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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르윈(Llewyn). 아이리쉬계 이름이라 발음이 어려워 어떤 남자는 그를 엘윈이라 부른다. 그의 직업은 포크 싱어. 400번 넘게 공연을 했지만 그를 알아봐주는 사람은 없다. 듀엣을 하던 친구가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뒤에 그는 솔로앨범을 내며 활동하고 있지만 하루하루 친구 집 소파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인생에 내일은 보이지 않는다. 항해사였던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투병중이고, 누나는 차라리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힘들게 버텨온 음악의 길을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


<인사이드 르윈>은 1960년대 초반 가난한 뉴욕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일주일 동안의 삶을 따라가는 영화다. 모두가 밥 딜런이 될 수 없던 시대, 그러나 음악의 꿈을 포기할 수 없는 르윈은 오늘도 기타와 고양이를 데리고 하루를 산다. 당시 실제 활동하던 포크 뮤지션 데이브 반 롱크를 모티프로 한 단촐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삶의 아이러니에 관한 이야기로 오밀조밀 살을 붙이고, 포크송을 가미했더니 코엔 형제다운 블랙코미디가 탄생했다.


영화가 시작하면 르윈(오스카 아이작 분)은 ‘가스등’이라는 술집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조지 큐커 감독의 스릴러 영화 <가스등>의 배경처럼 음침한 이곳에서 한 신사가 그를 불러낸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그를 때려눕힌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기에. 그러나 영화는 그 해답을 수미쌍괄식으로 마지막에 가서야 보여준다. 대단한 음모가 있다거나 뭔가 사연이 많을 법한 미스터리를 기대했다면 르윈의 삶은 그 기대를 배신할 것이다. 그 사건이 벌어진 계기는 아주 즉흥적인 것이었지만 거기까지 이른 과정을 알기 위해서는 이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르윈의 삶을 알지 못하고서는 그날 밤 폭력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마치 오선지의 도돌이표처럼 며칠 전으로 돌아간다. 그날은 그가 고양이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책임감을 느낀 날이기도 했다.


하룻밤을 신세진 골페인 교수의 집에서 탈출한 이름 모를 고양이. 르윈은 그 고양이를 데리고 친구의 여자친구인 진(캐리 멀리건 분)의 집으로 간다. 먼저 배고픈 고양이에게 우유를 준다. 르윈이 고양이에게 우유를 주는 장면은 이후에도 몇 번 더 나오는데 매번 스스로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할 때다. 르윈에게는 짐(저스틴 팀버레이크 분)과 진이라는 두 친구가 있다. 르윈과 짐 모두 진을 좋아했지만 진은 짐을 좋아했다. 진은 계속해서 빌붙는 르윈에 진절머리가 나던 참이다. 그런데 누구의 아이인지 모르는 임신까지 했다. 진은 이 상황이 너무 끔찍하다. 짐의 아이가 확실하다면 함께 미래를 설계하겠지만 르윈의 아이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을 수는 없다.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르윈은 이제 낙태수술 비용까지 마련해야 한다.


르윈이 보기에 짐에게는 재능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 유치해 보이는 그의 노래를 좋아한다. 르윈은 짐의 세션 아르바이트를 하러 녹음실에 들러 함께 연주하고는 미련 없이 저작권을 포기하고 돈을 받아 나온다. 이 돈을 들고 의사를 만날 것이다. 그런데 의사는 돈을 받지 않고 그가 몰랐던 소식을 알려준다. 2년 전 여자 친구였던 다이애나가 낙태수술을 받지 않고 고향으로 가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어딘가 자신의 아이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말에 르윈은 기분이 묘하다.



짐과 세션을 함께 했던 남자가 자신의 친구가 시카고에 가려고 하는데 기름 값을 일부 부담하고 함께 갈지 묻는다. 거기에서 잘하면 공연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동행하게 된 두 남자는 아주 독특하다. 한 명은 뚱뚱한데다 만성 병을 앓고 있는 남자 롤랜드 터너(존 굿맨 분), 다른 한 명은 운전하며 한 마디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괴상한 시를 읊는 무명가수 알 코디(아담 드라이버 분)다. 어디를 함께 가더라도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두 남자와의 동행. 설상가상으로 알 코디는 음주운전으로 오인 받아 경찰에 연행된다. 르윈은 기타를 챙겨 차를 빠져나온다. 뚱뚱한 남자와 누구의 소유도 아닌 길에서 주운 고양이를 차에 그대로 둔 채 홀로 히치하이킹을 한다. 과연 시카고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러나 시카고에서 확인한 것은 평소와 비슷한 반응 뿐이었다. 재능은 있지만 돈은 안 되겠다는 것. 수염을 깍고 3인조 코러스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것. 그는 차를 얻어 타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허무하지만 그게 인생이다. 늦은 밤 고속도로를 운전하다 고양이를 친다. 범퍼에 핏자국이 선명하다. 하지만 다행히 멀리 살아있는 고양이의 실루엣이 보인다. 또 표지판에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낙태하지 않은 다이애나의 아이가 지금쯤 두 살이 됐을 텐데 거기로 가야할까. 망설이던 르윈은 결국 뉴욕으로 돌아온다.


골페인 교수의 집으로 오니 이미 고양이가 돌아와 있다. 진의 집을 떠난 고양이가 스스로 자신이 살던 집을 찾아 돌아온 것이다. 교수의 부인은 고양이의 이름이 ‘율리시즈’라고 말해준다. 맙소사! 고양이 이름이 율리시즈라고! 트로이를 함락시킨 그 율리시즈? 그때서야 르윈은 그와 비슷한 신세인 고양이(심지어 영화 초반에 전화 통화하던 여자는 르윈을 고양이 이름으로 혼동했다)에 자신이 동화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삶의 여정은 율리시즈의 여정과 얼마나 비슷하고 또 다르던가.


마침내 그는 음악을 포기하고 항해사가 되려고 하지만 그마저 돈이 없어 할 수가 없다. 결국 다시 돈을 벌기 위해 가스등으로 간다. 율리시즈가 돌아온 것이다. 수미쌍괄이라고 했던 영화 첫 장면의 도돌이표로 돌아온 셈이다. 가스등의 사장은 자신이 진과 잔 적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 말에 열 받은 르윈은 무대에 올라온 나이 든 여자 가수를 향해 당신이 그 실력으로 무대에 오른 걸 보니 사장과 잔 것 아니냐며 욕설을 퍼붓는다. 영화 첫 장면의 폭력은 바로 이 욕설 사건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 르윈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다. 뮤지션으로도 실패했고 항해사가 될 돈도 없다. 그러니 몇 대 얻어맞고도 그 할머니 가수의 남편을 향해 작별인사를 할 여유를 갖게 된 것이다. 그가 부른 잉글랜드의 헨리 8세와 프랑스 왕비의 노래 가사에서 헨리 8세는 부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왕비는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말았다. 그러나 현실의 헨리 8세는 부인이 모욕당하는 것을 참지 않고 되갚아주러 왔다. 그래서 르윈은 그 남자를 향해 프랑스어로 작별인사를 한다. “Au revoir!”


도돌이표를 빠져나온 르윈의 삶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그는 계속 소파를 전전하며 힘겨운 뮤지션의 삶을 살까? 혹은 작별인사를 했으니 이제 그 돈을 들고 다시 항해사 자격증을 받으러 갈까? 코엔 형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중요한 갈림길에서 영화를 끝맺는다.



PS) 르윈이 무대에서 내려온 뒤 기타와 하모니카를 들고 다음 노래를 부르기 위해 준비하는 가수가 바로 밥 딜런이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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