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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을 원치 않아요

난 마술을 원하죠

네, 그래요, 마술

난 사람들에게 마술을 걸고

사실을 말하지 않죠

뭐가 진실이어야 하는지를 말하죠

그게 죄라면 벌을 받겠어요


한정된 소수 인물에 주로 집에서만 펼쳐지는 이야기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상징과 알레고리로 가득한 작품이다. 미국 사회에 대한 은유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상징까지. 영화가 시작하면 블랑쉬 드보아(Blanche Debois)라는 프랑스 이름을 가진 여자가 기차역에 나타난다. 카메라가 줌아웃 하면 한 역무원이 서 있다. 그녀는 그에게 묻는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야하는 데요. 그 다음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고, 여섯 정거장을 가면 엘리시안 필즈라던데요."


세상에, 요즘에도 이런 직설적인 대본을 쓸 수 있는 간 큰 작가가 있을까? 욕망을 타고 죽음을 지나 낙원으로 가겠다니. '개콘'에나 나올 법한 대사 아닌가? 엘리시움(Elysium)은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들이 사는 '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블랑쉬는 자발적으로 그곳으로 간다. 왜? 나는 소중하니까.



엘리시안 필즈에는 임신중인 여동생 스텔라가 살고 있다. 스텔라는 남편을 소개시켜준다. 그의 이름은 스탠리 코왈스키. 폴란드계다. 여기서부터 전혀 다른 두 남녀의 대비가 시작된다. 블랑쉬가 프랑스 귀족, 현실 도피, 몽상가, 여성성, 시, 거짓말, 환상, 허영심, 부드러움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스탠리는 폴란드 노동자, 현실, 직선, 남성성, 폭력, 야성, 관능, 가부장, 동물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당연히 둘은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않는다. 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이 '나쁜 남자'가 '현실 도피' 여자와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리는 것과 달리 이 영화에서 블랑쉬와 스탠리의 갈등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블랑쉬는 비밀이 많은 여자다. 그녀는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사실이 괴로워 햇빛을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면서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 합리화한다. 그녀의 삶은 그녀의 의지에 반해 자꾸만 나쁜 방향으로 흘러왔다. 사랑했던 16살 소년은 동성애자라는 게 밝혀지자 권총으로 입 안을 쏴 자살했고, 충격을 받은 그녀는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다가 마을에 소문나 쫓겨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당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정신이 쇠약해진 나약한 영혼이다.



죽음은 욕망의 반대말 (Death: The opposite of desire)


남자는 왕이라고 스스로를 칭한 스탠리,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여동생 스텔라, 블랑쉐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녀의 과거와 나이를 알게된 뒤 변해버린 미치. 블랑쉬가 스탠리에게 농락당할 때 꽃을 파는 한 노파가 집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그녀에게 노파가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는 죽음 그 자체다. 그래서 그녀는 목욕을 한다. 스스로 가장 순결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블랑쉬가 낙원이라고 생각했던 이곳은 결코 엘리시움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지하세계 맨 아래에 철문으로 둘러싸여 햇빛이 들지 않는 지옥으로, 죄를 지어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가는 타르타로스(Tartarus)였기에, 그녀는 씻고 또 씻는다.


스텔라의 아기가 태어나고, 스탠리는 여전히 친구들과 포커를 치고 있고, 블랑쉬는 정신과 의사가 데려간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지옥에서 마침내 스텔라가 아기를 안고 외친다. "난 이제 떠날 거야.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야." 지금 보면 소극적이지만 당시로선 큰 울림을 주었을 외침이다.



블랑쉬 역의 비비안 리, 스텔라 역의 킴 헌터, 미치 역의 칼 말든은 이 영화로 195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 영화에서 세 명의 배우가 연기상을 받은 것은 이후 <네트워크>가 나오기 전까지 처음이었다.


4:3 비율의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력만으로 승부하고 있는데, 말론 브란도의 짐승 같은 매력이 철철 넘쳐흐르고, 눈동자가 풀리는 비비안 리의 변해가는 표정도 일품이다. 엘리아 카잔 감독 1951년 작품.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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