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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대가들을 다룬 책이라고 하면 절반 정도만 그렇고 나머지 분량은 적당히 채워져 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12명의 작가들 면면이 전부 대단한 이름들입니다. 게다가 인터뷰의 내용도 훌륭해요.

500페이지 가량 되는 이 책은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흥미진진해지는 책입니다.


하늘 아래 그냥 뚝 떨어진 것은 없다고 하죠. 작가는 천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가 만든다고도 하고요.

소설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들 역시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영감을 받는지, 어떻게 쓰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나마 그들의 작품과 함께 떠올려보게 되네요.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M. 포스터


대부분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이지만 몇몇 작가들은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때론 읽지 않은 책의 내용을 이야기할 땐 적응하기 힘들기도 했습니다만 작품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 이 책을 따라가는데 크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어쨌든 궁금한 것은 작가들이 그 작품을 쓸 때의 상황이니까요.


이 책은 1953년 창간된 문학잡지 [파리 리뷰]에 실린 인터뷰를 번역한 것입니다. 국내 문창과 학생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뽑은 '가장 인터뷰하고 싶은 36인' 중 12명을 1권에 담았다고 하는군요.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작가들의 멘트를 발췌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오르한 파묵, 무라카미 하루키, 폴 오스터


이언 매큐언,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 레이먼드 카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E.M. 포스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나는 문학을 두 종류로 나눈다. 내가 썼다면 하고 바라는 책과 내가 쓴 책이다.


움베르트 에코

저는 희극적 감정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신들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사실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답니다. 다른 동물들은 그걸 알지 못해요. 동물들은 자신들이 죽는 순간에, 그 자리에서만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마 이것이 종교나 제의가 존재하는 이유일 거예요. 희극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향한 인간의 본질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P.59


오르한 파묵

세월이 너무 빨리 바뀌니 오늘날의 책은 100년 후에는 아마 잊힐 겁니다. 극소수만 읽힐 거예요. 200년 후에는 요즘 쓰인 책 중 다섯 권 정도만 살아남겠지요. 내가 그 다섯 권 중에 들어갈 책을 쓰고 있다고 확신하는가? 하지만 그 점이 글쓰기의 의미인가? 200년 후에 읽힐지에 대해서 내가 걱정해야 하는가? 삶에 대해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 책이 미래에 읽힐 거라는 위안이 필요한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계속 글을 써나가지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는답니다. 제 책이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믿음이 이 삶을 즐겁게 지내기 위해 제가 갖고 있는 유일한 위안이에요. P.97


무라카미 하루키

우리는 마음속에 제정신인 부분과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함께 있어요. 이 두 부분을 타협해가면서 사는 거지요. 이게 제 신념입니다. 저는 글을 쓸 때 특히 제 마음의 제정신이 아닌 부분을 잘 볼 수 있어요. 아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군요. 오히려 비일상적인, 비현실적인 부분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저는 물론 현실 세계로 돌아오고 제정신을 되찾지요. 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부분이 없다면 저는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다시 말하자면,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은 미도리와 레이코 이 두 여성에 의해서 지탱되는 것이랍니다. 둘 중의 하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살아갈 수 없어요. P.127


폴 오스터

글쓰기를 끝내면 타자기로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작업합니다. 컴퓨터로는 화면을 보면서 곧바로 원고를 수정할 수도 있고 깨끗하게 인쇄된 자료를 출력할 수도 있지요. 그렇지만 타자기는 아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는다면 깨끗한 원고를 만들어낼 수 없어요. 처음부터 다시 타자하는 것은 참으로 지루한 과정입니다. 여러 주 기계적으로 타자하는 동안 목과 등이 아주 아프지요. 그리고 하루에 20~30쪽씩 타자해도 그 작업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지요. 바로 그 순간 저는 컴퓨터 작업으로 바꾸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매번 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이를 때마다 타자기를 쓰는 것이 책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핵심적인지 알게 되지요. 타자는 글을 새로운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해주며, 이야기의 흐름에 빠져들고,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느끼게도 해줍니다. 저는 이 과정을 '손가락으로 책 읽기'라고 부르지요. 눈으로 결코 알아차리지 못하는 많은 잘못을 손가락이 찾아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반복, 기이한 구성, 고르지 못한 리듬감 등 말이에요. 이제 책을 끝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타자하기 시작하면, 새로 쓸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P.155


제가 하려고 했던 것은 이 체제에 약간의 흠집이라도 내려는 것이었어요. 소위 보통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보통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지요. 우리 모두는 강렬한 내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격렬한 열정으로 불타고 있고, 여러 가지로 기억할 만한 경험을 겪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P.170


