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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 걸작을 모처럼 다시 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스릴러의 상찬이다. 대사도 말끔하게 쓰여졌고 이야기 전개나 복선도 깔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다들 어찌나 신사 숙녀들인지 고전영화 특유의 매너와 기품이 넘친다.



2. 이 영화를 유명하게 만든 두 장면. 바로 시카고 옥수수밭의 경비행기 공격 장면과 사우스 다코다주 래피드시티의 러시모어산에서의 추격 장면인데, 전자는 다시 봐도 감탄스러운데 반해 후자의 경우 많이 아쉽다. 우선 경비행기 공격 장면은 초시계를 놓고 컷 수를 계산하고 싶을 만큼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이 정교하다. 많은 영화서적에 예제로 나오기도 하는데 지금 이대로 다시 만들어도 서스펜스를 유지할 수 있을 듯하다.



허허벌판에서의 기다림 끝에 한 남자가 도착한다. 드디어 조지 캐플란을 만나는 줄 알았더니 그 남자는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타면서 남자가 무심하게 한 마디 한다. "이상하네. 여긴 농작물도 없는데 저 비행기는 비료를 뿌리고 있네." 이 대사가 없이 경비행기가 공격하는 것과 그 대사 후에 경비행기가 공격하는 것은 전혀 다를 것이다. 다만 의아한 것은 왜 경비행기에서 바로 총을 쏘지 않느냐는 것. 그냥 겁만 주려고 한 것인가? 또 왜 유조차를 들이받고 자폭하는지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악당도 그다지 프로페셔널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그럭저럭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듯하다.


반면 러시모어산에서 대통령 조각상을 내려오는 추격전은 예전의 긴박감을 느낄 수 없었다. 클리프행어가 되기에 이브 켄달(에바 마리 세인트 분)이 하이힐을 신고 절벽을 내려오는 것부터 이상하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부에 빌딩 유리창에 비친 사선 느낌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생각보다 사선 느낌이 잘 안 살아난 듯싶다.



3. 1959년 작품이니 55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엔딩이 왜 이래"라고 하소연하고 싶을 만큼 결말이 급작스럽다. 물론 히치콕 영화가 대부분 급박한 엔딩으로 끝나긴 한다. 하지만 그래도 절벽에 매달린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올라왔는지 정도는 보여줘야하는 것 아닌가. 로저 쏜힐(캐리 그란트 분)의 악력으로 켄달을 끌어올렸다고? 아니면 FBI 요원이 도와주러 내려올 때까지 버텨냈다고? 기차에서의 로맨스나 옥수수밭 비행기 추격씬에서 그렇게 인내심을 갖고 긴장감을 조성하더니 엔딩은 왜 그렇게 조급하게 끝냈는지 모르겠다.


히치콕은 쏜힐이 캔달을 끌어올리는 장면을 기차의 짐칸에 마련한 침실로 끌어올리는 장면과 연결시키더니 곧장 기차를 동굴 속으로 보내버린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이 결혼하고 섹스하기를 바랐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황스러운 엔딩이다.



4. 쏜힐은 마마보이다. 첫 장면에서 납치됐다가 탈출한 뒤 경찰서에서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그의 엄마다. 그런데 막상 등장한 엄마 클라라 쏜힐(제시 로이스 랜디스 분)이 꽤 젊어서 놀라운데 엄마는 아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것이 로저에게는 이미 두 번의 이혼경험이 있는데다 이전에도 술마시고 사고 친 적이 꽤 있었던 모양. 그렇게 본다면 이 영화의 이야기 자체가 로저가 상상으로 지어낸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다. 시카고행 열차에서 만난 켄달과 사랑에 빠져 그녀에게 허구의 이야기를 해주는 상황 말이다.



엔딩에 기차 짐칸에 나란히 누운 두 사람을 보여주는 것은 마침내 그녀와 결실을 맺게 됐음을 알려주는 구성일테고. 어찌됐든 재미있는 것은 마마보이인 쏜힐을 여자들이 너무나 좋아한다는 사실. 너무 매력적인 남자 캐릭터에 샘이 나서 감독이 마마보이라는 요소를 하나 집어넣은 것은 아닐까?



5. 허구의 인물 조지 캐플란을 추적하다가 결국 스스로 허구의 인물이 되어버린 쏜힐. 그의 직업은 광고를 만드는 사람이다. 광고는 허구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의 처지와 맞물린다. 캔달은 캐플란이 된 쏜힐을 향해 공포탄을 쏜다. 허구의 인물을 향해 허구의 총알을 쏜 셈이다. 필립 반담(제임스 메이슨 분)이 경매장에서 확보한 도기 내부는 필름으로 채워져 있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 인물들은 대통령 조각상을 밟고 내려온다. 이렇듯 이 영화는 실제와 허구, 진짜와 가짜 사이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계속해서 던진다.


쏜힐이 스스로 캐플란 행세를 하기로 하고 노스웨스트 항공으로 사우스 다코타로 날아가는 장면은 영화의 전환점이자 가장 중요한 장면인데 바로 이 지점이 지금껏 허구로 오인받아온 주인공이 스스로 허구를 선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밴담은 계속해서 그를 캐플란이라고 여길 테지만 쏜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캐플란을 또다른 자아, 즉 '얼터 에고'로 받아들이게 된 셈이다.


6. 고로, 이 영화를 섹스를 암시하는 기차가 동굴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을 결론으로 정해놓고 다시 읽어보자면, 처음 만난 여자는 마마보이인 남자를 계속해서 유혹하지만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다가 결국 남자가 자신의 얼터 에고를 받아들이고 나서야 결혼에 성공하는 이야기다. 그가 엄마 품을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여자는 침대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싸이코>와 <새>에서도 그랬지만 히치콕 영화에서 엄마는 남자 주인공을 자신의 욕망 안에 가두어놓는다. 그 굴레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영화가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이고 실패한 영화가 <싸이코>와 <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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