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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새똥으로 위장하는 곤충이 있대."
"근데?"
"그게 꼭 너 같다."
P.20


이렇게 아픈 아이와 가족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출간 때도 읽지 않았었다. 그런데 뒤늦게 이 책을 집은 것은 김애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비행운]의 연필을 꾹꾹 눌러 쓴 듯한 정성스런 문장들은 오랫 동안 기억에 남았다. 2013년의 마지막 날과 2014년의 첫 날을 [두근두근 내 인생]과 함께 한 이유다.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아니 작가에 대한 믿음은 헛되지 않았다. 왜 20대 여성들이 김애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감성적인 문장들에 담긴 인생에 대한 성찰은 책장을 넘기는 내내 가슴 속에 아련하게 새겨졌다.

17세에 아들을 낳은 34세 부부. 그러나 조로증에 걸린 아들은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같다. 너무 빨리 늙어버려 청춘을 모르는 아들 아름이는 점점 눈이 멀어 간다. 생이 끝나기 전에 그가 하고 싶은 것은 실컷 책을 읽고 세상의 더 많은 단어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렇게 태어나게 만든 조물주를 원망하는 것을 넘어 자신을 만든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해야 한다. 에필로그에서 마치 에덴의 동산에 떨어진 아담과 이브처럼,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 벌이는 본성 가득한 행각을 늘어놓는 것은 그것이 아름이가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게 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원망한 적은 없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그럼."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뭐를?"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P.170


작가는 '애늙은이'인 아름을 화자로 그가 집과 병원에서 겪는 상황과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좁은 세상에 사는 아이를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통로는 책과 TV. 아름은 스스로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 글을 쓰면서 무언가를 남기려 한다. 이 노력은 어쩌면 작가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단의 많은 신인 작가들이 느낄 법한 막막한 상황을 아름이가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꼭 신인 작가들이 아니더라도 사회 속에 이제 막 내던져진 20대라면 아름이를 통해서 두려움을 치유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름은 남자 아이지만 성욕이 없어서 여성 작가가 자신을 투영하기 더 쉬웠을 수도 있다.


"싸락눈, 만년눈, 소나기눈, 가루눈... 아, 그리고 세상에는 도둑눈이란 이름의 눈도 있대요. 현미경으로 찍은 눈 결정 모양도 봤어요?"

"그럼."
"나는 그게 참 이상했는데?"
"뭐가?"
"뭐하러 그렇게 아름답나. 어차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땅에 닿자마자 금방 사라질 텐데."
P.287


곧 사라질 눈송이처럼, 일찍 늙어 사라질 아름이를 위해 작가는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아이였는지를 묘사한다. 그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함부로 울부짖지 않는 의젓함을 칭송한다. 실패하고 싶지만 실패할 수도 없는 좌절을 담담하게 고백하는 아이의 용기를 마주본다. 자신의 근원을 알게된 뒤 운명을 받아들이고 끝내 순응하는 소극적인 행위 이면에 격렬한 투쟁의 과정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세상에 대한 가득한 호기심은 아름이를 더 아름답게 만든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영화 판권을 구입한 영화사 집이 이재용 감독, 강동원, 송혜교 주연으로 곧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숲속에서 처음 만나 얼떨결에 아이를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영상처럼 떠올랐는데 이상하게 아름이의 얼굴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애늙은이의 모습이란 어떤 걸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늙은 어린 아이일까? <오! 브라더스>에서 조루증(길포드 증후군)을 앓던 이범수보다는 더 속이 깊은 아이여야 할 것이다. 한가지 더, 책에는 인물에 대한 꼼꼼한 묘사에 비해 생각보다 에피소드가 많지 않다. 영화로 만든다면 더 많은 에피소드가 필요할 듯하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세상에 없던 생각]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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