔 검프에게 받은 돈으로 백인 하녀를 부립니다. 그래서 혹시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싶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이 그는 말콤엑스를 닮은 지하조직에서 제니와 함께 쫓겨나거든요. 또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에 이어 존 레논의 'Imagine' 가사를 TV 토크쇼에서 대사로 하는 장면에서는 평화주의를 이야기하려는 것인가 싶지만 검프는 새우잡이 배를 타고 나가 부자가 됩니다. 존 레논이 외쳤던 무소유가 아닌 '부바검프'로 떼돈을 번 억만장자가 된 것이죠.



결국 남은 것은 한 가지 가능성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한 포레스트 검프라는 인물의 위대함입니다. 그는 바보처럼 보이지만 전쟁이 필요할 땐 전쟁을 했고, 반전이 유행일 땐 반전을 했으며, 중국과 외교가 시작될 때 탁구를 쳤고, 모두들 부자가 되고 싶어할 때 부자가 됐습니다. 어느 한 카테고리에 끼워맞출 수 없는 특징없는 삶이 검프 그 자신인 거죠. 그렇게 보면 검프라는 인물에 동정심이 생기는 까닭은 그의 아이큐가 낮아서라기보다는 그가 어떤 신념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늘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해냈지만 그건 그냥 바보같은 일이었던 거죠.


TV 화면에서 계속해서 보여지는 것은 케네디, 포드, 레이건이 암살 위협에 처했다는 뉴스들입니다. 케네디 암살과 닉슨 사임 영상이 등장할 때는 역사를 담았나보다 했지만 포드와 레이건이 나오는 후반부에 이르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영화가 현실사회의 위험을 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가 불안정하고 위험하니 너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요즘식으로 말하면 '자기계발' 스토리의 20년 전 버전 메시지인 것이죠.


세상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스스로 힘을 기르라는 자기계발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포레스트 검프처럼 용기 있고 운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새우잡이 배의 에피소드에서도 보여졌듯이 다 파손되고 유일하게 한 척만 살아남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 성공한 단 한 척의 배가 되기 위해 새우잡이 배를 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자기계발'의 논리 이면의 허무함입니다. 초콜릿 상자에서 '뽑기운'이 나쁘다고 인생도 나빠진다면 그처럼 비극적인 사회가 또 있을까요?



20년 후의 포레스트 검프


여기까지라면 20년 전의 감상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포레스트 검프의 눈에서 눈물을 보는 순간 어쩌면 내 생각이 조금은 틀리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전히 포레스트 검프는 자기계발의 화신으로 보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 이유는 그의 성취보다는 당당한 '태도'에 있었습니다. 그가 달리기를 계속한 것은 입신양명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제니를 위해 혹은 스스로를 위해서였습니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자꾸만 떠나는 제니를 그는 묵묵히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데 결국 생각하기 위해 3년을 넘게 달리기까지 합니다. 마침내 만난 리틀 포레스트를 바라보며 그는 제니에게 묻습니다. 그가 본인과 달리 똑똑한지를. 그가 똑똑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가에는 눈물이 촉촉합니다. 댄 중위(게리 시니즈 분)가 인생을 책임지라며 윽박지를 때도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는 아이큐 75라는 컴플렉스를 평생 가슴에 담아두었던 거죠. 이 장면에 그 응어리진 울분이 다 들어 있습니다.



사실 그가 해낸 것들은 인내와 끈기가 없으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습니다. 밤새 탁구를 연습하고, 총알이 빗발치는데 전우들을 구해내고, 3년 넘게 미대륙을 달리고, 아이들에게 놀림받아도 참아낸 것은 결코 초콜릿 상자에서 초콜릿 하나 꺼내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은 아닙니다. 그는 사회의 풍파 속에서 수많은 역경을 딛고 강한 자신으로 우뚝 섰습니다. 그 경지는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당당해질 수 있는 것은 사회의 모순을 외면해서도 아니고 희생하지 않아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포레스트 검프의 삶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는 세상을 다 가졌지만 사랑하던 여자는 갖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가 데이지라는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처럼 검프 역시 한 사람만 보고 달렸습니다. 그러나 개츠비처럼 검프도 사랑했던 여자를 떠나보내고 맙니다. 그 뒤에 남은 것은 고독 뿐이었죠. 그런데 그 고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늙어버린 자의 고독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순수하게 자신을 향해 달렸던 자만 맛볼 수 있는 종류의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어떤 사회 시스템 하에서도 당당하게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제가 20년 전 검프를 오해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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