밀란 쿤데라

사람들이 카프카를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을 알고 계십니까? 카프카의 탁월한 상상력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알레고리를 찾으려 들기에 결국 상투적인 해답만 들고 옵니다. 예를 들어 인생은 부조리하다는 둥, 아니면 신은 우리가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둥 그런 것들이지요. 상상력이 그 자체로 가치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술, 특히 현대 예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P.299


소설은 오락이에요. 프랑스 사람들이 어째서 오락을 경멸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가는군요. 그 사람들은 재미있다는 오명을 받느니 차라리 지루한 사람이 되는 쪽을 택할 거예요. 그 사람들은 차라리 달콤하고 거짓된 장식인 키치와 사랑에 빠지는 쪽을 택할 겁니다. 엘뤼아르의 시라든지 에토르 스콜라의 '키치로서의 프랑스 역사'라는 부제를 붙여도 될 만한 영화 <르 발> 같은 모더니스트 작품들까지 장밋빛으로 물들이는 키치를 말이에요. 그렇답니다. 오락이 아니라 키치가 진정 미학적인 질병이라니까요! 위대한 유럽 소설들은 오락으로 출발했고, 모든 진정한 소설가들은 그 점을 그리워해요. 실상 위대한 오락물들의 주제는 심각할 정도로 진지해요. 세르반테스가 [이별의 왈츠]에서 던지는 질문은 '인간은 지구상에 살 가치가 있는가?' 또는 우리가 '지구를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것입니다. 제가 평생 추구해온 야심은 가장 심각한 질문을 가장 가벼운 형식으로 던지는 것입니다. P.305


레이먼드 카버

좋은 소설은 부분적으로는 한 세상의 소식을 다른 세상으로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그 목적 자체로 훌륭해요. 하지만 소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거나 어떤 사람의 정치적인 입장을 바꾸거나 혹은 정치체제 자체를 바꾸거나 고래나 레드우드 나무를 구하거나 하는 것은 못합니다. 소설은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소설은 단지 그것에서 얻는 강렬한 즐거움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희미할지라도 계속해서 불타오르는 이런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것이랍니다. P.34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소설과 저널리즘엔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소재도 같고, 주제도 같고, 글을 쓰는 방법이나 언어도 똑같습니다. 저널리즘에서는 기사가 가짜라는 한 가지 사실만이 기사 전체에 편견을 갖게 만듭니다. 대조적으로 소설에서는 이야기가 진짜라는 한 가지 사실이 작품 전체를 정당화해줍니다. 그것이 저널리즘과 소설의 유일한 차이이며, 그것은 작가가 얼마나 몰두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P.359


젊은 작가들에게 약간 조언해줄 수 있다면,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글을 쓰라고 말하고 싶군요. 작가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쓰는지, 아니면 자신이 읽거나 들을 일에 대해 쓰는지 구별하기란 항상 쉽지요. 파블로 네루다의 시 구절 중에 "신이시여, 노래 부를 때 창작하지 않게 도와주소서."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제 작품에 대한 가장 큰 찬사가 상상력에 주어진다는 것이 저를 항상 기쁘게 합니다. P.364


명성은 사람들을 진짜 세계로부터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을 계속 쓰기를 원하는 유명한 작가는 명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다. 진심으로 들리지 않을테니 정말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지만, 명성이라거나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과 관련한 많은 일을 겪지 않도록, 제가 죽은 뒤에 제 책이 출판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제 경우에 명성과 관련한 유일한 이점은 명성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P.385


어니스트 헤밍웨이

일어난 일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그리고 알고 있거나 알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재현이 아니라 창작을 통해 살아 있는 어떤 것보다 더 진실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지요. 당신은 그것을 살아있게 할 수 있고, 만일 당신이 충분히 잘할 수 있다면 그것에 영원성을 부여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이유고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P.428


윌리암 포크너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의 사람들은 동정심이 많지 않습니다. 아이는 그럴 능력을 갖고 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고요.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될 때, 그런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에 뭔가를 하려는 아이의 의지는 더 강해지고 더 위험해지지만, 동정심에 대해서는 배우기 시작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옮기려는 능력은 환경과 압박을 통해 악 쪽으로 가기 때문에, 사람은 도덕적이기 전에 먼저 강해집니다. 세상의 고통은 스무 살에서 마흔 살 사이의 사람들에 의해 야기됩니다. P.463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에게 유일하게 가능한 불멸은 언제나 살아 움직여서 불멸인 어떤 것을 뒤에 남겨놓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항상 움직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Youchang
저널리스트. [스쳐가는 모든것들 사이에서 버텨가는] [세상에 없던 생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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