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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에서 온 소년>은 한국에서 <잔혹한 음모>로 소개된 영화입니다. 테리 길리암 감독의 <브라질>의 한국 제목이 <여인의 음모>였는데 영화제목 작명가들은 '브라질'은 '음모'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이 영화는 몇 가지 카테고리에 걸쳐 있는 영화입니다. 장르적으로 따지면 추적 스릴러, 소재로 보면 SF와 미친 의사, 그리고 나찌 추종자들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1978년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말년 작품으로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혹성탈출> <패튼> <빠삐용>으로 만개했던 재능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로 이야기의 핀트가 맞지 않고, 음악의 사용도 허술하고, 긴장감을 유지하지도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두 가지 이유로 기억할 만합니다. 첫째는 복제인간이 나오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복제인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이고, 이후에도 대개 미래사회를 그린 영화에서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의 초창기 버전을 이 영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1970년대 생물학의 발전으로 개구리와 토끼 복제가 성공했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복제도 가능할 것이라는 상상력이 이 영화의 모태입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아이라 레빈이 쓴 동명의 소설로 1976년에 출간됐습니다. 아이라 레빈은 [로즈마리의 아이] [죽음의 키스] 같은 걸작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하죠. 그는 복제인간 아이디어에 히틀러가 갖는 상징성을 버무려 이야기로 녹여냈습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복제인간' 같은 1990년대 한창 유행하던 질문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히틀러를 복제한 아이가 환경에 의해 히틀러처럼 될 수 있는지, 즉, 인간을 만드는 것은 유전자인지 혹은 환경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둘째는 그레고리 펙과 로렌스 올리비에의 불꽃튀는 연기대결입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을 유혹하던 그레고리 펙은 이 영화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백발의 나찌 추종 의사 멩겔레 박사로 나옵니다. 나찌 시절 유태인을 비롯해 닥치는대로 생체실험을 하던 그는 나찌가 몰락한 이후에 나찌 추종자들과 함께 파라과이에서 호의호식하며 재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는 히틀러와 꼭닮은 복제인간 90여 명을 만들어 히틀러의 실제 환경과 비슷한 세계 각국의 가정에 입양시킨 뒤 아이가 15세 되는 해 아버지들을 죽이려 합니다. 실제 히틀러가 15세때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이죠. 그레고리 펙은 <오멘>에서 악마의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역할을 맡았었는데 이 영화에서 본인이 악마 같은 아이를 지키려는 상황과 기묘하게 오버랩됩니다.


한편 그를 쫓는 '나찌 헌터' 유태인 리버만 역할은 로렌스 올리비에가 맡았습니다. 셰익스피어 희곡이 잘 어울리는 이 영국 배우는 이 영화에서는 백발이 듬성듬성 빠진 노인이 돼 멩겔레를 추적하기 위해 '독고다이'로 뜁니다. 리버만이 오스트리아 출신 유태인이기 때문에 독일식 악센트가 강한 영어를 구사하는데 특유의 꼬장꼬장한 말투로 인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연기 내공을 보여줍니다. 로렌스 올리비에와 그레고리 펙은 실제 9살 정도 나이차가 나는데 두 사람이 엉켜붙어 싸우는 클라이막스 장면은 대배우들의 젊은 시절 아우라 때문인지 더 망가진 듯 보여 안쓰럽기까지 하더군요.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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